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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Sera May 03. 2023

며느리도 안 가르쳐 줄 거야

시간이 해결해 주는 것들


밥은 남이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하지만 장아찌는 내가 담근 게 제일 맛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장아찌 장인이 바로 나다. 못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본 사람은 없다는 세라표 장아찌. 최근에 가장 히트 친 장아찌는 '아까시나무 꽃 장아찌'이다. 작년 5월에 처음 담았는데, 맛도 향도 비주얼도 예술 그 자체이다.


곧 만나게 될 봄의 끝, 5월 중순쯤에 아까시나무에는 흰꽃이 포도처럼 탐스럽게 열린다. 우리가 흔히 아카시아꽃이라고 알고 있는 꽃이 바로 아까시나무 꽃이다. 꽃을 덖어서 차로 마시기도 하고, 술도 담고, 튀겨먹기도 하지만 아까시나무꽃의 향기로움을 가장 오래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장아찌이다. 아찔하고 황홀한 꽃 향기를 먹을 수 있다니! 입안에 가득 남는 향기의 여운 때문에 나도 모르게 쩝쩝거리게 된다.


장아찌를 먹고 나면 꼭 레시피를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신선한 재료에 간장, 설탕, 식초, 물을 1:1:1:1의 비율로 섞어서 한소끔 끓인 후에, 한 김 식혀 붓기만 하면 끝이라고 말해준다. 정말 그게 다이다. 그렇게 해도 똑같은 맛이 안난다고 투덜거리는 이들이 종종 있다. 사실 내가 말해주지 않는 비밀이 하나 더 있다. 장인이라면 아무도 모르는 자기만의 비법 하나 정도는 있어야 장인 아닌가? 신당동 떡볶이 거리의 마복림 할머니가 며느리도 안 가르쳐 준다는 그 비밀 같은 것이 나에게도 있다.



바로 시간이다. 채소들이 간장물 속에 담겨서 보내는 시간, 우리는 그 시간이 하는 일을 숙성이라고 한다. 서로 스며들고, 녹아들고, 어울리게 되는 것은 시간이 하는 일이다. 채소는 자기가 가진 수분을 내어 놓고, 간장은 채소에서 나온 물과 섞여 서로가 부드럽고 연해진다. 아무리 재료가 맛있어도 아무리 장아찌 간장의 비율이 황금비율이어도 재료에 맞게 숙성시키지 않으면 장인의 장아찌 맛은 탄생하지 않는다. 얼마나 숙성시켜서 냉장고에 넣는지는 시어머니가 와도 안 가르쳐 주는 진짜 비밀이다.



사람사이에서도 숙성이 필요하다. 만나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 헤어져서 돌아가 아까의 만남을 떠 올려보는 시간. 자기 것을 내어 놓고, 자기의 색깔을 보여주고 서로에게 섞여 부드러워지는 시간. 이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서 우리 사이의 감정이 끈끈해지고, 견고해질 때 비로소 특별한 사이가 되는 것이다. 아까시나무꽃 장아찌를 다 건져먹고 남은 간장에서도 꽃향기가 나는 것처럼. 일반 간장과는 다른 특별한 간장이 되는 것처럼



사람에 따라 한 달이 걸릴 수도 있고, 삼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최근에 매력적인 한 사람을 만났다. 나는 그녀에게 단 몇 시간 만에 빠져들었다. 사실 고백하자면 만나기도 전에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보고 마음이 끌렸다. 내 시간을 그녀에게 쓰고 싶고, 그녀와의 사이를 숙성시키고 싶어졌다. 지금 카톡을 넣어봐야겠다. 오늘은 기분이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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