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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노엘 Dec 03. 2020

나만의 색으로 당당히 살아가기

길들여지지않는  자존심 그리고 자존감

   

오늘은 수능일이다. 

열아홉 살의 한 해가 그들에겐 얼마나 힘들고 고단했을지...

나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가슴 한구석이 찡해져 옴을 느끼는 아침, 수능 고사장인 어느 학교 교문 앞을 지나며 잠시 그들의 오늘 하루 위해 기도해 본다. 가끔 남편과 대화할 때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냐고 물어오면 나는 늘 한결같은 시점을 떠올린다. 바로 고등학교 시절이다. 


그 이유는 돌이켜보면 가장 후회가 많이 남는 시절이 그때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정말 코피 터지게 목표하나 부여잡고 미친 듯이 올인해서 공부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그때는 진정 몰랐지만 지나 보니 그때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날들이 없었다.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게 된 것, 늘 늦은 깨달음은 후회로 남는 것이 삶이구나 싶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었는가 보다.

 늘 머릿속에 풀리지 않는 실타래 하나를 넣고 다니는 듯했다. 막상 풀어보겠다는 의지도 없었으니 그렇게 멍한 시간만 보낸 것이 사실이다. 해보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명확하지 않았던 19살의 고3. 나는 진 로또 한 잡을 수가 없었다.  

    

자존심은 세고 자존감은 낮은 사람들이 성격적으로 예민하고 외골수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건 그때의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주어진 규칙들을 잘 따르는 온순한 성격 또한 아니었다. 지금의 성격이 그때도 드러났던 것이 남들이 똑같이 하는 활동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무언가 독특한 것, 독창적인 것, 개척하는 것, 도전하는 것에 호기심을 느꼈고 일상적인 학교생활은 덤덤하기 그지없었다.

반복적인 학교생활, 규칙적인 시간표, 습관화된 스케줄, 성적으로 산출되는 모든 평가방식들이 무기력한 익숙함이 되어버릴 때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멍해지는 스스로를 구제할 아무런 방법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지나고 나니 후회만 잔뜩 남는다. 아무리 싫더라도 규칙에 복종하며 이기적인 욕심도 좀 가지고 독한 마음으로 공부의 목적도 찾아보았다면 지금과 다른 삶의 문을 열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도 내 삶을 돌아보면 그때와 똑같은 성격이다. 그 성격대로 길들여지기 싫어하고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며 권력과 시스템에 복종하는 것을 죽을 만큼 싫어하고 있으니 말이다.     

대학 졸업 후 결혼하기 전까지 직장생활을 했다. 

고분고분시키는 일만 하기에도 바빴을 사회 초년병이 뭐가 그리 답답하고 숨 막히게 했는지 결혼을 탈출구 삼아 퇴직을 선택하고는 셀프 선언을 했다. 월급 받는 직장인으로는 다시는 살지 않겠다고. 

이런저런 삶의 고비들을 겪으며 예전에는 전혀 이해가 안 가던 부모님의 모습이 이해가 되는 것을 보며 이제는 나도 진짜 어른이 되어 감을 느낀다. 아버지는 초등교사셨다. 학교 시스템은 복잡하지만 때로는 단순하다. 그냥 익숙해지고 길들여지면 내가 내가 아닌 모습으로 버티고 살아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하지 않는 직장이다. 하지만 소신 있는 교육을 펼칠 수 없음을 참아내지 못하고 우리들이 다 자라기도 전에 퇴임을 해버리셨다. 엄마는 두고두고 아버지를 원망했다. 그 원망은 부부싸움으로 이어졌고 그런 모습을 보는 우리들은 불안함을 느끼며 살아야만 했다. 교직을 떠나 더 잘 살면 좋았으련만 그렇지 못했고 가족들을 고생시키는 아버지가 한때는 참 야속하고 미웠다. 이제는 자식들이 모두 가정을 일구었고 부모 도움 없이도 다들 잘 살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아버지를 원망하던 그때의 딸이 아버지의 성격을 어쩌면 이리도 똑 닮아있는지 내가 나를 바라보며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딸도 복종과 길들여지는 것을 세상 제일 싫어하는 성격임을 알게 되었다. 


똑같다. 
성격이.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대신 주어진 성격대로 새로운 것에 스스로 도전하며 창의적으로 살아보려 한다.

그 길이 틀에 박힌 길이 아니면 더 좋고
그 길이 권력 앞에 낮아져야만 하는 길이 아니라면 더 좋고
그 길이 남은 삶 동안 가치 있는 길이면 더없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자존심도 세고 자존감도 높은 우아한 중년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더라도 나만의 색깔대로 당당히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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