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달달함을 즐기는 아들을 바라보며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
부모교육 때 빠뜨리지 않고 짚고 넘어가던 내용 중 하나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본다.
원할 때든 원치 않을 때든
옷을 입을 때에도
양치를 할 때에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자신의 뒷모습을 거울에 비춰서 꼼꼼히 바라본 적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 비포사진을 찍다 보면 반드시 뒤태를 찍어두라고 한다.
요가복처럼 딱 붙는 옷을 입고 뒤태를 찍어서 보게 되면 정말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이것이 정녕 내 뒷모습이었다는 말인가?
이렇게 군살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단 말인가?
대박 울퉁 불퉁이로구나. 아!~정말 심각한데.
가끔은 허리 뒤쪽 튀어나온 튜브 벨트 때문에 그 모습이 혐오스러워서 며칠 동안 밥맛도 잃을 지경이다. 즉 현실을 직시하고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게 되면 사람이 낮아지고 겸손해진다고나 할까?
나 자신을 아주 잘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보이지 않는 뒷모습을 잘 가꾸는 것도 자기 관리의 한 방법이다.
모습만 그러할까? 아니다.
삶의 모습도 동일하다.
아이들의 눈은 스펀지와 같아서 보는 대로 모방하고 보이는 대로 따라 하며 체화시켜버린다.
결혼한 부부의 모습이 아름답고 가정이 화목하고 가족 간의 사랑이 두터우면 아이들은 그런 가정을 자연히 꿈꾸고 소망한다.
결혼한 부부의 모습이 서로를 원망하고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여 가족 간의 불화가 잦다면 아이들은 결혼이란
무모한 짓이며 그러한 가정을 꾸려나가야 함에 부담을 느끼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 우리들의 모습, 최소한 자녀를 두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부부의 책임은 자녀들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거울이 됨을 숙지해야만 한다.
나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다.
20살 성인이 됨과 동시에 여자 친구를 사귀어서 둘 다 첫사랑을 소중히 가꾸어가는 중이다.
결혼에 대해서도 굉장히 긍정적이고 되도록 일찍 결혼을 소망한다.
즉, 하나의 자랑을 하자면 내 아이들이 결혼에 대해 이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부부의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았다는 해석을 유추해볼 수 있다. 나름 화목한 가정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 부부가 노력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에 으쓱 어깨가 올라가는 작은 교만함이 생겨난다.
두 아들은 사랑꾼이다.
그중에서 둘째 아들은 국제 사랑을 나누고 있다.
캐나다 유학생으로 만난 여자 친구는 국적이 대만이다.
둘이서 대화할 때 옆에서 듣고 있자면 아주 닭살스럽기 짝이 없다.
I love you는 기본이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하는데 녀석은 여자 친구를 더 사랑한단다.
아들이 군대 입대를 앞두고 한국에 들어와 있게 되자 둘은 페이스톡으로 대화를 나눈다.
영어와 중국어, 서툰 한국어를 섞어서 다국적 대화를 나누는 저들은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는 현재 진행형이다.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에 눈을 뜨면 부모에게 모닝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부스스한 그 모습 그대로 서로의 밤사이 안부를 묻는다. 모닝 대화를 시작으로 아침을 먹을 때는 무엇을 먹는지 외출은 어디를 갈 껀지 실시간 생중계를 하며 이동하고 쇼핑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몇 번의 통화를 하는지 세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눈다. 얼마나 좋으면 저렇게까지 실시간 생중계를 해대고 있을까? 얄밉기도 하고 질투도 잠시 나서 아침 점심 저녁 세 번만 통화하는 건 어떠냐고 하니 그럼 여자 친구가 삐진다고 한다. 데이터가 모자라면 내 폰의 핫스폿을 켜고 대화하는 아들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그냥 지켜보는 중이지만 간혹 그런 생각이 든다.
저 아이들도 사랑이 식어버리면 어쩌지?
저 아이들은 지금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랄 텐데
아니 영원할 꺼라 생각할 텐데
혹시라도 사람 마음이 지금과 달라지거나 상황이 달라진다면 그 상처는 얼마나 클까?
그것을 알기는 알까? 알려줘야만 할까?
노파심에 혼자서 쓸데없는 고민인 줄 알면서도 고민을 하고 있다.
남녀가 만나서 서로 보고 싶고, 그립고, 같이 있고 싶고, 그런 달달한 감정을 오래오래 함께 나누고 싶어 결혼을 하는데 대부분 몇 년이 지나면 달콤함은 사라지고 현실만 선명하게 보일 때가 대부분이다. 그때 생각하게 된다.
나는 누구인가?
왜 결혼을 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을까?
앞으로 남은 삶은 어떻게 살아갈 것 인가?
깊은 고민에 빠지고는 한다.
저 철부지 풋사랑을 나누는 사랑꾼 아들 녀석도 그런 사랑의 아픔을 어렴풋이는 알겠지만 지금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을 리가 없다. 지금이 좋으니깐.
하지만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갖고 가정을 꾸린다면 사랑의 색깔이 조금씩 바뀌어감을 이해하고 당연한 것으로 의연히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불타는 빨강의 사랑이 언제까지 빨강으로 지속되지는 않는다.
화무십일홍이라는 옛 속담처럼 모든 것은 영원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 색이 변하더라도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때로는 빨강보다는 붉지 않지만 주황빛의 사랑이 편안 하서 좋을 수도 있고 색이 바랜듯한 따뜻한 노랑의 사랑이 좋기도 하고 푸릇푸릇 상큼한 초록의 사랑도 상쾌하기만 할 것이다.
부부는 함께 늙어가며 삶 속에서 여러 겹의 색깔 사랑을 같이 경험한다.
빨강의 사랑만이 사랑이 아니라 색은 변해가지만 그 사랑은 여전히 부부의 삶 속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둘을 다 태워버릴 것 같은 빨강의 사랑에 자녀를 통한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운 노랑의 사랑도 알게 되고 이 모든 것들이 함께하는 가정에서의 편안한 사랑을 통해 푸르디푸른 초록빛 바다 같은 사랑도 경험해 본다. 세상이 온통 사랑천지로 느껴질 때 그 감사의 마음을 온전히 신을 향해 돌리는 성스런 보랏빛 사랑도 경험해 본다. 우리 삶 속에서 단 한순간도 사랑이 빠진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색깔 사랑들을 경험하고 내 것으로 채워 나가다 보면 가을 단풍처럼 알록달록 아름답고 찬란한 삶을 연출해 갈 것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 녀석들도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사랑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에 서 있다.
두 아들의 사랑을 엄마로서 진심으로 응원한다.
‘사랑밖엔 난 몰라.’
가사 한 구절이 떠오르는 밤이다.
좋을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