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상혁 Oct 06. 2022

오늘 저녁, 소박한 한 끼 식사

소중한 당신과 나누는 지구를 위한 마음

일본의 작가 모리마치 나가코가 쓴 그림책 중에 『고양이 레스토랑』이 있다. 커다란 프라이팬이 간판을 대신하고 있는 이 레스토랑은 특이하게도 손님이 텃밭에서 음식 재료를 직접 수확해 와야 한다. 자신이 먹고 싶은 채소를 바구니에 먹을 만큼 담아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로 가면 솜씨 좋은 고양이 요리사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는 이야기다.     


학교에 있을 때 아이들과 함께 ‘오래된 미래’라는 이름의 환경동아리를 운영했다. 주된 활동은 조그마한 텃밭 가꾸기였다. 학교에 농사를 지을 만한 땅이 없어서 도봉산 자락에 있는 주말농장을 임대하여 봄에는 각종 채소를 심고 가을에는 배추와 무를 심었다. 씨를 뿌리고 두 달 정도 지나면 쌈 채소가 먹을 만큼 자란다. 그즈음 모둠별로 먹거리를 준비해 수확한 채소와 함께 맛있는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된 미래, 청명한 가을에 배추를 심다 (2017.9.4. 도봉예전주말농장)



학교에 넓은 농장이 있으면 좋겠다. 농장 한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고 그 아래 솜씨 좋은 요리사가 있으면 좋겠다. 이른 봄 모든 아이들이 씨를 뿌리고 그 씨앗이 싹을 틔워 제법 자라났을 때, 각자 먹고 싶은 채소를 바구니에 담아 맛있는 식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맛있는 식사가 떳떳한 학교 교육과정이 되면 좋겠다.      


너무 허황된 이야기일까? 그런데 얼마 전 대한외국인 타일러가 온라인 강연에서 자신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미국 버몬트 주에서 자란 타일러는 고등학교 다닐 때 도롱뇽이 길을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고 목장 일을 해야만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중부의 명문 시카고대학에 입학했으니 그의 고교생활이 시간 낭비였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지구에 부담을 주지 않는 맛있는 한 끼 식사를 차려내는 사람, 그것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인터넷에 온갖 ‘먹방’이 넘쳐나는 시대다. 자신의 몸에 부담을 주는 것을 넘어 지구공동체에도 부담을 주는 탐욕스러운 식사가 환호를 받는다. 도시에서의 삶을 뒤로 한 채 남편과 함께 버몬트로 이주한 헬렌 니어링은 필요한 먹거리는 스스로 경작하고 최소한의 것만으로 풍요로운 삶을 영위했다. 그가 쓴 책 중에 『소박한 밥상』이라는 요리 없는 요리책이 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혀가 아닌 몸, 몸을 넘어 정신까지 배불리 먹이는 진짜 음식을 만나게 된다. 오늘 저녁, 당신의 가장 소중한 사람과 소박한 한 끼의 식사를 나누기를.


Helen Nearing (1990), Simple Food for the Good Life: Random Acts of Cooking and Pithy Quotations 표지


위 글은 단대신문 1496호(2022년 10월 6일 발행)에 개재된 글입니다.  


http://dknews.dankook.ac.kr/news/articleView.html?idxno=18506


매거진의 이전글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