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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윤 Oct 05. 2023

세습정치로 몰락한 일본 문화

[ㅁ 때문에 한류는 망하는 중입니다. 8화]

 홍콩과 더불어 일본 문화도 한때 아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일본의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 만화 3대장으로 불리는 나루토·원피스·블리치는 2000년대 초반 아시아에서 엄청난 흥행을 일궈냈다. 그중 원피스는 지금까지 5억 2천만 부가 팔리면서 단일 작가가 발행한 단일 만화로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다. 포켓몬스터, 드래곤볼 등은 1990년대 아시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인기를 모았고 지금까지도 전 세계 MZ세대의 동심으로 남아있다. 포켓몬은 2021년 전 세계 콘텐츠 IP 매출 1위로 디즈니의 미키마우스(3위), 스타워즈(5위)보다도 높았다. 또 헬로키티가 2위, 호빵맨은 7위, 마리오는 9위로 전 세계 콘텐츠 IP 매출 탑 10에 일본 IP가 4개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닌텐도·플레이스테이션 등이 전 세계 게임 시장을 주름잡았을 정도로 일본 문화의 인기는 지금의 한류 못지않았다.


 전 세계 콘텐츠 IP 매출 탑 10에 일본 IP가 4개나 있을 정도로 일본 문화는 높은 영향력을 자랑하지만 예전만큼의 위상은 잃어버렸다. 만화의 종주국인 일본에서 최근 한국 웹툰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카카오가 론칭한 일본 만화 플랫폼 '픽코마'는 일본 앱 만화 시장 점유율 1위이며, 네이버의 '라인망가'는 일본 디지털 만화 통합 거래액 1위에 올랐다. 또 K웹툰을 원작으로 한 각종 K콘텐츠가 성공을 거두면서 K웹툰에 대한 수요가 일본에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K웹툰이 K팝·K콘텐츠를 잇는 차세대 한류로 떠오를 것이란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한때 세계를 점령했던 일본 문화는 왜 예전만큼의 영광을 잃어버린 걸까?


 일본 문화의 몰락은 경제 침체와 관련이 있다. 흔히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요약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과 산업화에 속도를 내면서 일본은 1960년대부터 80년대 말까지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일궈냈다. 이 시기 일본의 경제성장률을 보면 1960년대에는 평균 10%, 70년대 5%, 80년대 4%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같은 성장세에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부자인 나라가 됐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던 일본 경제는 70년대 터진 1·2차 오일쇼크로 위기를 맞았다. 오일쇼크로 미국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미국은 금리 인상을 통해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금리 인상으로 달러가 비싸지면서 미국은 무역적자 늪에 빠지게 됐고, 이미 가전·자동차 시장을 주름잡고 있었던 일본은 달러보다 싼 엔화를 앞세워 수출 호황을 맞이했다. 특히 일본은 미국을 상대로 엄청난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이에 미국이 무역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다시 달러 가치를 낮췄는데, 달러 가격이 떨어지면서 일본의 대미 수출은 급감했고 일본 경제는 소용돌이에 빠지게 됐다. 이때부터 일본 경제가 장기간 침체하면서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여기까지가 흔히들 얘기하는 일본 경제 몰락의 요인이다.


 몰락하는 일본 문화에 경제 얘기를 덧붙인 것은 문화 발전은 탄탄한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경제가 침체하면 문화 발전도 더뎌진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문화의 몰락은 장기간 경제 침체의 여파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장기간 경제 침체의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경제학적 원인은 전문가들의 자료를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비전문가인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일본의 정치체제에 있다. 일본은 중국 못지않게 1당 독재체제가 지속되는 나라다. 중국과 다른 점이라면 일본에는 야당이 존재한다. 하지만 야당의 존재감은 매우 미미하다. 일본 자민당은 1955년 창당한 이래 1993~1996년, 2009~2012년을 제외하고 약 60년간 일본을 통치했다.


 일본 의회의 평균 연령은 55.5세로 OECD 국가 중 2위로 나이가 많다. 또 일본 여성 의원 비율은 참의원 10%, 중의원 25.8%로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일본의 정치를 정리하면 '50대 이상의 아저씨들이 약 60년간 일본을 통치하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 다양성을 잃은 채 폐쇄적인 의회가 장기간 유지된 일본 의회는 성장 동력을 잃어버렸다.


 한국의 기성 양당이 철 지난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낡은 이념에 집착하듯이 일본 자민당은 '전쟁 국가로 전환'에 갇혀있다. 근래 자민당의 최대 성과 또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헌법 해석 변경 결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2014년 아베 정권은 일본이 무력행사를 가능토록 헌법 해석을 변경했다. 또 기시다 내각은 아베 전 총리의 유지를 이어 전쟁 가능 국가로 전환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상태다.


 전범국인 일본이 다시 전쟁 가능한 국가로 돌아가려는 건 반인륜적인 행보지만 자민당 입장으로서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사업을 통해 경제를 일으켰던 자신들의 전성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유일하게 경제를 성장시켰봤던 경험이기에 시대착오적임에도 불구하고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자유'를 외치고,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부르짖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일본 정치의 더 큰 문제는 세습 정치다. 피격 사건으로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는 3대 세습 정치인이었다. 그의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는 자민당 간사장(당의 실권자)과 외무대신을 역임했고,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56·57대 총리였다. 또 동생인 기시 노부오는 참의원과 중의원을 역임했고, 조카인 기시 노부치요는 최근 선거에서 중의원으로 당선됐다. 뿐만 아니라 고이즈미, 기시다 등 일본의 주요 정치인들도 다 세습 정치인이다. 어떤 이유로도 테러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오죽하면 기시다 총리의 연설 현장에서 테러를 시도했다가 붙잡힌 테러리스트가 세습 정치에 분노해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말했을까. 이처럼 일본에서 정치는 일종의 가업이다. 아버지의 지역구를 아들이 물려받는 것이 일본에서는 전혀 이상하지 않다.


 폐쇄적이고, 세습 정치가 만연하며, 자민당이 줄곧 통치한 일본 정치가 과연 새로운 정치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지난 30년간 만들지 못했듯 앞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일본 경제가 장기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니 일본 문화도 침체기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매번 같은 정당이,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운영하는 정치에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나타날 수가 없다. 새 비전을 제시할 수 없으니 자꾸만 지난의 영광을 찾아 회귀하려는 것이다.


 홍콩과 일본 문화의 몰락 배경에는 1당 체제와 폐쇄적인 의회라는 정치가 있었다. 그런데 홍콩과 일본을 보면서 혹 떠오르는 나라가 있지 않던가. 맞다. 한국이다.


'ㅁ 때문에 한류는 망하는 중입니다.'는 다음화에 이어집니다.

*이전화 읽기
1화: 프롤로그)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없는 이유
2화: 글로벌 시장을 대하는 카카오의 민낯
3화: 싸이월드와 카카오의 공통점: 글로벌 시장 공략의 부재
4화: 영어는 글로벌 진출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다.
5화: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을 하지 못하는 이유.
6화: 한류는 어떻게 세계를 휩쓸었을까?
7화: 1당 체제가 몰락시킨 홍콩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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