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etter life

덜 익은 삼겹살이라도 먹어야

일상의 변론

by 윤소평변호사

대학시절 동문회를 하면 회비 '1만원 + a'였다. 형편이 좋은 선배들이 기본회비에 추가되는 회식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학창시절에는 다들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풍족하게 술과 안주를 먹을 수 없다. 때문에 피같은 술은 흘리지 말아야 하고, 안주발은 가급적 자제해야 했다.


그런데, 먹성이 좋아 안주발이 심한 사람과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면, 회식자리를 즐기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음식을 먹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선배 중에 100kg에 육박하는 분이 있었는데, 이 분은 삼겹살이 덜 익었는데도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흡입하신다. 그 선배랑 테이블을 같이 하면 먹을 게 없다. 삼겹살을 더 주문할 수 있을만큼 회비가 충분히 걷혔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더 이상 주문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기본 주문양으로 만족해야 한다.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이 배를 채우려면 조금 덜 익은 상태에서라도 그 선배의 속도에 따라 삼겹살을 먹을 수 밖에 없게 된다.


반드시 삼겹살이 고루 익은 다음에 먹어야 한다는 룰은 없다. 다만, 한정된 음식량을 함께 나누어 먹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기 몫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고 도리이다.


이 테이블에서 나머지는 상식과 도리를 준수하는데, 일부는 자기 배를 채우느라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 나머지 사람들도 상식과 도리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더 이상 관망할 수 없고, 함께 덜 익은 삼겹살을 먹어야만 한다.


사회의 부는 제한되어 있다. 그 부가 공정한 룰에 의해 납득할 정도의 공평한 배분이 이루어질 경우에 우리는 그러한 사회를 살만한 사회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상식과 룰을 지키는 사람은 오히려 고리타분하고, 늘 손해를 볼 수 밖에 없다면 아무도 상식과 룰을 지키려는 노력을 중단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아직은 대부분이 룰을 지키면서 인내를 하고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와 사회가 유지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덜 익은 삼겹살을 먼저 먹어치우면서 타인의 몫까지 빼앗아 버리는 부류의 사람들, 그래서, 룰을 준수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조차 일탈의 유혹에 빠뜨리게 하는 인사들은 같은 테이블에 앉을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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