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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결임 Aug 25. 2024

1화

육지에서 살아 움직이는 멸치를 보는 건 생전 처음이었다. 걷기도 하고 앉아서 필기를 하기도 하며 말을 하기도…… 아, 아니구나. 멸치 대가리가 말을 하는 걸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말을 하는 걸 본 '사람'은. 사람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멸치 대가리라서 육지 언어를 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숨을 고르는 중인지 아가미가 벌렁거렸다. 아가미 덕분에 육지 생활을 할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역시 말은 하지 못하는  분명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내가 육지 언어를 가르쳐 준다면 대화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쉬는 시간을 틈 타 그 애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늘 멸치 대가리의 주변을 둘러싸며 빈정거리는 삼인방이 선생님 몰래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잠깐의 찬스가 생겨났다. 근데 막상 멸치 대가리에게 다가가니 할 말이 없었다.



뭐 하니.



고작 생각해 낸 말이 뭐 하냐는 말이라니. 한국사 지문을 읽고 있던 멸치 대가리는 멸치 대가리를 들어 나를 빤히 바라봤다. 넌 뭐 하는데?라고 묻는 눈빛으로. 멸치 대가리의 눈은 둔하고 탁할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하다. 원래도 이런 눈이었나. 새까만 눈동자는 보석이라도 되는 양 영롱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생각하는데 멸치 대가리가 다시 고개를 묻고 한국사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그 행동에는 육지 사람과 소통하려는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뭐 하냐니까. 이번에는 조금 짜증을 내면서 말하자 멸치 대가리는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능청스럽게 반짝이는 눈으로 한국사 지문을 좇았다. 아니 뭐 하는 거냐고.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하려고 입을 열었는데 뒷문으로 담배 냄새를 풍기며 시끄럽게 삼인방이 들어왔다. 결국 입을 뻐끔거리며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았다. 얼굴에 오른 열과 다르게 엉덩이가 차가워서 마음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맨 뒷자리에는 맨 앞에 앉아있는 멸치 대가리가 한눈에 보였는데 한 눈으로 봐도 삼인방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대답도 안 하고 무시하더니 꼴좋다. 대리 만족감과 통쾌함을 느끼며 한 손으로 턱을 괴었다. 그러다가, 아 맞다, 멸치 대가리는 말을 못 하지 라는 생각이 뒤늦게 밀려왔다. 어쩐지 미안해졌다. 그래서 담배 냄새에 찌든 삼인방과 괴롭힘을 당하는 멸치 대가리를 못 본 척, 모르는 척하고 책상에 엎드려 그냥 잤다.



집에서 와서도 그 애를 생각하느라 유튜브를 볼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간을 허비했다. 엄마가 저녁으로 구운 고등어 생선을 내왔는데 고등어 눈을 보니 그 애 생각이 났다. 정확히는 멸치 대가리의 동그란 눈이 생각났다. 비록 고등어 생선의 눈은 탁하고 흐릿했지만. 크고 까맣고 영롱하게 빛이 나던 그 눈. 그 눈으로 무엇을 담고 무슨 생각을 하며 살까. 그 애의 고향은 바다일까. 바다가 그리울까. 생선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더니 엄마가 그럴 거면 먹지 말라며 접시를 치워버렸다. 젓가락을 쪽 빨았다가 네 하고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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