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비난할 때, 과도한 친절을 베풀거나 냉소적으로 대할 때, 과연 그 사람 자체 때문인지,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 지위, 권력, 재물 때문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어느 정도는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사람의 소양, 기본적인 인격 등 그 사람의 단면을 놓고 보았을 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칭찬이나 친절은 그 사람의 본질 때문이지만, 그 사람의 후광 때문이라면 그 친절과 호의, 칭찬은 일부 또는 전부가 진심이 아니다. 사람 자체는 마음에 들지만 후광이 시원치 않다면 우리는 과잉행동을 하지 않는다.
일정 부분 진심이 아님을 알면서도 과도한 친절, 칭찬, 호의를 베풀면서 불만이나 비난을 숨죽이는 것은 가깝거나 먼 미래에 그들의 도움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와 그들과 어울림으로써 실재하지 않는 자기 레벨을 과시하고 싶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에 대한 타인의 과잉행동이나 냉소적인 태도가 자신 때문인지, 자신을 둘러싼 후광 때문인지이다.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수 있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에게 개별적으로 매순간 물어볼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 혹시 저 자체가 좋아서인가요? 아니면 저의 돈 때문인가요?
하지만, 실제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지위도 높고, 권력도 아직은 효력을 발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사람들이 자신 자체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일정한 이익을 노리고 과잉행동을 하는 것인지 크게 궁금하지 않다.
그에 대한 해답은, 후광을 잃어보면 알 수 있다. 아니 후광을 잃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의 과잉행동은 감소하거나 소멸한다.
같은 이유로 자신에게 과잉행동을 하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 때문에 일희일비할 일이 아니다. 시간을 내고 돈을 들여 관계를 이어가고자 신경을 써야 하는 사람들은, 후광이 있든 없든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배우자, 연인, 자녀, 부모 등 가족이나 가족과 유사한 정도의 관계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저변에 이익을 노리지 않고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을 수 있는 관계에 정성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