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시장 조사하고 프로필 백 번 고쳐서 만난 첫 고객이 날 후려쳤다
“친구 데려올 테니까 최대한 싸게 해 주세요.”
내가 보낸 견적서에 처음으로 답장한 고객의 첫마디였다. 프리랜서 플랫폼에 가입한 지 거의 2주 만에 처음으로 만난 고객이었기에 나는 무슨 조건이던 다 맞춰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심지어 지인까지 데려온다니, 너무도 고마운 손님이 아닌가!
나는 친구분과 함께 결제하면 각각에게 50%씩 할인해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읽고 한참 답이 없길래 친구랑 의논하는 줄 알았는데, 돌아온 기발한 답변을 보고 나는 픽 하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한테는 할인되는 거 비밀로 하고, 제 것만 공짜로 해주시면 안 되나요?”
받을 돈이 절실한 자와 쓸 돈을 최대한 아끼려는 자.
그야말로 자존심 강한 두 거지의 대결이었다.
이렇게 후려침 당하는 수준까지 올라오는 데에도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계정을 만들었다고 손님들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딸려 올라올 거란 기대는 허망한 착각이었기 때문이다. 캐시만 날리고 공을 치길 반복했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내 프로필이 너무 허접한가? 가격을 너무 비싸게 부르는 건가? 둘 다 문제일 가능성도 없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캐시를 낭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시장 조사를 시작했다. 바로 숨고에 등록된 나의 경쟁자들의 프로필을 모두 읽어보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일부 고수의 경우 제공하는 서비스의 종류와 가격대까지 상세하게 기재해두었었다. 이를 참고해 내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고민하고, 리뷰와 고용수가 많은 고수 기준으로 추려서 대략적인 시가를 예측해보았다.
프로필을 일일이 읽다 보니 눈이 빠질 것만 같았고, 알아볼수록 생각보다 한참 낮은 가격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니 리뷰 평균 평점이 높을수록 오히려 가격대가 높이 형성되어 있는 게 보였다. 반면 싼 가격에 많은 고객을 받아 공장식으로 돌린 사람들은 전체적인 고객 만족도는 떨어지지만 고용수는 압도적으로 높았다. 양과 질이 반비례하는 상식적인 결과지만, 시장에서 먹히는 전략을 확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보람찼다.
프로필을 읽었을 때 고개를 끄덕일지, 혹은 갸웃거리게 될지 갈리는 중요한 포인트도 눈에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바로 실제로 첨삭을 해봤던 학교나 회사 이름을 적고, 구체적인 작업 방식과 기한을 예시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첨삭을 한 지 몇 달이 지났었고, 설령 그걸 끌어올지언정 사소한 정보라도 상대방의 동의 없이는 공개할 수 없었기에 막막했다.
고민 끝에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있는 취업준비생들을 수소문해 무료 첨삭을 제안했다. 대신 나의 프로필에 지원한 회사 이름과 작성 분량, 작업 기한을 공개하고 리뷰를 남겨주기로 약속받았다. (내가 가입할 당시에만 해도 숨고 고객이 아닌 사람이 작성한 리뷰를 최대 3개까지 등록할 수 있었다. 이에 숨고 거래 이력이 없었어도 리뷰를 모으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다.)
비록 5천 자가 넘는 자기소개서 세 개였지만, 눈물을 머금고 첨삭한 끝에 세 개의 리뷰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텅 빈 프로필을 조금씩 채워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손톱을 물어뜯으며 수정을 하다가 드디어 첫 고객을 만나게 된 것이다. 비록 친구를 팔아먹을 정도로 비열한 분이었지만, 나라도 만약 처음으로 손님을 받기 위해 동료 한 명에게 거짓말을 하라고 한다면 숨도 안 쉬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만의 작은 비밀을 지킬 자신이 있었는데, 아뿔싸.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그의 소개로 나를 찾아왔다는 친구는 우리 대화를 해킹이라도 했는지 지인 할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할인 혜택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공짜로 하겠다는 첫 고객에게 다시 돈을 내놓으라고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2인분의 작업을 0.5인분의 돈만 받고 헐값에 하게 된 것이다.
표정이 굳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지만, 마지막 작업물을 보낼 때에도 나는 극진한 존대어와 웃음이 만개한 이모티콘을 쓰며 울분을 감출 수 있었다. 나의 호구짓에 만족했는지 두 명의 고객은 모두 관대한 리뷰를 남겨준 게 그나마 다행이다.
비대면 업무의 장점이 빛을 발한 기회이자, 세상은 넓고 고객이 나를 속 터지게 만들 방법은 다양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은 순간이었다. 다시는 호구 잡히지 않아야지, 지키지 못할 공허한 다짐을 되뇌는 날이 끝이 아니라 시작에 불과했다는 것도 알았더라면... (울컥)
왕초보 프리랜서 Tip: 현명하게 시장 조사하는 방법
어떤 업계에서 일하던 시장 조사는 필수다. 시가와 비교해 나의 견적이 터무니없이 높거나 낮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고, 잘 나가는 경쟁자의 비결도 확인할 수 있다.
나처럼 프리랜서 사이트에서 활동한다면 다른 프리랜서들의 프로필을 꼼꼼히 정독하는 걸 추천한다. 고객 입장에서 보았을 때 장점과 단점을 알 수 있고, 제공하는 서비스 종류나 견적 산정 기준까지도 배울 수 있다. 리뷰가 좋은 프로필을 주로 참고하되, 부정적인 리뷰가 많은 사례도 함께 분석했다. 불만족이나 분쟁이 발생하는 포인트를 찾고 미리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본문에 적지 않았지만, 타사 플랫폼이나 자체적으로 구축한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업체까지 폭넓게 조사했었다. 개인이 아닌 업체의 경우에는 운용할 수 있는 맨파워나 인프라 규모가 애초에 다르기 때문에 견적을 참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대신 프리랜서 개인에 비해 웹사이트에 수록된 서비스 관련 정보가 풍부하고, 홍보 방식 역시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참고하기에는 좋다.
어떤 방식을 선택하던, 고객을 가장해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숨고의 경우 견적을 발송할 때 캐시를 사용하는데 이를 고객이 클릭해 열어보기만 해도 환불받을 방법이 없어진다. 따라서 시장 조사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가상의 요청서를 만들어서 뿌린 뒤, 도착한 견적을 읽고 유유히 탈퇴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꼭 돈이 들지 않더라도 고객인 척 서비스 내용에 대해서 캐묻고, 의심스러운 질문만 반복하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 역시 민폐다. 둘 다 당해본 입장에서 꽤나 속이 쓰렸다.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