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고객은 많다 - 절망편 (1)

대뜸 할인부터 요구하는 ‘네고왕’과 호기심이 왕성한 ‘물음표 살인마’까지

by 연옥

프리랜서로 일을 하며 지금까지 200명이 넘는 고객들을 만났는데, 이들이 놀라울 만큼 몇 개의 유형에 쏙 들어맞는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이 중 인상 깊었고 나름의 대처법을 연마할 수 있었던 대표 유형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앞구르기 뒷구르기를 하며 보아도 진상인, 심각한 민폐 고객을 고발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다. 고객 입장에서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요구지만 이를 받아줘야 하는 입장에서 어쩔 줄 모르겠거나, 잘못된 대처로 언쟁이나 별점 테러가 발생할 수 있는 이슈에 가깝다. (그러니 만에 하나 이걸 읽는 저의 고객님이 계시다면 부디 노여워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제게 돈을 주는 모든 고객님을 사랑합니다.)


앞으로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일을 하려고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절망편 (1)을 시작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사랑합니다 고객님!!!!!)



1. 네고왕


71778_72552_489.jpg 50억 손해를 메꾸고도 남을 만한 프로모션 효과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손해' '후려친다'는 표현에 괜히 울컥하게 되는 1인 사업자가 접니다.


1) 유형 소개

직전 포스트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견적에 대한 흥정을 주도하는 타입이다. 서비스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며 결제 직전까지 갔다가 ‘다른 건 다 좋은데, 가격이 좀 비싸서요…’와 같은 멘트가 등장했다면 이미 네고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 레벨이 낮은 타입은 무조건 깎아달라고 우기고, 짬이 좀 더 찬 스타일은 서비스 조건을 자유자재로 변형하면서 현란한 선택지를 제시한다.


그렇게 밀당을 하다가 협의점에 도달하면 시원하게 결제를 해주고, 그렇지 않으면 ‘좀 더 고민해보고 연락을 주겠다’처럼 에둘러 거절하고 사라진다. 저렇게 거절하는 고객은 그나마 매너가 있는 편이지, 대화 중간에 읽씹을 하거나 채팅방을 나가버리는 사람도 많다. 그런 경우는 다시 돌아와 거래를 시도해도 다른 이유를 대며 내가 거절하는 편이다. 대화를 일방적으로 종료하거나 무시하는 스타일은 돈을 받은 후 작업을 할 때에도 이슈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추후 소개할 '묵언수행자' 내지는 '나는 잠수, 너는 봇' 유형 참고 요망)


2) 대처 방법

나의 원칙은 어떠한 경우에도 미리 고지된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정가를 받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견적의 일관성이 떨어져서 누가 왜, 얼마에 결제했는지 관리하기 어렵고, 추후에 할인받은 고객을 통해 의뢰한 사람에게도 똑같은 수준의 할인을 제공해야 해서 손해가 누적될 수 있다. 고객 입장에서도 의뢰 시점에 따라 견적이 들쭉날쭉하면 신뢰감을 느끼기 어렵다.


물론 개업한 직후에는 포트폴리오를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기꺼이 후려침을 당하기도 했었다. 이후에도 상대방이 몇십만 원에 달하는 거금을 한 번에 결제하면서 약간의 할인을 요구하거나, 내가 고객을 정말 놓치지 않고 싶을 때에는 흔쾌히 진행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예외 상황이다. 상대방이 제시한 조건을 내가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면 나는 정중히 거절하고, 거래 자체를 포기하는 걸 감수한다.


내가 제시하는 금액은 내가 판단하기에 나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다. 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 돈을 받고 일하면 나 역시도 일이 즐겁지 못하고, 받은 돈에 겨우 미치는 수준의 노력만 대충 들이게 된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상대방을 위해서라도 정가를 받고 일하려 한다. (고객 입장에서는 말장난처럼 들리겠지만 이게 사실이다…! 다음 달부터 갑자기 월급이 절반으로 깎인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전처럼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답이 나온다.)



2. 물음표 살인마


f51e36affb91b7a93e47d21ab433f228.jpeg 무서우니까?물음표?좀?거둬?주세요?


1) 유형 소개

돈은 시키는 대로 순순히 내겠지만, 대신 최대한의 뽕을 뽑겠다는 유형이다. 이 분들은 내가 서류를 넘겨받아 작업을 하고 있는 내내 카톡이 끊이지 않는다. ‘혹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답변하는 게 좋을까요?’ ‘제가 이렇게 적어봤는데 혹시 이것도 봐주실 수 있나요?’ 질문을 한 번에 모아 전달하는 건 기대하지도 않는다. 많으면 수십 개를,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업무 시간 전후를 가리지 않고, 심지어 한 마디씩 나눠서 보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혹시’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등 단어 하나가 도착할 때마다 카톡 알림이 울려대는데… 이게 어떤 기분인지는 직접 겪어본 분들이 헤아려줄 거라고 믿는다.)


의뢰한 작업과 별개로 단순한 궁금증이 있을 수 있고, 이에 대해서 간단한 답변이나 팁을 제공하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디까지는 무료로 제공 가능하고, 어디서부터 과금이 필요한데 공짜로 요구하는 것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질문 한두 개에 성실히 답변하다 보면 질문의 수위가 점점 과격(?)해지면서 나중에는 내가 그저 친절한 건지 아니면 호구가 된 것인지 의심스러워지는 지경에 이른다.


2) 대처 방법

안타깝지만 이 문제를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호구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초반에 잘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유료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내용과 종류를 명확하게 고지해서 분쟁의 소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글을 고쳐달라는 ‘첨삭’의 경우 100자 단위로 과금을 한다는 걸 제공 서비스 종류에 적어둔다. ‘가벼운 질문으로 위장해서 공짜로 첨삭해달라고 할 때에도 돈 달라고 할 거임’과 같이 공격적인 어투로 적는 게 아니고, 일차적으로는 과금을 당연히 예상하고 정식 작업을 의뢰하는 사람들을 위해 적어두되 추후 애매한 부탁을 받았을 때 이를 인용하는 방식이다.


100자면 문장 1.5개 정도의 아주 짧은 분량이니까 정이 없다고 느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공짜로 했다가 나중에 부탁받는 분량이 200자, 300자로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100자까지만 공짜라고 하면 100자짜리 부탁을 100번 받게 되는 게 이 각박한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이자 호구가 되는 지름길이다.


그렇다고 이를 모르고 부탁하는 고객까지 블랙 컨슈머로 싸잡아서 서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요청받은 서비스 대신 무료로 가볍게 제공할 수 있는 다른 서비스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센스를 잊지 말자. 나는 그런 경우 보통 1-2개 문장 정도의 짤막하고, 일반론적인 피드백을 제공하며 ‘보다 구체적인 피드백과 첨삭을 원할 경우에는 첨삭 서비스를 이용해달라’고 덧붙인다.


질문이 생기는대로 산발적으로 보낼 경우에는 어느 정도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답변할 수 있지만, 대부분 그런 스타일은 궁금증이 떠오른 즉시 참지 못해서 그렇게 보내는 거기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추가적인 질문을 보내기 전 신속히 답변부터 하고, 이후에 질문이 있다면 한 번에 모아서 이메일로 보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모아서 받은 질문에 대한 대응은 위 문단 내용을 참고하면 된다.


참고로 이런 유형은 질문 개수에 비례해 열정과 관심 역시 많기 때문에, 꼼꼼히 응대하면 감동적인 리뷰를 남겨주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좋은 리뷰 받겠다고 호구를 자처할 필요는 없으니 위의 팁을 참고해 현명하게 대처했으면 좋겠다.


- 분량 조절 실패로 인해 나머지 유형은 다음 포스팅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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