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평
'가을타다', '가을을 탄다'는 가을이 되면 심적으로 우울해지거나 침체되는 심적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다. 더운 여름의 고온다습함 때문에 미루어 두었던 시간의 유한함(1년 단위로 한 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에서)을 깨닫게 되고, 짧아진 해가 알 수 없는 공허함을 제공하기도 한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다는 것은 무언가 소멸하고, 쇠락하는 시기로 진입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봄은 시작이고, 겨울은 끝이라는 고정적인 계절관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할 것이다. 일단, 체감온도가 낮아져 옷 매무새 사이로 스며드는 공기의 차가움이 스산함을 더한다.
가을타는 느낌을 받을 때, 허무함도 있지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이방인이 된 듯 한 느낌도 받는다. 본래 나의 고통은 타인이 제대로 알아 주지 못 하는 것이지만, 나의 고민과 고통과 관계없이 잘 지내는 모습에 무언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그들에게서 나의 필요성과 존재감이라는 것이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봄과 여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과 후텁함 때문에 꽉 죄는 듯 한 느낌을 받아 세상이 좁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지만, 가을과 겨울에는 높아진 하늘 탓에 존재의 왜소함을 느끼게 되고, 거리의 빈 공간으로 인해 스스로가 더 왜소해 진 느낌을 받게 된다.
가을이 되면 점점 가시적 공간에서 모든 것들이 하나씩 사라지는 것도 한 몫한다. 낙엽도 사라지고, 여러 들풀도 사라진다. 물론, 해가 바뀌어 자기 생장주기에 이르면 다시 나타날 것임을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소멸해 가는 것들에 대해 아쉬움과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가을을 타면서 다소의 우울감, 침체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직은 무덤덤한 가슴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 가슴이 굳지 않았고 감정적 매마름이 종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다.
가끔은 이유없는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도록 감정의 봇물이 터지도록 할 필요도 있다. 사람은 정해진 모습대로 살아가야 하는 숙명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평가할 수 없는 저마다의 감정에도 충실할 권리가 있는 자연의 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