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먼 곳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카이로행 티켓을 끊었다. 지금으로부터 꼬박 열일곱 시간 뒤에는 이집트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는 눈을 감았다. 그 곳은 비행기가 아니라 시간이 데려다줄 것 같았다.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나는 그 청춘을 지독하게 앓았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세대의 명문에게는 얻는 것이 없어도 좋으니 고통이 없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한때는 나를 벅차오르게 했던 말들도 있었으나, 그것은 때를 지나고 나면 나를 벅차게만 했다. 죽고 싶은 날들과 덜 죽고 싶은 날들의 틈에서 삶의 의욕을 잃고 긴 방황을 했다.
힘든 마음은 그 마음을 혼자 느낀다는 생각 때문에 더 힘들게 다가온다. 외로움이라는 마음보다, 사람의 사이에서 외로움을 혼자 느끼는 상황이 더 외롭게 느껴지는 것이 그렇다. 차라리 완전히 홀로라면 덜 외로울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의 세계와 사람으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다. 이런 내 기분을 온전히 홀로 감당할 수 있는 곳, 외로움에 얼마든 뒤척여도 좋은, 내가 유일한 타인일 수 있는 먼 타국으로.
어느 날의 아침엔 나일 강을 따라 걸었고 어느 날의 저녁엔 홍해를 따라 걸었다. 시장에서는 오랜 흥정을 하며 과일 몇 개를 샀고 옆에서 통역을 도와준 아이에게는 가장 큰 과일 하나를 쥐어줬다. 최소한으로 말하고 최소한으로 움직이는 이 곳의 생활은 고독해서 담담했고 평온해서 쓸쓸했다.
이집트에서 총 이 주 남짓을 머무르는 일정이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은 사막 투어가 있는 단 하루 뿐이었다. 귀국 이틀 전, 바하리야 사막에서 일박을 하는 투어였다.
사막은 카이로에서도 차로 여덟 시간 거리에 떨어진 곳에 있었다. 투어를 가는 당일, 버스를 타고 꼬박 반나절을 달려 사막의 입구에 도착했다. 도착 후엔 가이드의 인솔 하에 여섯 명씩 조를 짰다. 우연히도 여섯 명 모두가 여섯 개의 다른 국적을 가진 다국적의 조였다.
짤막한 인사를 하고 낡은 지프차에 올라탔다. 그날 밤 캠핑을 할 오아시스가 있는 곳은 다시 차로 두 시간을 가야 있다고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 것이 오랜만이라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어차피 다들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이니까, 하고 생각했다. 잠시간 차를 같이 탔을 뿐 만났던 순간처럼 헤어질 사람들이었다.
차 안에서는 앞자리에 앉게 되어 옆자리의 가이드와 조금 더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덜컹거리는 도로를 따라 삼십 분쯤 달리던 차는 곧 도로를 벗어나 사막의 모래사장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표지판 대신 키 큰 선인장들이 가끔씩 나타나 망연히 굽어보다 사라졌다. 낯선 사막의 풍경이 신기했던 것도 잠시, 계속 보고 있다 보니 금방 지루해졌다. 가이드가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미지근한 사막의 바람을 맞으려 창문을 내렸는데, 어딘가 익숙한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차의 백미러에 한글이 써져있었다. 깜짝 놀라 가이드에게 이거 한국 차냐 물어보니 웃으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리고선 쾌활하게 여기도 보라며 룸미러를 가리켰다. 룸미러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던 볼펜에는 ‘노랑풍선’이라는 익숙한 여행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웃음이 나왔다. 사실, 허탈해서 웃음이 나왔다. 가장 먼 타국으로 도망쳐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집트 사막 한복판을 달리는 차가 노랑풍선이라니. 돌고 돌다 보니 결국 한 바퀴를 다 돌아버린 걸까. 또다시 제자리구나. 아니, 나는 애초에 도망치지도 못한 거였구나. 이 상황이 허무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동시에 묘하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는데 가이드가 창문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을 이었다.
“그래, 봤어. 한국어야.”
“아니, 이걸 봐. 비야.”
“무슨 말이야?”
“비가 오고 있어!”
차 앞 유리에 물 한 방울이 둥글게 맺혀있었다.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비가 온다고? 사막에서? 하는 생각이 들던 찰나, 그 물방울이 하나에서 두 개로, 두 개에서 다섯 개로 늘어났다. 비가 오고 있었다. 사막에서. 그 광경에 차 안의 모든 사람들이 프랑스어로, 영어로, 일본어로, 비를 말했다. "비야, 비야, 맞아, 비야, 진짜로, 비가 오고 있어!"
각기 다른 언어가 오간 왁자한 소란 뒤, 우리는 같은 소리로 웃었다. 곧 사진을 찍는 사람도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혀를 내밀어 빗방울을 받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어가 찍힌 작은 백미러에 웃는 얼굴들이 가득히 들어찼다. “정말, 비 온다.” 가장 마지막으로 말을 덧붙이는데 덩달아 웃음이 나왔다.
활짝 열린 창문 밖으로 손을 뻗으며 생각했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 아니라, 사람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고.
우리는 그래. 사람의 사이에서 지독하게 외롭고, 흘리지 않아도 될 눈물을 흘리고, 겪지 않아도 될 상처를 안고, 어딘가로 도망칠 수도 또는 돌아올 수도, 가만히 누울 수도 무한히 달려갈 수도 없어 그저 다 그만두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그래, 나는 혼자가 아니야. 이 곳의 우리는 서로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가까이에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