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ny essay

역설적 바이러스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세포의 기본적인 천명은 번식, 증식이다. 세포는 2, 4, 8....등으로 증식한다.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사람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형태가 될 때까지 2의 제곱, 2의 승수로 세포가 자기복제를 반복해서 증식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인간이 남녀가 결합하여 자식을 낳을 때, 결국 각자가 가진 세포(유전자, DNA)의 1/2씩을 전달하기 때문에 아버지와 아들은 세포형질의 1/2을 공유한다. 그리고, 그 자식이 결혼하여 자식(손자)를 낳게 되면 아버지의 세포형질과의 동질성은 1/2X1/2=1/4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세포형질이 대대손손 1/2의 배수로 남아서 역사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때문에 가문과 족보, 혈족, 친족의 의미는 누가 뭐라 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대체로 포용적이며 관대할 수 밖에 없다.


세포는 번식과 증식을 통해 존재의미와 안정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 증식과 번식의 결과물이 대체로 오래도록 생명성을 유지해야 한다. 세포가 유익하든, 유익하지 않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어야 세포형질에게는 유리한 것이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세포와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번식과 증식을 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결론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


바이러스는 영양분을 뽑아먹을, 번식과 증식에 필요한 에너지를 추출할 숙주가 필요하다. 세포는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 결과물의 오랜 생존을 목적으로 하지만, 바이러스는 그 결과물의 생사에는 관심이 없다. 숙주의 생사에 신경쓰느니 자기 복제물을 다수의 숙주에게 퍼뜨리는 것이 가성비가 높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


세포는 번식과 증식의 과정을 통해 그것이 영생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다. 바이러스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런데, 숙주의 생명, 그 존속기간을 고려하지 않고 복제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바이러스는 유전이라는 안정적인 계책을 강구하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왜 이러한 선택과 작용을 하는 것일까. 자기복제를 위해 숙주가 죽음에 이를 수 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숙주에서 숙주로 번창하는 것은 바이러스 자체의 영생을 위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마도 바이러스가 퇴치되고 유전되지 않는 이유는 숙주의 사망이라는 사실 때문인 듯 하다.


세포와 바이러스의 근본적인 차이를 이 대목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세밀하고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바이러스가 숙주를 순식간에 해치고, 숙주를 막말로 100%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숙주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바이러스의 자기복제는 그 시점에서 종말을 맞이할 수 밖에 없을진대, 왜 이런 역설적인 진화를 하는 것인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역사적으로 많은 바이러스가 존재했고, 퇴치당했을 뿐 유전된 사실은 없다. 세포가 안정적인 진화를 거듭해 온 과정과는 사뭇 다른 과정을 통해 역사적으로 등장했다가 단막극으로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했을 뿐이다. 바이러스는 진화론이나 생물학적 관점으로 바라볼 때, 지나치게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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