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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소평변호사 Dec 13. 2019

우리는 언제 죽은 것일까.

일상의 변론

호흡의 정지!


생물학적으로 호흡이 멎고 심장박동이 소멸하면 죽은 것일 수 있고 뇌가 죽어야 진정으로 죽은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누군가 죽어가는, 죽은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다면 깊은 호흡과 얕은 호흡이 반복되고, 눈꺼풀이 간헐적으로 잠겼다가 떠지기를 반복하다가 목에서 쇠소리와 유사한 음향을 내뱉다가 결국 숨을 멎는다. 분명 이 순간 죽은 것이다.


사망진단서!


그런데, 의사가 와서 확인을 한 후 사망진단서에 서명을 해야 의학행정적, 병원 차원에서 죽게 된다. 의사는 자연사인지 여부를 확인하고, 그 원인에 대해 간략히 기술한 다음 사망진단서에 서명한다. 이 시점에서도 죽은 것이다. 시신이 병원 밖으로 이동하려면 병원에 대해 정산을 해야 한다. 의사의 확인과 병원의 절차 끝에 비로소 죽은 것이다.


장례절차의 종료!


죽은 자의 시신을 직접 수습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통상 상조회사, 장례업자와 체결한 계약에 의해 시신이 처리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내고 새옷(수의)을 입히는 죽음에 대한 절차가 진행된다. 가끔 시신이 너무 경직되어 옷에 시신을 끼워 맞추다가 뼈가 부러지는 일도 더러 발생한다. 관도 구입해야 한다. 시신이 토지 아래 매장되거나 화장터의 화로에 들어갈 순서가 예정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관은 구입해야 한다. 매장일 경우 시신과 관은 함께 포장박스와 내용물의 관계에 있고, 화장일 경우 시신과 관은 소각대상이다. 화장 후 남은 가루들 중에 시신의 일부와 관의 일부가 섞여 있을 것이다.


은행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듯 죽은 자의 시신이 화장될 순서가 번호판에 표시된다. 다른 점은 은행과 달리 아무도 늦게 태운다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화장 후 남은 시신의 가루들은 납골함에 담겨진다.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잘 모아서 담긴다. 그리고는 정해진 납골당으로 이동된다.


흙이 다져지거나 납골당에 안치되었을 때 장례적 의미에서는 죽은 것이다.

사망신고!


분명하게 죽었고 여러 의미와 차원에서 죽었는데, 국가는 아직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망한 날로부터 1개월 내에 사망신고를 해야 한다. 자연적 사실의 측면에서 한참 전에 죽음이 인정되었음에도 행정적으로는 사망신고서가 제출되고 수리되어야 죽은 것이다. 사람이 죽은 시기는 여러 단계를 거치면서 다른 시점에서 다른 의미로 여러 차례 죽는다.


죽음은 죽은 후에도 사후처리의 문제를 남기는데, 시신 자체에 대한 처리는 앞서 보았고 상속재산 또는 상속채무에 대한 문제가 남았다. 생존하여 남은 자들간의 협의 또는 분쟁에 의해 죽은 자의 죽음은 재생되었다가 죽음을 인정받았다가를 반복하게 된다. 문제가 해결될 그 시점까지. 죽음 자체는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죽은 자의 생전행위가 잔존하는 자들에게 죽음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망각!


어떤 이의 죽음은 생존하는 자들에게 슬픈 사실일 수 있고, 기쁘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다행인 사실일 수도 있다. 생존하는 동안 타인에게 고통을 준 것이 주된 스토리라면 후자일 것이고, 타인에게 행복을 준 것이 주된 스토리라면 전자일 것이다.


생존해서 더 살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죽음은 아직 정서적, 감정적으로 죽은 것이 아니다. 죽음에 근접해 있는 시점에서는 죽음을 수용하지 못 할 수도 있고, 시간이 흘러도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게 유지될 수도 있겠지만, 대체로 누군가의 죽음은 망각되어 간다. 그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죽음을 맞이할 때 어떤 이의 죽음은 비로소 죽은 것이다.


우리는 과연 언제 죽은 것일까.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적인 죽음에 대한 정의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니 죽음의 의미를 달리 할 때, 같은 사람의 죽은 시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과 죽음이 겹치는 순간은 없다. 삶이 끝나면 죽음이 된다. 완벽한 경계가 있다. 물론 죽음 이후에 영혼이 계속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믿음의 문제이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방법 중 하나는 명백한 사실인 죽음을 관찰하는 것일 것이다. 죽음의 개념, 죽음을 대하는 나, 그리고 우리의 태도와 관념을 정리하다 보면 삶의 의미의 아지랑이 정도는 감잡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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