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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잔향 07화

미싱

바늘은 천을 꿰매는 도구인 줄만 알았다

by 이제이


공업용 미싱 수백 대가

공장 바닥을 울리며 드르릉, 드르릉

쇳소리와 박음질이 교차하는

그 거대한 리듬 속에서


벽마다 걸린 스피커에선

격동 30년, 싱글벙글 쇼가 울려 퍼졌다

가요도 뉴스도,

우리 삶과는 딱 반 박자 어긋난 소리


재단기 두세 대는

바닥을 찍고 찢으며

천을 짓밟듯 잘라냈다

그 커다란 고함은

인간의 목소리를 쉽게 집어삼켰다


그 와중에

내 손가락이

굵은 바늘에 끼였다

피도 흐르지 않은 채

깊이 박혔다


아무도 몰랐다

이 수백 대의 굉음 속에서

내 고통을 알아챈 사람은

오로지 단 한 사람


— 시다


이 미싱 저 미싱을 오가며

쪽가위로 실밥을 자르고

작업물을 다음 공정으로 옮기던

그 조용한 손,

그 맑은 눈 하나


그 아이가

멈춰 선 나를

발견했다


그제야 나는

미싱의 전원을 끄고

핸들을 거꾸로 돌렸다

시간을 되감듯,

생을 꿰맨 바늘을 거슬러


딱—

딱—

뼈마디를 짓는 소리처럼

바늘이 천천히 들어 올려질 때

내 안에서 터진 비명은

세상의 소음보다 작았지만

가장 진한 고통이었다


바늘이 뽑히자

분화구처럼

붉은 피가

솟구쳤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눈물이 흘렀다면

붉었을 것이고

실처럼 끊임없이 엉켰을 것이다


나는 다시

붕대 감은 손으로

미싱 앞에 앉았다

손가락 하나 없어도

기술자의 고향엔 가족이 있으니까


몇 년 후,

똑같은 일이 한번 더 반복되었다

다시,

또다시...


이번엔 나 혼자

전원을 끄고

신음하며 핸들을 돌려

바늘을 뽑았다


옆에 있던 천 뭉치로

돌돌감아 손가락을 감싼 채

병원으로 갔다

누구도 몰랐다

누구도 불러줄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살아냈고

굳어졌고

한 겹 한 겹

삶을 꿰맨 천이 되었다


나는

찢기지 않는 천처럼

버텼고

묵직해졌고

스스로

아름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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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나는 국민학교 6학년이던 여름방학,
아빠의 공장이 있던 구로공단에서
매일 오전, 반일 아르바이트를 했다.

“해이해지지 말라”는
아빠의 말씀이 이유였다.

공장엔 수백 대의 미싱이 쉴 새 없이 돌아갔고,
쇳소리와 땀 냄새, 재단기의 굉음이
어린 나의 오감에 각인되었다.

그 안에서 일하던 분들의 손, 눈, 어깨,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삶을 꿰매는 바늘 같았다.

그 시절 나는 너무 어렸고,
너무 많은 것을 몰랐지만
세월이 지나 이 시를 통해
그 하루들을 다시 떠올린다.

이 시는 단지 상상이 아니다.
실제로 내가 보고, 들으며,
가슴으로 삼킨 기억들이다.

이 글을
그 시대의 공장에 몸을 묻으며
자식들을 키우고 가족을 지켜낸
우리 어머니, 아버지 세대 모든 분들께
깊은 경의의 마음으로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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