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살았던 집주인 할머니는 건물 앞에 큰 텃밭을 일구셨다. 인심이 좋으셔서 수확한 채소들을 세입자들한테 골고루 나눠주셨는데, 종류도 다양해 오이, 호박, 깻잎 등 냉장고가 풍성했다. 버리지 않고 다 먹는 게 보답하는 거라 생각해 열심히 얻어먹었지만,죄송하게도가지로 반찬 만들면 꼭 상해서 버리곤 했다. 고기보다 채소를 좋아하는 입맛이지만, 가지는 좀처럼 친해지기 어려웠다. 몸에는 참 이로운데 볶아놓으면 축축하고 물컹거려 젓가락이 안 가더라는.
보라둥이 채소를 외면하고 살던 어느 날, 출장길에 들른 작은 백반집에서 흥미로운 광경을 접하게 된다. 가게 이모님이 반찬 만들 가지를 잔뜩 썰어 커다란 양푼에 담은 뒤 소금을 뿌리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손님은 나 혼자. 밥 먹기를 중단하고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절궈서 쪽 짜야 볶았을 때 국물이 안 나오지. 꼬들하니 맛있고"라는답변이 돌아왔다.
헐. 오이는 그렇게 소금에 절여 무쳐먹었으면서 가지 절일 생각은 왜 하지 못했을까. 오이나 가지나 수분 있는 채소인데. 혹 나만 몰랐던 걸까?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실패할 걸 대비해 가지 10개를 사서 소금에 절여 볶아봤다. 이전에 했던 것과 하늘과 땅 차이였던 가지볶음. "어머, 어머, 완전 맛있어!"를 외치며 밥 두 공기를 비웠더랬다.
자! 그럼 가지볶음을 함께 만들어보자. 우선 다듬어 씻은 가지(가느다란 가지는 6개, 통통한 가지는 4개 정도)를 적당한 두께로 어슷 썬다. 여기에 꽃소금 평평하게 한 수저.
중간에 한번 뒤집어 15~20분가량 절인 가지는 면포 또는 손으로 물기를 꼭 짠다. 난 가지를 처음 절였을 때 수분이 이렇게 많은 채소 인가 하고 놀라기도 했다.
가지볶음의 간은 소금에 절였을 때 어느 정도 하는 것이니, 질겅 씹어 짠기를 가늠해보자. 너무 짜다 싶으면 물에 한번 헹궈 수분을 없애도록 한다.
가지와 궁합이 잘 맞는 조미료로 굴소스를 즐겨 쓰고 있다. 가지에 다진 마늘 약간, 굴소스 반수저 넣기.
굴소스에는 단맛, 짠맛, 감칠맛이 다 들어있으므로 별다른 조미료를 추가하지 않아도 되나 올리고당을 조금 넣어 단맛을 추가했다.
조물조물 무친 가지는 양념이 스며들도록 10분가량 둔다.난 가지볶음 할 때 고소함이 배가 되도록 식용유에 들기름을 조금 섞어 볶는다.
양념해 간이 배인 가지는 오래 볶지 않고, 중간불에서 3분 정도 달달 볶아준다.
여기에 채 썬 양파 반줌, 굴소스 조금 넣고 양파가 나른해지면 다진 파 넣고불 끄기.
수분을 날리고 밑간을 해서 볶은 가지는 꼬들꼬들한 것이 젓가락이 자꾸 가게 만든다. 난 갓 쪄낸 꽃빵 사이에 저 가지볶음을 넣어 먹기도 한다.
요리는 스스로 터득하는 것보다 보고 배우는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들른 백반집에서 가지를 소금에 절이는 이모님을 못 만났더라면 가지와 친해지는 데 긴 시간이 걸렸을 터. 가지 볶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신 이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