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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토에게 쓴 편지

누군가에게 전달한 손편지 -1

by 마요
*미사토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저희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일본 히로시마 어느 고등학교에서 온, 저희 집에서 몇주간 홈스테이를 했던 친구입니다. SNS로 간간히 소식을 이어가며 언젠가는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도쿄로 가벼운 출장을 가게 된 김에 마음을 먹고 16년만에 만나게 되었어요. 그 때 전해주기 위해 써갔던 편지입니다. 물론 미사토에겐 구글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번역해 일본어로 전달했어요.


미사토에게


우리가 고등학생 때 만난 이후로 처음 만나다니..! DM으로는 아주 캐주얼하게 틱 연락해본것처럼 말 걸었지만 나 사실 마음속으로는 무슨 대단한 우정을 그린 영화의 주인공이 된것처럼 마음이 몽글몽글 거렸어.


니가 연차를 내면서까지 그 날 꼭 만나자고 하기에 너도 나만큼 이 만남이 소중하구나!하고 기쁘면서도 살짝은 ‘아 하루종일 할말이 많을까, 어색하면 어쩌지’ 조금 걱정도 들었어. 하지만 이렇게 편지를 쓰려는데도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무슨 말부터 해야할까 고민인걸 보면 그런 걱정은 아무래도 쓸 데 없는 걱정인 것 같아.


너와 함께했던 그 짧은 시간은 지금 33살의 나에게도 여전히 큰 영향을 주는 소중한 시간이었어. 난 친구들이랑 있었던 일들 잘 까먹고 ‘에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고 잘 잊어버리는 편인데 너와의 추억은 기억나는 장면들이 너무 많아.

예를들면, 우리의 첫만남부터. 줄지어 서있는 열댓명의 일본 학생들 중 니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오고, 오 하느님 저렇게 귀여운 아이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제발 이상한 아이만 우리집에 오지 않게 해주세요 - 싶던 그 제일 귀여운 아이가 바로 우리집에 오는 아이라고 호명되었던 순간. 그리고 우리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게 된 첫 날 밥상에 앉자마자 후다닥 다시 방으로 뛰어가더니 작은 쪽지를 가져와 무릎위에 두고는 더듬더듬 <잘 먹겠스무니다!> 하던 모습, 같이 찜질방에 가서 양머리했던 것, 팥빙수를 좋아하던 너의 모습 등등.. 그리고 우리가 헤어지던 날, 학교로 데려다주는 우리 아빠 차안에서 <雪の華(눈의 꽃)>을 들으며 서로 고개를 돌려 각자 방향의 창문만 바라보며 눈이 붓도록 줄줄 울었던 장면까지도.


그 때의 내가 그리고 우리가 너무 좋고 그때의 기억이, 그 어리고 순수한 우리의 우정이 정말 너무너무 아름다워서 그 감성을 잃지 않으려고 일부러 노력하기까지도 해! 내가 지금도 일본 드라마나 영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틈만 나면 일본 여행을 가고 싶어하고 일본 노래를 즐겨듣고 심지어는 언젠가 일본에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한 8할이 너에 대한 추억이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가장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했던 10대 고등학생 시절에 너를 만나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 건 정말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너무 특별하고 소중한 내 보물이자 자산이 되었어. 정말로 고마워.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서도 나 다음주에 미사토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니까 아직도 연락을 하고 있었냐며 대단하다고 하더라고. 이렇게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말 걸 수 있는 인터넷이 발달한 세상에 산다는게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몰라! 나는 일본 여행을 너무 좋아하고 특히 도쿄는 가도가도 너무 좋아서 몇 년에 한 번씩 꼭 가지만서도 막상 너에게 연락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이렇게 만났으니 너도 다음번에 한국에 여행계획이 또 생긴다면 꼭 연락해줘야 해! 이번엔 나의 서울 집에서 다시 한번 니가 홈스테이를 한대도 너무 좋을 것 같거든!


이렇게 만나게 돼서 정말로 기뻐! 우리 이 감사한 인터넷 세상을 잘 이용해서 인스타그램의 시대가 언젠가 가고 또 다른 어떤 SNS의 시대가 온다해도 계속 드문드문 연락을 이어가자. 할머니가 되어서도 너를 만나러 일본에 놀러가고싶어. 함께 두 할머니가 일본의 눈 오는 노천탕이 있는 료칸에 온천여행도 하고 싶어! 가끔 한국으로 놀러와서 함께 찜질방을 가는 일본인 할머니 친구를 가진 할머니도 되고싶어!

그러니 앞으로도 정말 오랜시간, 잘 부탁해!!!


- 마요가




(덧)

그래서 우리의 만남이 어땠느냐고?

우리는 긴자잇쵸메 역 8번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마음을 다잡고 8번 출구를 찾아 나가려는데 어디선가 '마요짱' 하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주책맞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색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무색하게 점심부터 밤 늦게까지 그냥 생각나는대로 끊임없이 떠들 수 있었다.

나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당시에 기념품으로 줬다는 무슨 오리 장식품이 있다는데 그걸 도쿄 자취방에 가지고 올라와 있었다면서, 오늘 그 오리한테 '마요짱 만나고 올게' 라고 말하고 나왔다고 하는게 정말 일본인스러운 귀여움의 포인트였다. (꺆 넌 어쩜 그런 행동을 하니???)

그리고 미사토는 그 오리와 내가 쓴 편지를 찍어 SNS에 올렸다














(미사토의 글)
편지를 읽고 또 눈물이 났다. 그녀의 상냥한 느낌이 듬뿍 담긴 편지. 바쁜 틈을 타서 사전을 찾아보면서 써준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이렇게 또 만날수 있어서 감사하다. 많은 사랑을 담아서, 그녀와 그녀의 소중한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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