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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상혁 Nov 11. 2021

기후위기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기후위기의 증인들

이 글은 2021 그린컨퍼런스 '기후위기의 증인들'에서 '기후위기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강연원고입니다.



미래교육이란 무엇인가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이야기는 ‘기후위기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입니다. 제가 교육청에서 미래교육을 담당하다보니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도대체 미래교육이 뭐냐구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잘 모르겠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미래교육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섣부른 단정보다는 차라리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요?


미래. ‘아직 오지 않은’ 이라는 뜻이죠. 사실 교육이라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한 준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굳이 미래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교육은 미래적이어야 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뭘까요? 미래교육은 본질적으로 현재의 교육에 대한 반성과 전복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잠시 미래와 관련해서 살펴볼 자료가 있습니다. 작년에 유네스코에서 <2030년의 세계>라는 전세계적 설문조사를 실시했었는데요. 2030년의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상실'이 선정되었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생태적 위기’가 꼽힌 것이죠.


미래교육을 이야기 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입니다. 사진 속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이라고 적힌 피켓이 보이네요. 기후위기를 전세계적 이슈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툰베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가 없는데 왜 미래를 위해 공부해야 하죠?”


화면에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문구가 보이시나요? 그녀가 금요일 발걸음을 향한 곳은 학교가 아닌 스웨덴 의회였습니다. 기후위기를 현재의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청소년기후행동’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교육시스템의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시스템의 생태전 전환”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요청한 것은 바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곧 미래교육이며, 그것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단초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 1: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기


그렇다면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무엇일까요? 저는 오늘 세 가지 관점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기’입니다. 지구적으로 사유한다는 것. 이것은 지구를 집으로서 사유한다는 것입니다. 경제학이 지구를 일종의 재화로 바라보고 부를 창출하는 것에 골몰한다면 생태학은 지구를 생명의 집으로 여기고 그 집을 어떻게 가꿔나갈지 고민하죠. 교육을 경제학의 관점이 아닌 생태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지구적 사유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지역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학습자의 삶의 맥락에서 앎과 함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지역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을 좀 더 구체적을 이야기해볼까요? 데이비드 오어는 ‘자기 장소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세계’를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우리가 “국가적, 국제적 측면에 불균등하게 더 관심을 두며, 지역적 측면에는 충분한 관심을 거의 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학교가 대표적이죠. 지금은 모든 지역의 학교에서 동일한, 즉 학생의 삶과는 괴리된 내용을 배우지만, 생태적 전환이 이루어진 학교에서는 학생의 삶과 연관된 내용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식량을 키우고, 보금자리를 짓고,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동네의 토양과 식물상과 동물상과 유역에 관한 지식들. 물론 이와 같은 목록이 분석적이고 학술적인 것들을 도외시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오어가 제시하고 있듯이, ▲열역학 법칙 ▲생태학의 기본 원리 ▲환경용량 ▲에너지학 ▲최소비용 ▲기술의 한계 ▲적절한 규모 ▲지속 가능한 농업과 임업 ▲균형상태 경제학 ▲환경윤리학 등이 목록에 추가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반복하지만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지구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을 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은 오직 지역적 실천을 통해서만 확인이 가능합니다. 제가 멕시코에 사는 호야와 연결될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지역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지구라는 집에 대한 사유 속에서 인간을 넘어 비인간 생명에 이르기까지 목소리를 잃은 존재들의 목소리를 복원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을 다시 생각함」이라는 글에서 오어가 “인간 생존이라는 명제에 비추어” 제시한 여섯 가지 원칙을 소개합니다. 이 원칙은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유용한 아이디어가 되리라 확신합니다.      


원칙 1. 모든 교육은 생태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다.

원칙 2. 교육의 목표는 어떤 과목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정통하는 데 있다.

원칙 3. 지식에는 그것이 세상에서 올바로 쓰이는지 지켜볼 책임이 따른다.

원칙 4. 우리는 지식이 사람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할 때까지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원칙 5. 교육자와 교육 기관은 자신의 이상을 철저하게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

원칙 6. 학습의 과정과 결과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 두 개의 원이 있습니다. 왼쪽은 유네스코에서 나온 열 일곱 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지속가능발전교육의 3가지 전략 즉 인지학습, 사회·정서학습, 행동학습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OECD에서 나온 2030 학습나침반인데요. 학생의 자기주체성과 변혁적 역량 그리고 개인적 차원, 공동체적 차원, 행성적 차원에서의 웰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왼쪽의 원이 지구적 사유를 위한 학습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면 오른쪽 원은 지역적 실천의 주체로서 학생과 그들의 '안녕(잘삶)'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원이 지구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에 대해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글로벌 거버넌스에 의한 공식적 합의라는 점에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의 전략으로 계승·발전시켜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 2:

가르침에 대한 성찰과 배움의 확장


교육의 생태적 전환 두 번째는요, ‘가르침에 대한 성찰과 배움의 확장’입니다. 사진에 새싹이 보이시죠? 새싹은 흙으로부터 돋아납니다. 마찬가지로 생각이라는 것도 아이들의 머릿 속에서 떠오르죠. 위에서 아래로 내리 꽂는 방식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 저절로 떠오르는 교육. 그것이 교육의 생태적 전환입니다.



과거의 가르침은 교사가 하나의 덩어리로서 학생들에게 A라는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때 결과물도 모두 A가 나오는 게 중요하죠. 혹시 A가 아니거나, A가 나오더라도 주어진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낙오되고 말았죠.


최근에 가르침에 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소위 ‘학생 맞춤식 교육’이라는 것인데요. 각 학생에게 맞추어 A, B, C라는 지식을 전달하고 결과도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걸로 충분한 걸까요?


이제 가르침은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닌 상호소통의 과정이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게 또 있습니다. 학생들 간의 협력적 의사소통, 그리고 교사들 간의 협력적 의사소통도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닐 겁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업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의 자율과 분권, 그리고 입시체제의 개혁, 그리고 무엇보다 학교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가르치다’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양육하다, 훈련시키다, 알기 쉽게 설명하다, 진단하고 평가하다 등등. 이것이 오늘날의 가르침의 의미라고 할 수 있죠. 이제 가르침은 다음과 같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학생이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촉진하고, 학생에게 권한을 부여하며, 학생들의 목소리를 생성시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참여하여 변혁할 수 있는 교수행위가 되어야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가르침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앎과 함과 삶이 일치할 수 있도록 판을 깔고 틀을 짜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Brent Davis와 Dennis Sumara 그리고 Rebecca Luce-Kapler는 『표준화 교육에서 복잡성 교육으로: 지식, 학습, 교수의 진화사』(원제 『Engaging Minds(3rd Edition)』)에서 교육이라는 인류의 행위가 다음과 같이 '표준획일화교육'에서 '개별진정성교육'을 거쳐 '민주시민성교육'으로 진화해왔다고 말합니다.


표준획일화교육(Standardized Education)
'표준획일화교육'이란 공통 교육과정을 동일연력으로 구성된 학년 단위별로 부과하고 학생들이 모든 동일한 학습결과를 이수하도록 짜인 학교교육체계를 의미한다. 이런 양상은 고대전통 혹은 종교 등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직접적으로 근대산업 및 물리과학의 발달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개별진정성교육(Authentic Education)
'개별진정성교육'은 학교교육을 이해하는 한 가지 접근법이며, 주로 개인의 능동적 참여, 학습자 간 차이성, 발달 단계, 개인적 호기심과 목표를 향한 개별화된 학습 등을 강조하는 인간과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실 수업과 관련해서는 실재성에 터한 이해활동과 풍부한 탐구활동을 강조한다.
민주시민성교육(Democratic Citizenship Education)
'민주시민성교육'은 학교교육에서 나타날 수 있는 집단소통절차와 문화적 불평등에 주의를 기울이는 교육방식을 뜻한다. 주로 사회과학에 근거를 둔 민주시민성교육의 목적은 사회정의를 위한 집합적 행동을 촉진하는 것이며,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기존 헤게모니 구조를 간파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그것을 역전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인간'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지요. 원래 교육이라는 것이 근대 계몽주의에서 출발한 '인간 개선 프로젝트'라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코로나 팬데믹과 기후위기의 부상 속에서 이러한 근본 전제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체계지속성교육'의 출현입니다.


체계지속성교육(Systemic Sustainability Education)
'체계지속성교육'이란 복잡성을 직간접적으로 논하는 새로운 담론들을 응용한 교육모형이며, 학교교육에 대한 지금까지의 논의들이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즉 기존 학교 논의들은 개인과 사회라는 양극단에만 초점을 둠으로써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의 존재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간과해 왔다는 것이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 3:

반려종과 실뜨기하기


교육의 생태적 전환 세 번째는 ‘반려종과 실뜨기하기’입니다. 이 말은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인 <도나 해러웨이>가 쓴 표현인데요. 저도 얼마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려종이 뭘까요? 반려종은 반려동물이 아닙니다. ‘반려종’이란 그 동안 인간이 끊임없이 만들고, 쓰고, 버려왔던, 인간의 삶을 유지시켜 주던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비슷한 말로 ‘복수종’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인간만이 존엄한 종이 아니다. 여기 인간이 아닌 존엄한 종이 ‘또’ 있다. 저는 복수종의 의미를 이렇게 이해합니다. 따라서 복수종 혹은 반려종이라는 사유는 ‘비인간종’을 그저 먹기에(또는 쓰기에)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로만 구분하던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유일종’으로서의 인간에서 사실은 인간이 의존해왔던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인식으로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려종이 되는 세계. 호모사피엔스에서 공존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심비우스로의 전환. 즉 ‘생태적 인간’의 탄생이 필요한 것이죠. 생태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왼쪽 사진을 보세요.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인데요. 석탄을 채굴하기 위해 산을 잘라버렸습니다. 완전히 없어졌죠. 산이 죽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세상에 태어나, 고작 한 달 동안 엄마 젖을 빨고 단 5개월 동안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사료만 먹다가 이제 도살장으로 들어가기 전 물을 받아 마시고 있는 돼지의 모습입니다. ‘축산물 위생관리법 시행규칙’ 때문에 돼지는 죽기 전 12시간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고 하네요.


저는 생태적 인간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부를 묻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으로 인해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도와 책임의식은 미래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합니다.


실뜨기 좋아하세요? 실뜨기는 마치 끝말잇기처럼 상대방의 행동에 응답을 함으로써 계속 이어질 수 있죠. 교육이라는 것도 실뜨기처럼 나와 당신, 다수자와 소수자,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죠.



기후위기의 증인들


이제 정리해보겠습니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란 지구적 사유를 바탕으로 앎과 함과 삶을 일치시키는 노력이며, 새싹이 돋아나듯 배움이 스스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고, 나와 당신,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짓는 일입니다. 인류학자 <아르투로 에스코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디자인하고, 우리의 세계는 다시 우리를 디자인한다. 저는 이것이 미래교육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의 증인들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바로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입니다. 화면에 웹자보들 보이시죠?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교육연구사, 교수 등으로 구성된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은 약 1년 전인 작년 12월 8일부터 기후위기 공부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공부만 하는 모임은 아닙니다.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고 공유하고.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고 공유하고. 이를 반복하면서 학교와 지역, 그리고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총 마흔 여덟 번의 모임이 진행이 되었는데요. 놀라지 마세요. 이 모임을 2030년까지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계산해보니 대략 480번의 화요일이 남아 있더라구요. 저는 이것을 그레타 툰베리와 청소년기후행동을 본받아 ‘미래를 위한 화요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서두에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미래교육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왜냐하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때 경청할 수 있고 경청하는 사람만이 연대할 수 있으며 연대하는 사람만이 전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와 함께 경청하고 연대하고 전환하는 기후위기의 증인이 되어주시겠어요? 감사합니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란 지구적 사유를 바탕으로 앎과 함과 삶을 일치시키는 노력이며, 새싹이 돋아나듯 배움이 스스로 자라나게 하는 것이고, 나와 당신,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짓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의 증인들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바로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입니다. 화면에 웹자보들 보이시죠?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교사, 교감, 교장, 장학사, 교육연구사, 교수 등으로 구성된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은 약 1년 전인 작년 12월 8일부터 기후위기 공부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공부만 하는 모임은 아닙니다.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고 공유하고.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고 공유하고. 이를 반복하면서 학교와 지역, 그리고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총 마흔 여덟 번의 모임이 진행이 되었는데요. 놀라지 마세요. 이 모임을 2030년까지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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