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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Aug 13. 2024

[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핑클이 준 선물

성유리, 이효리, 옥주현, 이진... 핑클이 생각났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줄곧 한 동네에서 졸업한 나는, 자연스레 초등학교때 절실했던 단짝 친구와 더불어 중학교 시절에는 새로운 친구 두명을 추가해 네 명이서 몰려 다녔는데, 그 때 우리 미녀 사총사가 결성했던 그룹은 바로 핑클이었다. 여학생들은 모두 공감할만한 연예인 놀이, 바로 [핑클놀이] 말이다.


나는 당연히 제일 이쁜 성유리였고(신기한게 나 스스로는 당연히 이쁜척 할수 있는데 다른 아이들도 모두 성유리 역할에 나를 찍었었다.), 자칭 타칭 분위기여왕이라 생각하는 내 친구는 이효리, 그리고 이진과 옥주현은 각각 입술이 얇은 친구, 그리고 노래를 잘하고 가장 성숙해보이는 친구가 맡았었다.


물론 동시대에 유행한 SES또한 [ses놀이]라며 연극했는데, 이때는 유진언니 광팬인 친구가 사정사정했던 탓에, 그 친구의 유진언니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절친으로서, 센터 주인공 유진역할을 친구에게 넘겨주지 않을 수가 없었어서, 그 놀이에 대해서만큼은 내 마음에 별로 남는것이 없다.


영원한사랑, 내 남자친구에게, 영원, ... 모든 안무들을 외우고 우리는 복장도 나름 갖춰입고 사춘기 아이들다운 일방적인 요정 페르소나로 무장하며 춤추고 방방뛰던 시간을 행복해했었다. 유치하다 비웃지마라, 학교공부이외에도 나름의 사정으로인해 빡센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내가 핑클 언니들에 의해 입을 수 있었던 요정 페르소나는 나에게 삶의 가벼움, 환상, 자유와 탈출, 아이다운 순수함... 그런 기분좋은것들로 내 몸을 휘감아 주었던, 어떤 트랜스포머와도 의미 있는 선물같은 일 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 우리가 성장하듯 언니들도 성인기를 거쳐 결혼을 하며 어른이 되셨고, 2024년 지금 우리들은 마흔을 바라보고, 핑클 언니들은 사십대 중반을 달리고 계시며, 이제 우리 양쪽은 마찬가지로 중년으로서 성숙해가는 입장으로 살고 있다.


얼마전 [엄마, 단둘이 여행 갈까?]라는 jtbc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보면서 획득한 정보는, 우리가 어린시절 보았을 때 언니 눈빛이, 분위기가 괜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물론 멤버들 모두 나름대로의 생각과 아픔이 있었겠지만, 유리나 진이 언니와는 다른, 뭔가 진한 분위기가 무대 위에서도 살짝 보였었는데, 성장과정에서 나름의  고충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며,


효리언니가 리더를 맡았던 이유, 한 두살 차이뿐인 멤버들보다 유난히 성숙해보였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언제봐도 예쁘신 효리언니. 캡쳐출처: 스타뉴스







우리가 핑클놀이를 하며 핑클 역할을 맡아 놀이했듯. 언니들도 저마다의 삶의 와중에서 사회적, 매체적 역할로서 핑클을 연기했으리라.

블루레인으로  시작하고, 반응을 보며 내 남자친구에게로 넘어가며 영원으로 가면서 본격적인 요정컨셉으로 연기했던 언니들의 이미지는 한국의 학업적 부담 큰 중학생으로서의 나에게 가벼움, 유쾌함, 달콤한 같은 이미지로 환상적이기 충분했고, 그렇기에 핑클은 또래 남자들에게는 물론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던 것 같다. 언니들이나 우리들이나 핑클의 요정연기에 푹 빠져 살다가, 5집정도부터인가 언니들의 무대 위 눈빛에서는 요정의 달콤함에 가려졌던 삶의 책임감과 역할로서의 부담감이 여실히 드러났고, 그 때에 언니들은 핑클이라는 왕관을 내려놓게 되었던 것 같다.


어린 내가 보았을 때도 언니들의 수고로움이 요정컨셉과 현실적인 어려움의 불협화음때문임을 인지할 정도였으니, 대중인 내 입장에서도 더 이상 친구들과 연기했던 [핑클]에 더 이상 구미가 당기지는 않았다.


그 때부터는 언니들이 연기하는 핑클이 아닌, 개인사를 가진 인간 한 명 한 명으로서 언니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핑클이라는 입혀진 이미지보다는 불완전한 인간 그자체로의 한명 한명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엄마 단 둘이 여행 갈래? 라는 이 프로그램에서 효리언니는 친어머니와 몇 일간 여행을 하게 되는데, 맥락상 봐서는 단 둘이 떠나는 거의 첫 여행인 것 처럼 느껴졌다. 엄마와 딸,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가까운 혈연관계라고 볼 수 있는데, 엄마와 언니의 관계가 오랫동안 단절되었다가 풀린 사람들처럼 살짝의 어색함을 갖고 1화가 시작되는 모습을 본다. 몇 화가 지속되면서, 함께하는 여행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감추다 감추다 빌드업된, 절정에 달한 불편함은 오히려, 효리언니 속에있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끄집어 내게 했고, 엄마와 툭 터놓고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효리언니 스스로도 내내 인정하기 힘들었을테지 그리고 어색했을테지, 늘 대중에게 솔직함으로 어필하고 있던 언니는 사실, 가장 깊고 중요해야할 엄마와의 관계에서만큼은 진짜 내 속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말야.



그래도 요즘시대사람인 효리언니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서로의 오해를 풀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의 타당함을 알고 계실테지만, 옛날사람들은 우리들보다 더더 어색한 그 작업. 자신의 불안과 고뇌, 마음조림, 참혹함, 약함을 겉으로 드러내고 인정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아 마음속에 꾹 꾹 눌러, 부정하며 사셨던 세월에 우리엄마의 모습또한 보여서 극을 보는 내내 눈물을 흘리고 공감했었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이라 깊이 언급하지 않는 것이 글쓰는 자로서의 예의라는 것을 알기에 내 눈에 비춰지는 너무 깊은 부분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저, 엄마의 내면아이의 슬픔, 고독, 두려움, 경악, 자신에게 펼쳐진 상황에 당황해 스스로를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겁에 질려 얼려버린, 아이모습 그대로의 늙어버린 엄마가 보여, 이제 더 이상 겁먹지 말라고, 이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어른이니, 사실은 약한, 그저 한국 남성으로서 입고 있는 갑옷에 의해 강한척 하는 아빠에게 기대서, 눈으로 빤히 보이고도 못보는 척 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도 된다도 위로해드리고 싶었다.


딸에게 있어서 엄마는 어떤 존재일까?대체, 우리 둘은 어떤 사이일까?


내가 딸이 없어서 정확하게 엄마가 보는 딸을 직면할 수는 없지만, 어린 딸의 입장에서 본 엄마는 내 경험을 비춰볼 때, 태산같고, 절대자 같아.. 그래서 나를 언제나 지켜줄 수 있고, 위로해 줄 수 있고, 보호해 줄 수 있어 보이지... 그건 곧 그래서 그녀가 나를 언제나 지켜줘야하고, 위로해 줘야하고, 보호해 줘야한다는 이상화상태(idealization)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아. 마치 전지전능한 신급의 인간으로서 내 엄마와 아빠를 바라보는 것 말야.

현실의 엄마는 당연히 신이 아니기에 완벽할 수 없고, 그렇기에 태어날 때부터 쭈욱 내가 생각하고 기대했던 이상화된 엄마의 모습과 현실의 엄마사이의 간극사이에서 불만을 증폭시키며 사춘기를 보내게 되고, 성인이 되어, 엄마가 되어보며. 엄마가 된 나와, 내 성장과정 속 엄마모습을 비교하며 누가 더 낫네...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또한 엄마를 이해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라 생각해. 그리고 나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라 생각해. 삶의 어떤 계기로 인해, 우리 둘은 누군가에 의해 비교 당하거나, 어떤 면에서는 경쟁할 수 없는, 각기 다른 인격체임을 인식하게 되고, 그렇게 엄마로부터의 자아독립과 화해의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 같아. 그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해...



한편의 깊은 여성영화를 본 것 같다.

이효리 라는 한 사람의 갖가지 경험과 우여곡절, 그 전 후의 생각과 배우자와의 나눔을 통해, 스스로를 직면한 어떤 성숙한 여성이 인생 최종보스인 엄마를 만나 더 성숙해지는 과정.


엄마와의 화해라 보일테지만, 사실은... 자기자신과 화해하는 과정을 본 느낌이다.


이효리라는 인간으로 대표되는, 한 여성의 자신과의 화해와 독립의 과정을 엿보며, 그것이 그렇게 막연한 것이 아님을, 두렵고 무서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금 더 알고, 내 자신의 감정과 조금더 친밀하게 편안하게 마주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시청자모두에게 가르쳐 준 그런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한다.


엄마에 대한 상처로 아직 무거워하고 있는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는 티비 프로그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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