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 도착하자마자 그 애가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역시나 조용히 앞자리를 지키며 무언가를 읽고 있다. 할 일이 읽는 것밖에 없나. 지루하기는.
오전 8시 20분. 나름 일찍 도착했음에도 교실에 들어서면 늘 멸치 대가리의 왜소한 등과 텅 빈 교실이 나를 맞이한다. 언제나 빠르게 수업 준비를 마치고서. 잠깐 말이라도 붙여볼까. 잠을 설친 나머지 빨갛게 부어오른 눈을 비볐다. 그 애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팔에 얼굴을 묻었다가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일어나. 담임 왔어.
옆자리에 앉은 짝꿍이 내 어깨를 잡고 앞 뒤 흔들어 깨웠다. 기지배 그냥 말로 하면 될 것을. 괜스레 어깨가 시큰거렸다. 짝꿍은 항상 공책에 뭔가를 끄적이기만 하고 다른 애들과 어울리지 않는다. 끄적끄적. 오른손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렇다고 해서, 끄적끄적. 반 아이들과 크게 사이가 좋지 않은 건, 끄적끄적. 아닌, 끄적끄적, 모양이다. 끄적끄적. 좋지 않은 건, 끄적끄적, 아닌…… 재미없군. 오른손에게 단단히 잡힌 펜은 흐릿해질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대체 뭘 쓰기에 저렇게 재미없게 시간을 보내는 걸까? 흐린 눈으로 짝꿍의 정수리에 난 새치를 세었다. 나와 같은 나이인 게 분명한데도 짝꿍은 이상하리만치 애답지 않았다. 새치 하나, 새치 둘, 알고 보면 나이 50 먹은 노인이라거나 뭐 그런 건 아닐까? 어디서부터였더라, 둘…… 새치 셋, 새치 넷……. 이마저도 지루함을 느끼고 하품을 했다. 눈물 머금은 눈이 깜빡거렸다.
너 쟤한테 관심 있니?
누구.
쟤 말이야.
여기서 '쟤'는 멸치 대가리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모르쇠 작전은 언제나 통했다. 다만 짝꿍에게도 통할지는 미지수였다.
됐다. 말을 말자.
이름이 없으니 시치미를 떼기도 편하다. 짝꿍은 답답하다는 듯 콧바람을 내쉬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 동시에 목까지 오는 짧은 단발머리가 찰랑거렸다.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머리나 감고 오면 참 좋을 텐데. 부지런한 짝꿍의 오른손이 계속해서 움직였다. 끄적끄적. 어느새 담임이 조례를 마치고 교실 밖을 나섰다. 그 애, 그러니까 멸치 대가리도 밖을 나섰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교실 밖을 나섰다. 저기 보이는 멸치 대가리의 뒤를 밟으려는데 짝꿍이 대뜸 내 손목을 잡았다. 설마 날 따라 나온 건가?
나중에 후회하게 돼도, 나는 몰라.
그게 뭔 뚱딴지같은 소리니.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짝꿍을 내버려 두고 걸음을 재촉했다. 뒤를 돌아봤더니 교실로 돌아가지도 않고 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비장해 보이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멀뚱히 서서 내가 사라지는 걸 끝까지 지켜볼 셈인가. 1초가 지날수록 일정하던 보폭이 점점 넓어지고, 멸치 대가리는 어디로 간 거야. 엄마 잃은 미아가 된 것 같았다. 오늘따라 복도도 길게 느껴졌다. 빠르게 좌우를 둘러보다가 계단을 내려가는 그 애를 발견했다. 멀리서 봐도 멸치 대가리는 멸치 대가리였다. 소리라도 날 까봐 조심하며 그 애를 따라 달리지 않고 달렸다. 발 끝에 힘을 줘서 계단을 내려가자니 쥐가 날 것 같았다. 얘는 대체 어디까지 가는 거야. 계단 난간 끝에서 왼쪽으로, 중앙 홀에서 왼쪽, 꺾어서 오른쪽. 도서실이다.
기껏 나와서 간 데가 도서실이야? 왠지 모르게 기운이 빠졌다. 뭔가 기대를 했던 건 아니지만……. 여태껏 도서실에 가기 위해 위장 스파이 짓을 했다니. 문을 코앞에 두고 허리를 숙여 쥐가 날 것 같았지만 쥐 나지 않은 다리를 움켜쥐었다.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온 거 책이나 구경해 볼까. 다리에서 손을 떼고 허리를 세웠다. 멀쩡한 책을 읽은 지 꽤 오래됐다. 학교니까 도서실에 멀쩡한 책 하나쯤은 있겠지. 낙관적인 생각을 그치자 그제야 멸치 대가리가 떠올랐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도. 멸치 대가리가 왜 왔냐는 식의 눈빛을 보내면 책 읽으러 온 거니 쓸데없는 자의식 집어치우라는 식으로 눈빛을 보내야지. 시뮬레이션은 다 짰다. 설레발을 치며 도착한 지 3분 만에 도서실 문을 열었다. 열었는데…… 벗었다? 믿기지 않아 눈을 감고 다시 부릅떴다. 그래,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 애가, 정확히는 멸치 대가리가 멸치 대가리를……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