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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Sera May 11. 2023

있다와 없다

겨울 귤을 입 속에 넣어 주고 싶은 마음


겨울에만 귤을 먹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런 얘기를 하면 바로 '라떼'가 되는 거죠? 요즘은 일 년 사 계절 내내 귤을 먹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귤은 겨울에 제일 맛있어요. 겨울이 귤의 제철이잖아요.


매년 겨울 저는 제주 감귤을 팔아요. 친한 동생이 제주에서 농장을 하고 있어서요. 동생부부가 키운 못난이 꼬마 귤들을 팔고 있어요. 귤을 팔기 전에 꼭 내가 먼저 먹어봐야 해요. 그래야 맛이 어떤지 알 수 있잖아요. 제가 판매하는 귤도 있지만, 제주에 살 때 알았던 지인들이 보내준 귤 때문에 겨울에는 늘 귤이 풍년이에요.


떠나가는 것들을 곁에 붙잡아 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세월, 젊음, 행복 같은 것들은 남겨 둘 수 없어서 더욱 애틋해지나 봅니다. 귤의 상큼한 매력을 오래 느끼고 싶은 저는 겨울이 끝날 때쯤 귤청과 귤잼을 만들어요. 매년 빠지지 않고 하는 일이에요. 과일로 만든 청은 설탕이 들어가서 조금 걱정이 되지만, 귤즙이 빠져나와 서로 어우러지고 효소가 되는 거니까 설탕덩어리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3개월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청을 거르고, 잼을 만들었어요. 제가 만든 꼬마귤청과 꼬마귤잼 빛깔 보세요. '때깔 보소~'라고 해야 왠지 더 실감 나겠는걸요.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이죠? 한 번 맛보면 깜짝 놀랄 거예요. 세상에 없는 맛이거든요. 특히 귤잼은 '와!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라고 다들 말해요. 그리고 그다음 말은 '이거 팔아라' 예요. 매번 듣는 얘기입니다. 꼬마귤잼은 시중에 파는 그 어떤 귤잼과도 맛을 비교할 수가 없답니다. 재료부터 다르니까요.


입안 가득 귤의 상큼함이 남아있어요. 아주 약간 쌉싸래하면서 새콤달콤한 맛. 상상해 보세요. 꼴깍~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특이한 점은 씹히는 맛도 황홀하다는 점이에요. 잼이라기보다는 유럽풍 마멀레이드에 가까워요. 버터가 많이 들어간 빵보다는 맛이 담백한 식빵이나 치아바타에 발라 먹으면, 내가 지금 파리 에펠탑 아래 잔디밭에 앉아 있는 기분이 들 정도예요. 아, 바게트에 발라 먹으면 되겠네요.


귤청은 샐러드드레싱이나 나물 무침에 설탕, 물엿대신 넣어요. 향도 맛도 완벽해집니다. 저는 마늘대가 나오는 초여름에 마늘대 윗부분을 반으로 가르고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을 때, 귤청을 살짝 넣어서 무쳐냅니다. 상큼함을 아무도 따라올 수가 없어요.


작년 겨울에는 제가 바빴나 봅니다. 겨울에 해야 하는 일들을 많이 못 했어요. 그래서 올해는 겨우 요만큼 만들었네요. 너무 조금이네요.


'잼 만들면 꼭 연락해야 해. 나 미리 예약이야.'라며 겨울부터 눈 빠지게 꼬마귤잼 기다렸을 친구에게 잼 한 병보낼 거예요. 만나러 가기 전에 '뭐 줄까?' 물으면, 꼭 '네가 만든 귤청 있어?'라고 묻는 친구와 탄산수에 타 먹으면 맛있겠다는 동생에게는 귤청을 보내주고요. 그러면 제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주고 싶은 사람이 많은 저는 줄 것도 모자라서 막상 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안 파는 게 아니고 못 파는 거예요. 올 겨울에는 가득 담아야겠어요. 여기저기 많이 나눠주고 싶어서요. 내가 먹어서 맛있는 것을 당신에게도 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무엇을 갖고 있지 않은지가 중요한 것이 사랑의 세계다. 나의'없음'과 너의'없음'이 서로를 알아볼 때, 우리 사이에는 격렬하지 않지만 무언가 단단하고 단호한 일이 일어난다. 함께 있을 때만 결여가 있는데, 없음은 더 이상 없어질 수 없으므로, 나는 너를 떠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마음산책, 26쪽 "



시간이 없어, 돈이 없어, 입을 게 없어, 가진 게 없어, 어이가 없어. '없다'는 말은 '있다'는 말보다 뒤지는 느낌이에요. 부족하고, 빈곤하고, 소모되고, 결여되고..... '없다'는 말은 사람을 지치게 할 때가 있어요. 가끔은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해요. 걱정, 근심, 병 같은 없으면 좋겠는 것들을 빼고 대부분의 다른 것들은 '있는' 것이 낫다고 생각해요.


늘 그렇지만, 내게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것을 당신에게 주고 싶어요. 당신이 이미 가진 것이어도 괜찮지만, 당신에게 없는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면 '주는 것' 그 자체로 기쁘니까요. 내가 특별히 남보다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당신이기 때문에 기꺼이 내어 주고 싶은 거예요. 당신의 그 '없음'이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강력한 무기가 되어도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것을 연민이나 동정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어쩌면 지금 내가 없는 것은 다른 무엇이 아닌 '마음 둘 곳'이 아닐까요. 내 마음 둘 곳을 찾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어요.


 나의 '없음'과 당신의 '없음'이 만나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을 때, 더 이상 나는 마음 둘 곳을 찾지 않아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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