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이 사라지고 비는 곧장 쏟아졌다

팀장의 보호 아래 있던 시간이 끝나고, 통제의 비가 쏟아진 순간

by 소시민

입사하고 얼마 되지 않아 팀장님이 새로 합류했다.
첫인상은 또렷했다.

말에 군더더기가 없었고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팀을 빌딩해 나갈지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 역시 오랜만에 믿고 따를 수 있을 것 같은 리더를 만났다는 안도감이 있었다.

팀장님과 함께한 회의는 늘 생산적이었다.

의견이 오가는 동안에도 중심이 흔들리지 않았고, 모든 말에는 맥락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작은 팀 안에서 하나씩 조율해 나가며 조직의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조율은 오래가지 않았다. 대표가 실무 깊숙한 곳까지 개입하기 시작했다.

리딩이 필요 없는 리더에게 리딩을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마이크로매니징의 시작이었다.


처음엔 다소간의 불편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건 방향성과 권한, 신뢰의 문제로 번져갔다.

팀장님은 점점 긁히기 시작했고 내가 얼마나 불합리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었는지도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래서였을까. 팀장님은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우산이 되어주려 했다.
대표에게 있었던 결정 권한을 하나씩 되찾아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대표는 단 하나의 권한도 내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즈음 팀장님의 입사 배경을 알게 됐다.

대표의 지인이 추천했고, 대표는 ‘임원급’ 채용이라며 협의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팀장님은 면담을 요청했고, 대표는 “오해”라고 말했다.

녹취도 있었고, 미팅 노트도 있었지만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 한 적 없다”는 말과 함께.

그 순간, 팀장님은 허수아비가 됐다.

‘팀장’이라는 직함만 있었고, 권한도 존중도 없었다.
결국 대표의 방향성에 공감할 수 없었던 그는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퇴사 당일, 전 직원이 있는 메신저방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거기엔 대표와 공동창업자에 대한 비판과 회사를 향한 절망이 담겨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대표가 나의 팀장이 되기 시작됐다.

그리고 팀장님이 떠나는 날,

나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대표랑 일할 때 꼭 녹음해. 나중에 들려줘야 하니까.”

나는 그 말을 농담처럼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일하는 게 두렵기 시작했다.


조직이 한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려면 신뢰와 권한이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믿음을 지키려 했던 사람과 그 믿음을 부정했던 시스템 사이에서 일은 점점 감정이 되었다.

마이크로매니징에 대한 기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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