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우리 모두는 너무 일찍 죽는다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누군가 죽음을 맞이하면서 "나는 충분히 살았으니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 한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한 죽음은 예정된 시나리오의 결말인데, '지금 말고 좀 더 있다가'라는 유보와 유예를 최대한 허락받고 싶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 그들 자신과 그 죽음을 바라보는 다수의 주변인들은 너무 일찍 죽었다는 생각을 대부분 하게 된다. 물론, 오랜 질병으로 돈까먹고, 주변에 폐를 끼친 경우에는 '잘 죽었다'라고 한다. 이렇게 대놓고 말하진는 않지만, '호상'이라는 용어가 있는 이유는 그 죽음이 너무 길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이다.


하지만, 대체로, 대다수의 죽음은 너무 이르다. 그렇게 생각한다. 내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그것은 분명 사실이자 진리이지만, 내일 그 사건이 발생한다면 분명 죽음이 너무 일찍 일어났다고 푸념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인생에서 누리던 것들에 대해 아직 충분한 만끽을 아직 누리지 못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여전히 해야 하거나 할 수 있었던 경험과 일, 사건에 대해 대면할 기회를 상실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우리 모두는 죽더라도 그 순간에 너무 일찍 죽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닦고 세수하고 잠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마친 뒤 잠드는 순간, 내일의 것들이 닥쳐올 것이라는 걱정과 염려가 들기는 하지만, 잠드는 순간에 할 일을 대체로 마쳤다고 생각하고 이불에 몸을 감추면 우리는 너무 일찍 잠들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존하지만 의식이 잠시 오프되는 순간이 잠 속으로 그저 미끄러지듯 빠져 드는 그 순간이 너무 일찍 발생하는 과정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일이 모두에게 예외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만약, 죽음이 당장,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한다면 '나는 너무 일찍 죽는 듯 하다'라는 생각에 빠진다. 미해결, 미착수, 미실천, 후회와 미련 등 잘 했던 일들보다 하지 못 했거나 연기했던 사건들, 그리고, 돈독할 수 있었던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나는 너무 일찍 죽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품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너무 일찍 죽는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제 때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고차원적 수준에 이르렀거나 특이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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