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뒷담화 불능가이다.
오해와 상상력으로 구성되고 굴러가는 인간 세상의 뒷담화 불능가의 사정
37살, 성인으로서의 후루츠캔디는 사실 뒷담화를 즐기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몹시 미운 사람에 대한 조롱이며 스트레스를 비용없이 해소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라며 죄책감이 들건 말건 신나게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뒷담화를 내가 왜 혐오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본 결과, 프롤로그에 적은 내 어린시절의 인상깊은 경험이 그 이유인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사실 대단히 도덕적인 사람이라서 뒷담화를 절제하고 살았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의 어린시절의 경험과 친구 A의 덮어씌우기 전략과 그것을 해명하지 못한 억울함이 안전과 보호에 대한 결핍감이 한데 뭉쳐 버린 마음 한구석의 묵직한 돌덩어리가 한국 사람들이 널리 선망하는 호모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인가 하는 그 사람이 주장하는 뒷담화의 기능을 거세시켰다 할 수 있다.
앞선 프롤로그에 묘사한 그 경험은 나를 뒷담화 고자로 만든 동시에 남들의 나를 향한 뒷담화에도 전신이 꽁꽁얼어 상대들의 야비한 공격에 아무 반응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를 만들어냈으니 이로 인한 맘고생또한 온전히 내 몫이었던거다.
사실 뒷담화는 본인들이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진 상대에 대한 질투나 미움, 시기, 증오등의 감정이 강하게 합축된 채로, 해소되지 못한 감정덩어리를 대상 몰래 슬픔이나 조롱등의 해학으로 맘대로 집어 던져, 앞에 없는 상대를 상상에 의해 파괴버리는 행위이다.
즉, 무슨 말을 하고 놀건 뒷담화안에 들어있는, 모두가 공격하는 그 주인공은 주변인의 뒷담화에 대해 사실 특별히 의식할 필요도, 사전에 대비 할 수도, 혼자 꽁하니 기분나빠할 필요도 없는, 그들끼리의 못난 감정 해소질인 셈이다.
감정의 발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나는 왜 그렇게 남들이 나를 향해하는 뒷담화에 상처를 받거나 괴로워했을까...한편 나는 왜 함께 뒷담화를 즐기며 나 또한 너희 처럼 믿을만한 사람이며, 한 배를 탄 동지이니 경계할 필요가 없다는 의식을 무의식중에 심어줄 수 없었을까...
다 A와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어린시절이야기로 자꾸만 내 자신을 회귀시키는 것도 그 때의 억울함을 바르게 해소해야만 앞으로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일종의 나만의 지령이라 생각한다.
도덕성이 한참 발달할 십대 초기의 경험은, 그 사실여부와 관련없이, 나 자신에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지면에든 서면에든 안면근육을 함부로 분출해서는 안되는 행동임을 못박았다. 사실 뒷담화를 해서 들키거나 말거나 좋을 것도 없으니, 어릴 때의 경험이 결론적으로 그 이후의 나의 사생활을 클린존으로 만들어 준 것이라는 데에는 찬성한다.
문제는... 그것이 나의 의식적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또한 뒷담화라는 녀석이 사람들이 10년 전이든 20년 전이든 애든 어른이든, 어느 나라 사람이건, 공적인 장소든 사적 장소이든, 둘 셋만 모이면 여지없이 항상, 해당 시간과 공간을 슬며시 매꾸기 시작한다는 것에 재론없는 세상에 내가 존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실이 승리한다고?
봉준호 감독님의 섬세한 관찰력과 그것으로 비롯된 창의력과 통찰력을 극찬하는 내가 볼 때, 적어도 '인간관계'라고 하는 이 세상의 일부만큼은, 진실보다는 각 개인 안, 그리고 개인 간에 만들어지는 오해와 상상력으로 구성되고, 자그마치 그것이 에너지가 되어 구석기, 신석기를 지나 지금의 Gen Z까지 운영되고 있는것 처럼 보이는데!
그리고 그것의 마차가 바로 '뒷담화' 같아 보이는데!
뒷담화 기능이 어린시절부터 거세당한 내 관점에서 봐서 그런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오바 조금 보태서 뒷담화로 이루어져있다 여길만큼... 뒷담화가 없으면 한 집단이 존속될 수가 없을 만큼, 뒷담화 못하는 사람은 서러워서 못살겠는, 가십퍼들의 활약이 유리할 때가 속속등이 많은 드러븐 세상 이라는 거다.
물론 다소 비도덕적인 말이라 기록적으로 남기기 조금 모호하지만, 직장 생활에서도, 친구관계에서도, 학교생활에서도 내 편과 남의 편을 나누는 기준, 즉 내가 안전한 사람인지에 대한 시그널의 대표는 단연 뒷담화라는 것에 사람들은 테이블 아래에서 서로간 동의하는 바이다.
나와 너가 함께 뒷담화라는 걸 나눌 수 있느냐가 곧, 신뢰를 바탕으로 할 수 있는 관계인지를 판별하는 결정 척도라는 아이러니는 세상의 얄따꾸리한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