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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야 Oct 15. 2019

혼자 연남동에 갔다

그날의 연남동은 모두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겠지.



  혼자 연남동에 갔다. 평일 한낮의 햇볕은 따사로웠지만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햇빛이 쏟아지는 골목에 서늘한 바람이 통했다.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 가고 싶은 곳은 몇 군데 있었다. 일을 할 때는 상상도 못 했던 평일 낮의 연남동. 이 동네가 고즈넉하게 느껴지는 게 놀라웠다.

  우선 내가 좋아하던 일러스트레이터의 소품샵에 들러 구경을 하고 배가 그렇게 고프진 않지만 점심을 건너뛸 수는 없어서 근처에 에그타르트 가게에서 아이스 라떼와 함께 에그타르트 하나를 먹었다. 연남동에 혼자 오게 된다면 가고 싶었던 독립서점을 스마트폰으로 찾아본다. 평일에 쉬는 곳이 많다.

  아주 작아서 책장을 구경하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 서점을 세 군데나 들렀다. 한 곳은 여행 책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손님은 나 혼자. 주인장은 책방 옆에 딸린 개인 사무실에서 일을 하느라 바쁜 모양이다. 천천히 책 구경을 한다. 책들의 제목만 훑어봐도 훌쩍 떠나고 싶어 진다.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까마득한 옛일처럼 느껴진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혼자 가까운 어디라도 다시 한번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그런 의미에서 연남동도 여행지라면 여행지지, 생각했다.

  다음 서점으로 향했다. 걸어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한가로이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산책하는 연인과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친구들. 같은 날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그날의 연남동을 모두 다르게 기억하겠지. 하지만 그때의 풍경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두 번째 서점은 닫혀있었다. 통유리 창으로 서점 안이 훤히 보였는데 불이 꺼져있고 책들이 쌓여있어서 그런지 아무도 살지 않는 오래된 집처럼 보였다. 책들만이 영원히 잠든 유물처럼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창가에 세워 놓은 안내문이 눈에 띄었다. ‘평소 좋아하시던 책을 말씀해주시면 재밌게 읽을 책을 추천해드립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은 설레면서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느꼈던 감정을 가장 단정하고 진중하게 권하는 방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에게 설명한다면 나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선뜻 한 마디로 간추리기가 쉽지가 않다. 요즘의 마음으로는 황당하리만큼 절절한 사랑이야기라든가, 담담한 문체로 쓴 수필이 읽고 싶다. 가을을 타는가 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서점으로 향했다. 가파른 철제 계단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면 작은 방 크기의 책방이 있다. 책방이라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책을 위한 작은 전시관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 테이블에 가지런히 진열된 책을 보고 있자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짙은 빛깔의 나무 책장에는 시집과 소설책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어쩐지 둘러보니 온통 나무였다. 가구와 책, 모두 나무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끼며 찬찬히 둘러보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이곳에서도 역시 손님은 나 혼자였기 때문에 너무 조용했고 안에서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와 전화를 받았다. 반가운 목소리였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었대도 언제든 끼어들어올 수 있는 사람. 오늘 있었던 일들을 일기장에 적듯이 그에게 얘기한다. 그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적당히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들어준다. 그렇게 버스 정류장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게 걷는다. 엉뚱한 정류장에 서 있는지도 모르고 통화를 한다. 뒤늦게 버스가 떠났다는 걸 깨닫고 다시 기다려야 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차가웠던 공기도 가을 햇볕에 뜨겁게 달아오르고, 자꾸만 볼이 뜨거워진다. 매일 이렇게 소소한 하루가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된다. 소소한 나의 하루 속에도 작게나마 네가 항상 스며들어 있어 주기를 바란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 길. 창가를 스치는 한강의 풍경을 동영상에 담아 너에게 보내며 오늘의 행복이 너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본다.




*방문했던 서점은 순서대로 ‘사이에’, ‘서점, 리스본’, ‘아침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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