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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라야노을 Sep 24. 2023

슬픔을 공부해야 되는 이유

 신형철 작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잔인했던 하루의 끝, 동화 같은 이야기


2023년 7월 17일 오후는 엄청나게 많은 비가 쏟아져 내린 날이다.

물폭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수미터 가로수의 머리끝만 찰랑이며 하천이 모두 잠기고, 휩쓸리고, 무너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는 것은 무서움을 넘어 공포스러웠다.


집중적인 폭우가 쏟아진 그 한두 시간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생과 사의 갈림길이 되었다.

TV에서는 하루종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달하기 바빴다.  

여행을 간다고 집을 나선 딸이 몇 시간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고, 엄마는 포대기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던 아기 때의 딸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며 오열한다.

추억은 위로가 아니라 날카로운 고통의 송곳일 뿐이다.

남동생을 역까지 배웅하러 나갔던 남편을 잃은 신혼부부, 지하차도의 버스 안에 계셨던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오셨다는 어느 어머니, 그리고 잠겨오는 버스 안에서 가족들에게 보낸 마지막 문자들까지.

그날은 하루종일 슬픔과 허무에 압도되어, 머리가 정지해 버렸다.

위로라는 걸 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TV와 인터넷에 동화 같은 이야기가 쏟아졌다.

화물차 기사님 한분이 차 지붕 가까이까지 물이 차오르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도움을 외치는 주변 사람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주었고, 무려 세 사람이나 물지옥으로부터 살아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진짜 동화 같은 이유는 그 세 사람 중 하나였던 20대 여성분 때문이다.

급류에 휩쓸리다 화물차의 사이드미러를 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던 그녀 손을 기사님이  붙잡았다. 나는 힘이 없으니 붙잡은 손을 놓으라고 했다는 그 여성분, 한 손으로 본인을 지탱하면서 나머지 한 손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기사님.

티브이보는 내 눈에 위로가 한 방울 맺혔다.


이렇게 갑작스럽고 무서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이렇게 가족들을 허망하게 보내야 되는 일이 아무에게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더더욱 좋았을 테지만,  그래도 모두를 다 잃지 않고, 누군가 내밀어 준 손으로 누군가라도 살아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 큰 위로이다...... 우리 모두에게.



슬픔을 공부해야 되는 이유


몇 년 전 엄마가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실 때, 하루하루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이 두려움과 불안함을 극대화시키면서, 가슴을 짓누르는 숨 쉬기 어려운 고통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전에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극강의 고통이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 나름 타인의 슬픔을 잘 이해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로, 우리가 타인의 감정을 고스란히 나의 것처럼 느끼는 일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에 대해 가끔씩 생각하곤 했는데, 우연히 신형철 작가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을 발견했다.


신형철 작가는 우리가 슬픔을 공부해야 되는 이유를 이렇게 적고 있다.

인간에게 특정한 결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바로 결함이라는 것,  그러므로 인간이 배울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은 정확히 같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이다.


그리고 그는 또, 우리가 사는 동안 끊임없이 슬픔을 계속 공부해야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타인의 슬픔을 향해 가려는 노력, 시도해도 실패할 그 일을 계속 시도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나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타인의 슬픔에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사람, 타인의 슬픔에 무감각한 사람, 타인의 슬픔이 지겨운 사람.


타인의 슬픔을 고스란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이루기 어려운 이상적인 일이지만,  끊임없는 노력은 단순히 우리의 사랑 의미 있게 해주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모든 역사는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일들은 결코 되돌릴 수가 없지만, 그 순간의 흐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에너지가 만들어낸 것일 때가 많다.


화물차 기사님도 차오르는 물과 앞이 보이지 않는 그 상황이 두렵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한 손으로 자신의 몸을 버텨내면서 나머지 한 손을 내밀었던 순간은, 타인을 생각하며 살아온 기사님의 온 인생이 만들어낸 찰나일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끊임없이 슬픔을 공부해야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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