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을 혼자 돌아갔던 그 밤의 너에게
아홉 번째 마음,
조금 멀리 살던 사람이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집에 데려다줘도 되느냐고 묻기에 손사래를 치며 최선을 다해 사양했었다. 나 때문에 그가 우리 집까지 가는 것도, 갔다가 다시 혼자 집에 가야 하는 것도 미안했다.
데려다주겠다, 안 된다, 오늘은 데려다주고 싶다, 데려다주면 내가 다시 데려다줄 거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그럼 지하철 역까지만 바래다주는 걸로 공평하게 합의를 봤다. 그렇게 분명 지하철 역으로 정했던 것 같은데. 그다음 날은 근처의 버스 정류장으로, 그다음 날은 우리 집 근처의 편의점으로, 그다음 날은 우리 집 앞의 교회로 그 장소가 점점 옮겨왔다.
집으로 가까워지는 게 우리 사이가 가까워지는 걸 눈으로 보는 것 같아 설렜다. 같이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도 꿈 같이 좋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만큼 그가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길어져 영 마음이 쓰였다.
그런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곤 그가 타고 돌아갈 버스의 시간을 봐주는 것. 그는 버스가 도착하기 3분 전까지도 손을 꼭 잡고 있다가 내일 또 봐, 인사하곤 어둠 속으로 후다닥 뛰어가곤 했었다. 그러면 나도 후다닥 집으로 들어가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곧장 버스 어플을 켜고서 그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같이 기다려주곤 했다.
곧 가양역이지? 우와,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방법이 있어, 이제 세 정거장 뒤에 내리지? 응, 나 이제 내리니까 얼른 씻어. 아니야, 혼자 가면 심심하잖아. 얼른 들어가. 얼른 들어가야 내가 씻는단 말이야. 알았어, 얼른 뛰어갈게. 아니, 아니, 또 뛰어가란 뜻은 아니고 그냥, 조심히 얼른 가. 얼른 갈게, 얼른 가서 전화할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났다. 마지막 발자국이 놓였던 길 위로 몇 겹의 계절이 쌓였다. 오고 가는 길에 이따금씩, 그 버스를 보곤 했다. 어쩔 땐 그 생각이 떠올라 괜히 웃음이 나오기도 어쩔 땐 까닭 모르게 마음 한쪽이 철렁하기도 했었다.
그렇게 오래 눈으로 좇기만 했던 버스였는데. 오늘 그 버스를 타고 가양역을 지나갔다. 그가 갔던 길처럼, 우리 집에서 나와 그가 탔던 버스를 타고 그가 내렸던 가양역을 지나갔다. 그 시간에 타면 혹시 계속 서서 갔던 건 아니었을까. 앉았으면 이쯤에 앉았을까. 어쩌면 혹시, 내가 지금 앉은 이 자리는 아니었을까. 버스의 어느 자리에 앉았는지,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버스가 가양대교를 건넌다. 창문에 맺혀있던 둥근 빗방울들이 사선을 그으며 떨어진다. 그 빗방울이 꼭 밤하늘에 쏟아지는 수 백 개의 유성우 같아 창문에 가만히 손을 대보았다. 그가 홀로 돌아갔던 날 중의 하루는 내가 앉은 이 자리에 앉았으면 좋겠다. 그 중의 잠깐은 나처럼, 그도 이 창문에 손을 대봤더라면 더 좋겠다. 얼른 가. 뛰지 말고 조심히 가. 버스의 창문에 뿌연 입김이 서렸다.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달리고 비는 그친 적 없는 것처럼 내린다. 나는 아직도, 그런 게 미안하다.
*매일의 감정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