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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루츠캔디 Sep 27. 2024

[프롤로그] 굳게 잠긴 일기장

세상에 비밀은 어디에도 없다.

옛날 옛날에, 도도하고 새초롬한 한 꼬마공주 캔디가 살고 있었습니다. 캔디는 친구와 나눈 비밀이야기를 자신의 비밀 일기장에 빠짐없이 적었고, 캔디의 친구는 제3자와 함께 주인 캔디가 없는 사이 그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글쓰기 좋아하는 캔디의 일기장에서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가 튀어나올까... 기대하면서 말이예요.

캔디의 글을 통해, 제 3자에게 자신의 비밀을 들킨 캔디의 친구는 당황한 나머지 캔디를 이간질쟁이로 몰아 덮어씌웠습니다. 억울하고 불편한 감정에 압도된 캔디는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맞아요! 그 때부터 입이 확 터져, 앞담화 여왕님이 되었습니다.




열 두서너살 무렵이었던 것 같다. 친한친구가 내게 비밀 이야기라는 것을 처음으로 털어 놓았을 때가...


캔디야... 나 너한테만 할 말이있어...ㅠㅠ


물론 지금이라면, 나를 믿고 자신의 속사정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을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친구 A가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집안에 대한 비밀 이야기가 감당하기 무거웠고, 그 부담스런 느낌을 덜어내고자, 채 소화시키지 못한, 내게 홍수처럼 쏟아진 정보를 내 비밀일기장에 섬세한 필력을 동원해 몽땅 털어놓았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그제야 마음이 가벼워졌다.


절친과 학교도  같이 가고, 학교 끝나면 집에서 같이 매일 시간을 보내는것이 자연스러웠던 십대 시절, 방과 후 매일같이 우리집에 오던  A는, 그 날도, 그 다음날도 어김없이 우리집에 왔다.


그 다음날 이었지 아마, 학교에서 마주친 A와 나머지 아이들의 나를 향한 느낌이 달라져있음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다. 왜 일까? 여학생들이 흔히 겪는 무드스윙일거라 생각하고 나는 내 할일을 마저 하려 마음먹었던 순간, 복도쪽 자리에 있던 은영은 2분단 셋째줄에 앉아있던 내게 다가와...고백했다.



캔디야, 화내지 마~ 알겠지?
어제 A랑 너희 집에 갔잖아, A랑 같이 너 일기장을 읽었어. A네 집에 진짜 그런일이 있었구나, 나는 몰랐었어...

 A가 하도 보자고 해서 그냥 같이 봐 준거야 미안해...


그렇다. 은영의 말대로, ,A와 은영,  우리집에 놀러온 둘은,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 내 책꽂이에 꽂힌, 열달린 나의 비밀일기장을  몰래 읽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니 기본적으로 2-3시간은 놀고 가던 평소의 그들과 달리 A는 내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우리집에 온지 20-30분도 채 되지 않아 집에 돌아간다고 해 좀 이상했고, 화장실과 현관문이라는 서로간의 다소 먼 거리에서 얼굴도 보지 않고, 손님을 각자 집에 보내버린 것이 사실 좀 불편하던 참이긴 했다.


자신이 내 비밀일기장을 몰래 훔쳐본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왜 A는 나를 자신과의 이야기를 만인에게 공개한 비밀누설범으로 만들어버렸을까?


친구A 혼자 내 일기를 본 것이 아니라, 은영이에게 엉겁결에 자신의 비밀이 의도치않게 까발려졌기 때문이었을거다. 당혹스러웠을거다. 그리고 그 당혹감을 처분하는 것이 버거워 내게 던져버린거다. 고민이 무거워 내게 털어놓는 것과 같은, 힘을 나눈 물리적 행위였을거다.


나의 헛점을 캐내려는 의도에서 였을까? 내 비밀을 알고 싶어서였을까? 자신과 가까운 친구를 우리집에 데려와 함께 내 일기장을 래 훔쳐본 A의 죄를 벌하려는 하늘의 의도를 역행하고자 겨우 열 몇살 짜리 그녀가 만들어낸 헛소문에 가까운 행위로 인해, 은영이를 비롯한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날부터 '친구의 비밀을 함부로 누설하고 다니는 아이'가 되어있었다. 그때 느낀 부적절감은 지금 생각해봐도 불편하다. 


억울함, 맞다 그거다. 내 일기장에 내 마음을 썼는데, 비밀을 누설하고 다니는 사람이 되었기에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의견을 상대에게 솔직히 말하는 것 외에는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너는 왜 내 일기장을 함부로 보니? 내 일기장은 나만을 위한 비밀노트야

라고 당당하게 A에게 말했었지만, A에겐 소용도 없는 변명에 불과했다.


상관 없어! 니가 나한테 들은 이야기를 글로든 말로든 적어 남긴거 자체가 잘못이야.
A의 답변이었다.

얼마나 자신감에 꽉 차 있던지...나는 A의 나를 향한 질책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 A의 말대로라면 일기장에 친구의 비밀, 그와 관련된 내 느낌과 생각을 적은 나는, 무언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아이였다.


지금이라면 내 일기장 몰래 본 것 먼저 에게 사과해 라고 말하며 상대가 착취하려는 에너지의 방향을 나에게로 돌리는 것 까지 하고, 이야기를 끝냈을텐데, 나의 가정사가 준 외로움과 그로 인한 나의 친밀감 및 안전의 욕구의 결핍은 나의 사고력을 침범해 내 마음을 항상 위태롭게 했다 (관련글 : 아이들은 즐겁다 1 https://brunch.co.kr/@youok/413, 아이들은 즐겁다 2 https://brunch.co.kr/@youok/415).


그 후로, A는 한동안 취미삼아 의심삼아 내 일기장을 몰래 또는 공식적으로 보길 원했고, 나와의 관계 그리고 자신의 존립에 대해 불안해하는 A를 위해 나는 무방비상태로 내 일기장을 공개해야만 했다.


집안에서 안좋은 일을 당해 늘 불안해했던 A가 불쌍했고, 그런 친구의 불안을 덜어줄수만 있다면 내 일기장을 보여주는 것 쯤은 아무래도 괜찮다고 캔디는 생각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서도...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검사를 받지 않는 비밀 일기장이라 할지라도 자신과의 비밀을 고자질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내어야 한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게 친구로서의 도리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일생을 통틀어 나에게 그때는, 친구를 잃지않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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