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은 거부당하고, 나는 소진됐다.

효율화를 꿈꾼 실무자의 역설

by 소시민

작년부터 올해까지 반복된 주어진 연간 목표는 단 하나였다.
“모든 인적 관리를 효율화하라.”

나는 그 말에 깊이 공감했다.
단지 조직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내가 몰입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반복되고 의미 없는 작업을 덜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구조를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프로세스가 아니라 ‘사람이 메워야 하는 공백’에 있었다.
어디서 중복이 생기고 어디서 실수가 반복되는지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정리했다.


구조화, 설계, 자동화 — 혼자 해낸 효율화

그렇게 만들어진 건 근태, 휴가, 급여 흐름을 다 엮어낸 자동화 관리 시트였다.
시트를 설계하고 함수와 규칙을 엮고 누가 언제 무엇을 누르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예측했다.

파일럿을 돌려보니 잘 작동했다.
의사결정 속도는 빨라졌고 관리자도 직원도 보고가 아닌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관리툴을 본격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기반이 되겠구나."

그러나 툴 도입은 거부당했다.

내부에 개발자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개발자는 늘 ‘서비스’가 먼저다.
관리툴은 늘 우선순위 밖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제안했다.

“내부 리소스가 부족하니 툴 도입으로 당분간 보완하고 개발이 여유로워지면 그때 커스터마이징하자고.”


하지만 돌아온 건 “그건 효율화가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구조를 만들고, 직접 설계하고, 자동화하며 조직의 리소스를 줄이기 위해 달려온 이 모든 과정이 단 한 문장으로 무의미해졌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다시 시트를 붙들었다

툴 도입은 무산됐고 나는 더 정교하게 시트를 고도화해야 했다.
사람은 늘어나고, 예외 상황도 늘어났고 그럴수록 시트는 복잡해졌다.
자동화는 더 복잡한 규칙을 필요로 했고 관리자는 마치 시스템처럼 작동해야 했다.

그걸 운영한 건 결국 나였다.

그리고 작년 연말 내게 돌아온 피드백은 이랬다.

“올해 다른 영역에서는 어떤 고민을 하셨나요?”


허탈했다.
나는 나의 일을 줄이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지만 그 결과 아무 일도 안 한 사람처럼 취급받았다.


지금 돌아보면, 때로는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자동화를 만들지 않았다면 오히려 불편함을 못 견디고 툴을 도입하지 않았을까?"


조직은 문제를 ‘직접 겪지 않으면’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제를 혼자서 해결해 버렸고 그 결과 조직은 문제를 인식할 기회를 잃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효율화를 너무 잘해버린 사람이 가장 소모되고, 가장 저평가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퇴사를 생각하게 됐던 일 중 하나였다.
효율화는 목표였지만 그 실행 과정에서 나는 단 한 번도 ‘효율적으로 대우받은 적’이 없었다.

시스템 없이 시스템을 만들었고, 예산 없이 구조를 설계했고,
칭찬은 없었고, 도입은 거부당했고 소진은 나 혼자 했고, 결국 아무도 그 무게를 몰랐다.

그래도 나는 안다.
그 시트 하나가 없었다면 그 모든 피드백조차 관리되지 않았을 거란 걸.

그리고 나도 안다.

내가 그 시트를 만들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는 걸.

나 퇴사 이후에 그거 그대로 쓰려고 했지?

최소한 양심은 갖고 쓰자.
그리고 대표님.
언젠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그땐 조금 더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모로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04화일 한 사람만 혼나는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