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터십은 스스로 자기 배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리더십'이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끌고 가는 거라면, '내비게이터십'은 스스로 자기 배를 끌고 가는 것이지요. 이젠 리더십이 아닌 '내비게이터십'의 시대가 올 거라 믿어요."
"인생은 '목적지'를 찾고, 그다음 '자기 진단'을 하고, 다음에 경로를 설정해야 해요."
셰익스피어는 인생을 '불안정한 항해'에 빗대어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 노래했지만, 이 험난한 세계 속에서의 모든 선택은 결국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물론 이로 인한 책임까지 홀로 짊어져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운명 아닌가.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찾게된다. 부모님, 멘토, 친구, 혹은 애인까지.
하지만 세상이 이토록 험난할수록 "각자 인생은 반드시 스스로 찾아야만 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외치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이 있다. 구건서 박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오랜만에 만난 구건서 박사의 표정은 여전히 밝았다. 그는 최근 아프리카에 다녀온 탓에 얼굴이 까맣게 탔다고 했지만, 표정만큼이나 마음도 밝게 느껴졌다.
구건서 박사는 어린 시절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굶주림을 겪다가 핸드백을 훔치고 끼니를 해결한 대가로 소년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한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이와 동시에 그의 진짜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는 소년원에서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비참한 현실을 깨달았기에 한평생 비슷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각오를 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뼈아픈 경험을 잊지 못한 그는 막노동과 노점상을 하다가 택시 운전사로 새 삶을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시간을 짬내어 공부한 끝에 결국 노무사가 되었고, 이후 60세가 넘은 나이에 법학 박사 학위까지 당당하게 거머쥐었다.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아직 30년도 살지 못한 내가 함부로 '포기'라는 단어를 꺼내선 안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이 그는 최근 아프리카 케냐에 방문해 다양한 활동을 마치고 왔다. 아이들과 함께 아리랑을 합창하고, 아프리카 전통도 구경하고, 준비한 프로그램도 진행했다고 한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내비게이터십'이다.
"'리더십'이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끌고 가는 거라면, '내비게이터십'은 스스로 자기 배를 끌고 가는 것이지요. 이젠 리더십이 아닌 '내비게이터십'의 시대가 올 거라 믿어요."
일시적 도움이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후원금을 모으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케냐 아이들 각자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립하며, 나아가 자신들의 사회까지도 일으켜 세우길 바란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가 아프리카에 도움만 준 것은 아니다.
"이번에 보니까 서양과 동양 문화가 다르면서 비슷한 점들이 있더라고요. 거긴 추장을 중심으로 한 '부족단위'래요. 우리도 마을 중심으로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웠잖아요. 쉽게 말해서 마을 전체가 '공동체 문화'죠. 서양은 '경쟁, 투쟁, 약탈' 위주인데, 아프리카와 동양 문화는 '협조, 함께' 등을 핵심으로 하지요. (거기도) 우리가 가진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니까,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데 서양식의 경쟁이 아니라 함께 잘되는 방식이니 이게 큰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는 아프리카에서 상생하는 문화, 즉 공동체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아직 자본주의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잡지 않았기에 가능한 이야기 같기도하다. 이어 그는 인생의 주체성을 강조했다.
"우리의 인생은 ‘목적지’를 찾고, 그다음 ‘자기 진단’을 하고, 다음으로 ‘경로’를 설정해야 한다고 봐요. 기존의 목적지는 부모님과 사회가, 자기 진단은 안 하고, 경로는 상사나 교수, 친구가 해줬지 자기가 한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남의 인생을 산거죠. 전부 껍데기예요. (…) 자기 인생을 살면 남 탓을 할 필요가 없어요. 내 인생이니까 내 인생이지, 전부 내가 바꾸면 되잖아요. (…) 살면서 이걸 자꾸 남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남 탓을 하게 되는 거지요."
결국 각자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더불어 살아가는 문화의 소중함을 잊지 말자는 이야기다. 그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내비게이터십을 갖춘 후 세계로 나아가 세상을 바꿔주길 바란다고 했다. 누군가는 뻔한 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그 말이 결코 쉽사리 나오진 않을 것이다.
어느덧 예순이 넘었지만 그의 인생은 현재 진행형이다. 앞으로도 그는 거센 파도를 뿌리치며 인생을 항해할 것이라 믿는다. 그를 보자니 문득 자유와 반항 속에서 인생을 노래하던 시인 보들레르의 시 한 편이 떠오른다.
"파리한 빛 아래 / 뻔뻔스럽고 시끄러운 인생이 / 멋모르고 달리며 춤추며 몸부림친다" - '하루의 마지막'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있지 않은가. 정작 아무것도 모른 채 몸부림치는 이 뻔뻔한 인생을 위하여.
물론 인생을 흘러가는대로 살지, 혹은 누군가를 따라갈지 아니면 그의 말처럼 스스로 선택할지 또한 각자 선택에 달려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