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제1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지난 2년간 두 여자, 유영과 캘리의 내밀한 이야기가 담긴 편지를 시간순으로 엮은 공동매거진입니다. <잃시상>은 평범한 직장인 유영이 우연히 심리상담전문가 캘리를 만나 서로의 감정일기를 편지 형식으로 나눈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던 유영이 캘리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감정의 바다에서 유영(游泳)할 수 있게 되는 성장 스토리입니다.
제1화 ‘요즘 감정이입이 너무 잘돼서 힘들어요’는 유영이 감정일기를 처음 쓰게 되면서 겪은 동네 자살소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유영과 캘리, 두 여자가 감정일기를 교환하면서 풀어가는 이야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격주로 발행됩니다. 다음 이야기는 1월 15일 일요일 오전 9시에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캘리선생님. 공대생의 심야서재 매일일기 쓰기 이벤트의 인연으로 감정일기를 알게 되어서 기뻐요. 선생님 블로그를 보니 저처럼 감정을 쌓아두고 회피하는 사람은 꼭 감정일기를 써야 하네요. 4주간 매일일기 쓰기 미션에 성공해서 선생님을 만났으니 감정일기도 완주할게요. 이번 주는 감정이입이 너무 잘돼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날이었어요. 그날의 하늘은 떨이 상품처럼 추레했어요. 저는 그 하늘을 보며 쓰레기장을 향해 터벅터벅 걸었어요. “그래, 사람과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게 아니지. 버릴 건 버리자”라고 저 자신도 알듯 모를듯한 말을 지껄이면서요. 그러다가 그 추레한 하늘을 등지고 5층 옥상 난간 주변을 불안하게 서성이는 그 애를 보게 되었어요. 질질 끌던 슬리퍼 소리를 죽이고, 뭐가 들었는지 알 수 없는 보라색 종량제 봉다리를 조용히 내려놓았어요. 봉다리에서 해방된 손으로 주머니의 핸드폰을 꺼내 119를 막 누르려고 하는 참에 ‘삐용삐용’ 소리가 들렸어요.
소방관 아저씨들이, 아니 사실 저보다 20살은 어리다고 해야 하나요. 젊다고 해야 하나요. 젊다고 할게요. 그 젊은 소방관은 잘 훈련된 솜씨로 에어매트를 재빠르게 펼쳤어요. 소방관이 주변 정리를 하자, 경찰들이 몰려왔어요. 모두 그 애를 주시하고 있었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요. 그 아이는 옥상을 올라가면서 직접 신고를 했다고 해요. “나~올라가요” 하고… 여경의 끈질긴 설득에 터벅터벅 걸어오는 그 아이는 맨발에 겉옷도 없이 떨고 있었어요. 아이의 떠는 모습을 보니, 저도 떨렸어요. 그 애가 누군지, 어떤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그 아이의 심정은 알 것 같아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랬을까요.
그 아이는 생채기 하나 없이 무사했어요. 그러나 저의 감정은 무사하지 않았어요. 지구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버린 사과처럼 제 감정은 깊은 곳으로 추락했어요. 아버지가 던진 사과에 맞은 그레고르 잠자처럼요…그 애처럼 몸이 떨리고, 발끝이 시렸어요.
선생님 요즘 감정이입이 왜 이렇게 잘되는 거죠?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가요. 글쓰기 덕분에 관찰력이 생겨서 그런 건가요. 주변에 일어나는 일과 저의 기억이 슬라이드처럼 빠르게 겹쳐 보여요. 그 아이의 맨발에서 저의 맨발이 보이는 거죠.
갑자기 웬 맨발 이야기 인가, 궁금하시죠. 30년 전 이야기예요. 그 아이가 등진 하늘처럼 하늘이 잔뜩 인상을 쓴 그런 날, 바람이 노래하는 날, 기분 나쁠 정도로 맑게 개인 날, 구름이 힘없이 질질 끌려다니는 날, 그런 날이면 마음의 준비를 했어요. 아버지는 기분에 따라, 알 수 없는 날씨에 따라 쇳소리를 내며 저를 혼냈어요. 매 앞에 장사 없다고, 그때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대들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몰드가 들어간 브래지어를 입기 시작하면서 그간 아버지의 따귀 세례 값을 따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어른처럼 브래지어를 입었다고 해서 합스부르크 막시밀리안 1세가 갑옷을 입은 것처럼 힘이 생긴 건 아니더라고요.
아버지와 첫 대거리를 한 날, 따귀 값은커녕 본전도 못 건진 저는 맨발로 집을 뛰쳐나가 어느 건물 지하실 층계참에서 한 시간 넘게 숨어있었어요. 그 아이처럼 저는 엄마의 설득에 맨발로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갔어요. 30년 전 그때, 저도 그 아이처럼 죽고 싶었어요. 이런 기억 때문일까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 아이의 맨발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해넘이를 볼 때까지 우울의 바다에서 허우적댔어요. 그러다가, 창밖에 처녀설이 수줍은 듯 내려앉은 걸 봤어요.
“저 어린 눈도 밟히고 짓이겨져 딴딴해지겠지, 그러다가 언젠간 또 녹겠지”
이런 생각으로 저를 위로했어요.
그날, 감정이입으로 힘들었던 건, 나에게도 그런 슬픔의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요? 무슨 영국 경험론자 같은 이야기를 지껄이고 있네요. 제가 경험한 거니까, 그 아이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거겠죠? 그 애의 아픔과 내 아픔이 만났으니, 언젠가는 녹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이 블로그 쓰신 글에서 이런 문장을 봤어요.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생기면, 내가 또 뭘 얻으려고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 보라”
감정이입이 너무 잘 돼서 힘든 이런 일에서 제가 뭔가 얻을 게 있을까요? 첫 감정일기를 써보니 편지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하고, 수필 같기도 하네요.
첫눈 내리던 그날의 하늘, 그 아이와 저의 맨발을 기억하며 캘리선생님께 첫 감정일기를 보냅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는 격주에 한 번 일요일 오전 9시에 발행됩니다.
1월 15일 일요일 오전 9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제 3화로 이어집니다.
본 감정일기를 읽은 후 (아래 링크)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을 읽으시면 화나고 우울한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심리상담전문가 캘리의 피드백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주는 상담소> 제 2화 왜 그렇게 감정이입이 잘 될까요? 우리 함께 살펴 보아요.
https://brunch.co.kr/@ksh326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