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오지 않는 밤
쓰디쓴 밤하늘을 찻잔에 고이 담아본다.
홀짝홀짝 마시다가 입술도 검게 물들었다.
찰랑찰랑 달이 반만 떠오른다.
찻잔을 기울일 때마다 윗입술을 간질이고 나는 웃음이 나고 만다.
입안에 밤하늘이 들이차고 자잘한 별들이 톡톡 터진다.
탄산처럼 입안이 따끔따끔하면서도 개운해진다.
기분이 조금 풀린다.
새벽이 오기 전엔 다 마셔야지.
일렁이는 물결을 잠시 본다.
조금이라도 자 둬야 내일 또 내일의 몫을 하지.
일정을 하나씩 상기시킨다.
하지만 밤하늘을 다 마실 때까지도 잠은 안 오고
비어버린 찻잔 바닥만 휑뎅그렁하다.
차갑게 식어버렸다.
잘 수 있는 시간을 헤아려보고 몸을 누인다.
아까 삼킨 별들이 속을 긁어대는 모양이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뱃속을 뒹구는 별들을 세어본다.
하나, 둘, 셋, 넷...
내가 밤하늘을 다 마셔버린 탓에
창으로 칠흑 같은 어둠이 쏟아진다.
어둠이라고 부를 수 없는 공백이다.
비어버린 검정. 바래버린 감정.
이젠 잘 수 있겠지.
검게 물든 입술로 나쁜 말을 중얼거리다 흠칫 놀라고 만다.
공백을 가르고 그가 떠오른다.
나의 밤을 갈기갈기 찢은 그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말을 대신한다.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한다.
‘세상은 아름답고, 앞날은 밝고, 넌 열심히만 하면 돼.’
이런 말들을 하는 사람을 이젠 믿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