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군 생활을 해 본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경계근무를 서면서 한 곳을 오래 응시하면 안된다는 수칙이 있다. 야간에 한 곳을 계속 응시하면 그 곳에 동물이든, 사람이든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각에 빠진다. 시야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특정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 하나의 공통된 기억이 남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그 기억을 재생하면 서로 달리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일치하는 기억을 유지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하나의 발생사실, 경험사실에 대해 사람마다 다른 기억으로 새겨 놓는다.
기억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소멸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진실은 하나이다. 하지만, 기억의 재생이 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일까.
기억은 분명 하나의 사실을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기억을 담고 있는 사람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또는 불리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시간과 상황에 따라 자기편향적으로 왜곡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 기억을 점점 믿어나간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고 결론적으로 그것이 그 사람에게는 사실이 되어 버린다.
하나의 사실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을 경우, 녹화나 녹음 등 누구의 기억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있는 도구적 방법이 없다면, 서로 자신의 기억이 사실이라고 격렬하게 싸우게 된다. 서로가 왜곡된 기억을 점점 구체화시키고, 그것을 뒷받침할만한 것들을 추가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당사자 사이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다툼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재판이다. 재판의 본질은 실체진실의 규명에 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당사자들 뿐이다. 다만,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왜곡된 기억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을 뿐이다.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답답하고 억울하다. 게다가 왜곡된 기억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도 답답하고 억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분명 진실은 하나이고, 어느 한 쪽은 틀린 것이 맞는 모순관계인데, 이것을 가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시험볼 때, 처음 찍은 답이 대체로 정답인 것은 기억의 왜곡이 덜 일어난 시점에서의 판단이기 때문이다. 기억이 왜곡된 사람에게 사실을 증명해도 그 사람은, 사실이 자신의 기억과 달랐다는 점에 대해 의문을 가질 뿐 순순히 결과를 수용하지도 않는다. 억울해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곡된 기억을 토대로 상대방을, 그리고 다수를 힘들게 하고, 상처를 준 것은 돈으로 완전히 보상할 수 없는 문제이다. 먼저 우기기 보다는 자신이 잘못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는 가정과 꼬깃하게 숨어 있는 기억을 더듬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