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변론
플로렌스 정치가 겸 역사가 구이치아르디니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지시하거나 자극하는 것만으로 일의 성취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는 일의 후속적인 문제에 대해 점검해야 하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 해야 한다. 일의 이런 속성 때문에 우리는 그 해결에 많은 기여를 해야 한다. 반면, 누군가는 일의 도중에 다른 계획을 따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흔히 일이 끝난 줄 알지만 실은 그 사람의 경우, 실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 -약간의 의역을 보탬
허들경기를 예로 들면 우리는 장애물의 숫자, 장애물의 간격, 장애물의 위치 등을 파악하게 된다. 즉, 내 인생의 트랙에서 허들을 인정하고 보다 빨리 달리고 넘기 위해 보폭을 조정하고 호흡을 조정한다. 하지만, 허들경기에 임하는 자가 허들을 없애는 것은 허들경기 자체를 포기하는 셈이다.
기차는 A지점에서 B지점까지 직행열차가 아닌한, 역마다 정차한다. 하지만, 기차가 달리기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잠시 정차했다가 다시 최종 목적지인 B지점까지 간다. 그것이 기차의 인생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삶에는 많은 장애가 있다. 장애는 나의 목표와 계획을 실현하는데 있어서, 그 속도를 지연시키거나 포기하게 만들거나 앞서 말한 계획변경의 유혹을 선사하는 것들이다. 이것 저것 손대고, 뜻대로 안될 때마다 쉽사리 포기하고, 다른 것에 찝적대는 인생은 결코 일의 성사나 최종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인생은 여행이다. 계획한 바대로 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 변수가 많다. 그 변수를 줄여나가고, 변수를 고정값으로 바꾸는 것이 인생의 커다란 배에 합류한 선원이 해야 할 일이다. 배를 바꿔 타고자 하거나 변수에 의지와 계획의 변경되는 것은 줏대없는 인생살이다.
미인을 얻기 위해 그 미인을 열번 찍어야지, 몇번 도전하다가 다른 차선의 미인을 찍으면 결국 최상의 미인을 얻기 위해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