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음식점

자영업의 고충

by 글몽인

베트남 음식점에서 고수 판 돈으로 베트남 배낭여행을 간 사람이 있다?

그게 바로 나였다!


진득하게 오랫동안 일을 해보자는 다짐으로 겨울방학에 본격적으로 알바 어플들을 뒤졌다. 조건은 무조건 기숙사 주변으로 걸어서 갈 수 있어야 했고 학기 중에도 할 수 있는 주말 알바여야 했다.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걸어서 15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학교 주변 음식점에서 서빙 주말 알바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바로 면접을 보러 갔다.


사실 베트남 음식점이라는 것은 가게 소개를 보고 알았고 정확한 위치와 메뉴도 몰랐다. 일단 문을 두드려 보고 떨어지면 다른 걸 찾으면 되지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비단 알바뿐만 아니라 모든 부분에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떨어지면 어쩌지? 어려우면 어쩌지? 같은 고민을 할 시간에 일단 지원해보고 만약 떨어지면 다른 걸, 어려우면 차츰차츰 배워가자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학교 앞 번화가의 변두리에 위치한 식당은 그렇게 넓지도 않고 딱 적당했다. 반미 샌드위치와 피자, 쌀국수, 팟타이를 판매하는 가게였다. 뭔진 몰라도 매우 맛있어 보여서 나중에 손님으로라도 가야지!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좋았다. 가수 싸이와 똑 닮은 푸근한 인상의 사장님과 대화를 마치고 주말부터 일을 하기로 했다. 면접 당시엔 가장 베스트 자격 조건인 장기 근무 가능자, 인근 거주자를 어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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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재밌으면서 즐겁게 일을 했던 알바였다. 사장님도 편하고 같이 일하는 언니들이 어린 나를 잘 챙겨주면서도 항상 장난치고 놀려줘서 편했다. 관계에서 유독 언니들이 많은 이유는 내가 놀리기 좋고 막 대해도 되는 친동생 같기 때문일 거다. 나도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는 언니들과 친해지는 속도와 밀도가 더 높았다.


주기적으로 회식을 했었는데 기숙사 음식만 먹고사는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걸 다 사주셨다. 소고기, 양고기, 돼지고기, 연어, 그리고 2차는 항상 비싸서 못 가는 수제 맥주집으로 가서 언니들이 이것도 먹어봐! 이건 어때! 등 다양한 걸 시도할 수 있게 해 줬다. 항상 먹을 때마다 "우와!! 이렇게 맛있는 거 처음 먹어요!" "헐 여기 비싸서 못 갔는데!" 등 어린 나이에 한 치도 부끄럼 없이 나만 할 수 있는 솔직한 리액션을 선사하여 사장님과 언니들에게 열심히 재미를 주었다.


시간이 지나 언니들은 취업을 하며 떠났고 어쩌다 보니 내가 가장 높은 짬을 가진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있었다. 원래도 인기가 있는 식당이었지만, 그 당시 동남아 음식이 트렌드가 되면서 식당의 인기가 미친 듯이 솟았다. 학교 앞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에 웨이팅은 기본이었고 이른 저녁에 재료가 다 팔려서 조기 마감을 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그만큼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주문받기, 서빙, 샌드위치 만들기, 재료 가져다 주기, 설거지 등을 다 쳐내다 보면 주말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학기 중에는 한 번도 본가에 가지 못했다.


당시 시급이 6,580원이었을 때다. 이제 같이 힘듦을 토로할 언니들도 사라지고 회식이 주는 행복도 덜해지고 50만 원 남짓한 월급은 많은 업무량을 해서 지칠 대로 지친 나를 위로해 주지 못했다. 글을 쓰다 보니 기억이 났는데 하루는 일하다 운 적도 있었다. 감기에 걸려 머리도 아프고 몸살 기운이 올라온 상태였지만, 차마 집에 갈 수가 없었다. 너무 바쁜 데다가 짬이 제일 높은 내가 빠지면 가게가 돌아가지 못해서 약을 먹으며 일을 했고 결국 그다음 주 주말 난 그만두겠다는 말을 남겼다. (만약 월급 인상이 있었으면 참았을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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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은 붙잡았지만 샌드위치 오븐에서 나오는 열기에 충혈된 눈으로 완곡히 거절했다. 2014년에 처음 가게를 열 때만 해도 샌드위치만 했던 사장님은 하루 매출 20만 원을 채우면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쉽지 않은 자영업 일이어서 안 될 때는 불안해서 힘이 드셨다고 하면서 또 잘 되니 쉬지 못해서 힘들다고 하셨다. 처음으로 자영업을 하는 사장님들의 고충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잘 돼도, 안 돼도 '힘'이 드는 건 너무 당연했다. 그래도 내가 번 돈을 내가 제일 많이 남길 수 있다는 게 사무직에 비해 좋은 점이라면, 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부담감이라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마음이 잘 안 맞고 믿을 수 있는 직원을 구하는 게 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같이 손발을 맞추었던 한 언니가 워홀을 떠나고 나서 사장님과 투톱의 포지션으로 가게를 운영할 직원이 필요했는데 다양한 사람을 고용해서 함께 일하다 마침내 마음에 드는 남자 직원을 만났다. 분점을 준비하던 사장님은 신나서 직원 오빠에게 가게 노하우와 비밀 레시피 등 모든 것을 공유했는데 그 오빠는 나보다 일찍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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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가게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던 오빠는 '베트남 음식점'을 차렸다. 우리 가게의 분점도 아니었고 사장님의 지분이 있지도 않았지만 메뉴와 구성은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식당 음식에는 따로 특허가 있지 않기 때문에 사장님은 그냥 그렇게 눈앞에서 코 베이는 경험을 하셨다. 그래도 현재 사장님은 4개의 체인점을 내시고 코로나 시기에도 꿋꿋하게 운영하고 계신다.


난 2017년 1월부터 시작한 알바를 12월까지 꽉 채우고 저축한 돈을 들고 베트남 배낭여행을 떠났다. 사장님은 내가 있었던 그 시기 이후로는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많은 애정을 못 쏟았다고 한다. 가게가 잘 되니 일이 힘들어 사람들이 자주 그만두고 정을 주는 것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아직도 난 사장님 식당을 가면 농담 따먹기를 하고 같이 일했던 언니들은 1년에 한 번 또는 2년에 한 번 얼굴을 보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 음식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 리스트에 올랐다.


자영업을 경험할 수 있었던 최장 알바이자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정을 느꼈던 특별한 사회생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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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만간 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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