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아들이기 때문에 절감하고 있는 사실은, 아들은 부모에게 '살가운'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무뚝뚝'하기가 이를데 없고, 인생의 어느 시점부터 속내를 부모에게 드러내지 않는, 사회적 존재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그런 사실 때문에 결혼이라는 것을 한 이후 개인적으로 '딸'이 태어나기를 바램했다. '딸'은 손도 많이 가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단지 '살가움'을 당해 보기 위해 '딸'을 원했던 듯 하다.
하지만, 태아의 성별식별이 합법화되어 첫째 아이 성별을 하러 간 날. 담당의사 선생님은 간단한 절차와 성별감별에 대해 설명한 후 진료실로 "자! 따라 오세요."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따라" 오라는 말을 "딸"로 들었고, "예! 딸이라고요!"라고 했다.
의사 선생님이 감별 후 "아빠가 딸을 많이 원하셨나 보네요. 아들이어도 잘 기르실 거죠?"라고 말 할 때까지 내심 딸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중저음의 울음소리를 내며 삐약거리는 첫째 아들이 생겼다. 그로부터 4년 후 아내는 둘째 아이를 임신했다. 주변 사람들의 태몽과 느낌이 딸일 것이라는 말을 제법 들으면서 아내의 배가 부풀어 오르는 것을 지켜 보았다.
4년만에 다시 태아의 성별을 감별한 결과, "공주님이네요"라는 의사 선생님의 확인을 받고 내게도 딸이 생겼음을 안도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아니 수컷들은 자녀를 가지게 되면 후각, 청각 등 모든 감각이 이전보다 예민해 진다고 한다. 자기 자식을 쉽게 감별해 내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게 나는 변화되어 갔다.
지금은 둘째 딸아이가 4살이나 먹어서 소통이 어느 정도된다. 하지만, 1세부터 4세 이전까지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딸이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첫째 때보다 사고(?)도 많이 치고, 병치레도 많이 하고, 엄마에게만 붙어 지내면서 나에게는 별다른 관심과 애정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청마띠! 말띠 여자가 고집이 세고, 머슴애 같다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마디로 아들과 딸이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까르륵 거리는 애교, '살가움' 한 번 당해 보자고 그토록 기다렸던 딸아이가 아들과 다를 것이 없고, 하는 행동이 아들보다 더 개구진 이 상황은 바램의 절반만이 실현된 것이라는 적정한 체념만을 요구하는 듯 했다. 삶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지만, 아들 낳고, 딸 낳을 당시에는 내 삶이 계획대로 되는 것만 같았는데, 겪어보니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짝사랑에 근접한 아버지 역할을 하다가 4세가 되면서부터 딸아이의 지능과 말솜씨가 확연히 발달했는지, 나에 대한 처우와 예우가 점차 달라지기 시작했다. 귀찮을 정도로 질문도 하고, 병원놀이, 요리놀이 등 지칠 줄 모르고 함께 할 것을 졸라댄다. '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중도는 없는걸까'. 이전에는 무관심과 냉대를 당했고, 지금은 다소간의 착취를 당하는 듯 해 졌다.
적당한 거리 유지 속에서 '살가움'을 느끼고 싶을 때만 딸아이가 거리를 좁혀 오기를 바란 것은, 순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안다. 체력이나 정서적으로 여력이 있을 때,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실현되기 어려운 바램이다.
오빠를 지켜 보며 성장해 가고 있기 때문에 '애교' 본능이 아직 발현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빠와 오빠가 때때로 몸싸움을 하며 노니는 것을 지켜 보았기 때문에 딸이 와일드할 수도 있다. 여아용 장난감에 비해 남아용 장난감이 더 많아서 놀이정서가 남아스러울 수도 있다. 딸아이를 둘러싼 여러 환경들이 여아에 적합한 환경이 아닐 수도 있고, 딸아이가 성격이 남아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즈음은 여러 추측과 가정들이 하나씩 허물어져 간다. 점차 딸아이가 여아들이 보여주는 여성스러움을 조금씩 보여 주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 속에는 아직 갓 태어났을 때의 안쓰러움이 대부분인데, 하루가 달리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개인적으로 딸아이가 보이시한 매력을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 보수적이랄까. 딸아이는 온전하게 여성스러움을 구비하였으면 하는 바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