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일어나 김밥을 쌌다.
오늘은 김녕 미로공원에 가기로 했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할 생각이었다.
사실 이건 내 자진 결정이었다. 한 끼쯤 사 먹으면 그만이긴 하지만, 여행 중 삼시 세끼 바깥음식은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소풍엔 김밥을 싸서 가야 기분이 난다.
그래서 오늘은 손 크게, 많이 준비했다.
우리는 다섯 식구.
어린아이도 있는데 김밥 10줄을 쌌다.
그 과정이 어디 쉬운가. 김밥은 싸는 것보다 준비하는 시간이 더 길다. 전날 밤부터 재료를 손질하면서도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나’ 싶었지만, 막상 아침에 김밥을 말고 나니 ‘그래, 이걸로 오늘 우리는 든든하고 행복하겠지’ 싶어 뿌듯했다.
가는 길, 김녕해수욕장에 잠시 들렀다.
어디를 가든 바다는 빼놓을 수 없다.
질러 갈 수도 있지만 늘 일부러 해안도로를 따라 달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바다를 봐도 ‘아, 바다네’ 정도였다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보였다. 연신 춥게만 느껴졌던 바다가 그리 춥지 않았고, 바닷바람은 여전히 사나웠지만 햇살은 따뜻했다. 구름도 예뻤다.
사진을 찍다가 문득 보인다.
내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는게.
나는 날씨에 유난히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 밝아진 하늘과 포근한 공기가 한몫했겠지만,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 마음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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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녕 미로공원.
도시락을 펼칠만한 곳이 있을까 싶었는데, 공원 안에 가족끼리 앉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 있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드는 그곳에서 김밥을 펼쳤다. 아이들은 신나서 한입 가득 베어 물었고, 우리 부부도 정성껏 싸 온 김밥을 한 조각씩 집어들었다. 역시 싸 오길 잘했다.
배를 채운 뒤, 공원을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미로를 찾아 나가는 재미도 좋았고, 아기자기한 포토존도 많았고, 발자전거도 있었다.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잘 꾸며진 놀이터도 있었다.
무엇보다 공원 안에서 살고 있는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 우리 가족은 고양이를 참 좋아한다. 귀여운 고양이들을 보며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그렇게 하루 종일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잔소리할 필요 없이 아이들이 마음껏 놀고, 우리 부부도 한숨 돌릴 수 있는 곳. 여기가 그런 곳이라니, 참 다행이었다. 기대 없이 들렀는데, 만족감이 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런 시간이 가능할까 싶었다. 아니, 시간은 있었지만 온전히 누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현실을 떠나왔음에도, 내 앞에 놓인 문제들이 먼저 보였다. 그래서 바다를 봐도 거친 바람과 몰아치는 파도만 눈에 들어왔다.웃어야 할 순간에도 진짜 웃을 수 없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조금씩 웃고 있다.
김밥을 쌌고, 햇살을 느꼈고,
남편의 카메라 앞에도 꽤 괜찮게 서 있을 수 있었다.
그렇게,
바람도, 바다도, 내 마음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