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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프다 #12 정신불량자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불량이란 좋지 않은 것, 기준에 미달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그 무엇, 성품이 선량하지 못한 사람. Not good은 기분나쁜 평가이다. 우리는 함량미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지 않다. 우리는 대체로 평균 점수 이상의 평가를 받고 싶고, 타인으로부터 존중받고 싶다. 최소한 대부분은 아니어도 특정 소수에게만큼은 존중받고 싶다. 하지만, 나를 낳아준 부모조차 무시하는 느낌이 들때가 있다.


열등감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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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게으른 사람이라도 배가 무지 고프면 음식을 찾으러 움직인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어떻게든 목표를 설정하게 만들고 현재의 형편없는 자신을 보다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존재로 만들고 싶다는 욕구는 어디에서 샘솟을까. 바로 결핍이나 열등감이다. 부정적이라고 평가받는 그런 감정, 무시당한다고 생각되는 자존감의 저평가. 이런 것들이 바로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는 동력이 된다. 최소한 오기를 야기한다.


신용불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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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불량자란 무엇인가. 대가를 지불할 능력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사실 신용불량자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사는데 지장은 없다. 지장이 없다는 의미는 은행계좌를 개설할 수 없고, 담보없이 돈을 빌릴 수 없을 뿐이라는 의미이다. 자동이체와 같은 은행을 통한 거래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일 뿐, 먹고 사는데 있어서는 지장이 없다. 하지만, 신용이 없다는 것은 가치없는 존재로 평가되어 마치 사회에서 추방당한 느낌을 제공한다. 자본주의가 승리한 결과 때문이다.


신용은 신뢰이지만, 특정한 사람에 대한 경제적 능력에 대한 평가를 의미할 뿐이다. 신용불량자라고 낙인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사상, 사유, 감정, 존재가치가 불량인 것은 아니다. 신용불량자이었다고 하더라도 어떤 계기와 방법으로 신용을 회복할 수 있다. 불량하다는 평가는 한시적일 뿐이다.


정신불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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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불량자는 개인적으로 명명한 용어다. 특정 사람의 정신상태에 대한 타인과 외부의 평가가 평균 수준 이하라고 평가받는 것이라는 정도로 정의하자. 좋다. 나쁘다. 훌륭하다. 형편없다. 이런 식의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우리가 속한 공동체의 규범이나 공동체의 의식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는 엄마의 자궁에서 분리되면서부터 교육을 받는다. 교육이란 공동체 의식의 주입이다.


정신불량자는 공동체의 의식과 문화의 일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그런 식으로 운전하여 그런 타입으로 확정시켜 버리는 사람이다. 심각한 흥분, 우울, 두려움, 불안. 부정적이라고 평가받는 감정과 사유의 형태는 깊이 들여다 보면 스스로, 각자의 개인이 만들어 내는 결과이다.


공동체가 바라보는 시각은 지속적이지 않다. 개개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쏟을만큼 이 사회와 문화체계가 한가하지 않고, 우리 개별 존재가 그만큼 가치있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신을 최대한 초라하게 만드는 열등감 때문에 정신불량자가 된다.


싸우기 전에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진정한 패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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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나에 대한 최종 평가자는 자신이다. 진실로 그 어떤 누구도 나에 대해 지속적이고 영속적으로 계속적인 평가를 내기 위해 나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나에 대한 열등감은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 결론에 쉼표를 찍고, 다른 가치평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 자신이다.


증거를 제시하자면 바바리맨이 성기를 드러내면 눈을 질끔 감는다.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다. 오로지 성기를 드러낸다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깨닫는 존재, 타인에게 그런 미친 행동을 하면서까지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는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다.


모든 평가는 내가 스스로 내린 편파적인 판정일 뿐이다. 정신불량자로 살아갈 것인지, 선량한 정신을 탑재한 공동체 속 구성원으로 이바지하고 있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오로지 우리 자신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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