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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Sep 22. 2024

호미니드

2.6-2.7

2.6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의 자연은 고요하고 아름답다. 새벽마다 멀리서 들리는 새들의 날갯짓과 지저귐 소리가 준호가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소음이었다. 준호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이곳으로 들어온 지 한 달이 지나갔다. 그는 이곳의 지하 연구실에서 외부에는 보이지 않게 그가 하고자 했던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준호는 이미 수년간 혼자 진행해 온 프로젝트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는 1급 시민들이 흔히 그렇듯이 디지털 자아 따위를 남기고 죽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세상을 남기고 싶었다. 따라서 그에게는 불평할 시간이 없었다. 준호가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 고요한 정적을 깨고 준호의 연구실에 알람음이 울렸다. 누군가 연구실 입구에 접근했다는 경고음이었다. 준호는 외부 출입구 쪽 카메라 화면을 확대해서 보았다. 주사장과 그의 클럽에서 일하는 매니저 제니스가 입구로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약속이 없었는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준호는 계획되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방해하고 싶지 않지만 중요한 일이 있어요. 상의드리려고 급하게 왔습니다.” 주사장은 준호의 연구실에 거침없이 들어와 커다란 탁자 앞에 앉았다. 제니스는 그의 뒤를 따라 그의 옆에 앉았다. “어떤 일을 상의하려고 하나요?” “이수현 경감이 오늘 오후 늦게 찾아왔어요. 누군가에게 우리 클럽에 허가되지 않은 술이나 마약을 팔았다는 첩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건강검진 결과 우리 클럽에 다녀간 사람들만 뭔가 다른 결과가 나왔다고 하던데요. 아무튼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조사를 안 하는 건지 아니면 감시를 하는 중에 뭔가 떠보려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조심해야 할거 같아요.” 준호는 주사장의 말을 듣자 이수현 경감에 대해서 리서치를 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려보세요. 이수현 경감이 어떤 사람인지 한번 찾아볼게요.”  “이 수현경감이 가진 정보 권한을 보니 꽤 상위 레벨의 경찰입니다. 경감이라는 직함으로 가질 수 있는 가장 높은 정보 접근 권한을 갖고 있어요. 과거 데이터도 접근 가능하네요. 주사장님은 글리터 관리에만 신경 쓰세요. 이수현경감이나 중앙정부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잘 됐네요. 그럼 일단 걱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보다 아시겠지만 원하시는 사람들 샘플을 계속 모을 수는 없습니다. 꼬리가 길면 잡히게 되어있어요.” 주사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준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의 눈빛은 클럽에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눈빛이었다. “일단 당분간은 모든 일을 중지하죠. 이수현경감이라는 사람이 그냥 온 것은 아닐 테니. 그리고 이제까지 모아진 샘플은 모두 분석 중인데 이번주내로 적합한 정자를 추려서 수정시킬 겁니다. 하지만 샘플의 모수가 많을수록 유리합니다. 추후에 이수현경감이란 사람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판단되면 계속해야 합니다.” 주사장과 준호의 대화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제니스가 입을 열었다. “전에 이야기한 사람을 한번 데려와 볼까요? 분명히 그 사람은 당신을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때 그 정체불명의 바텐더 말이군요. 혹시 정확한 이름만이라도 알면 내가 그를 조사해 볼 수도 있을 텐데요.” “혹시 옆가게 미스터김 말하는 거야?” 주사장이 제니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네, 아시잖아요. 지난번에도 우리 프로젝트에 필요한 인력으로 영입하는 걸 고려해 보자고 제안했고.” 주사장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니스에게 말했다. “그 친구는 머리는 좋아 보이는데 너무 비밀이 많아. 혹시 그 녀석이 정말 천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김 박사님, 지금 우리가 말하는 사람은 천재는 아닙니다. 그냥 우리 중독자들보다는 멀쩡한 사람이에요. 눈치도 빠르고.” 주사장과 제니스가 서로 한 사람을 가지고 작은 토론을 벌이자 준호는 그 사람이 더 궁금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누군가 제가 하는 역할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네요. 오늘이라도 보러 가고 싶군요.” “그럼 지금 같이 가시죠. 여기서 떠드는 것보다 그 친구를 우리 클럽에서 보고 직접 판단하시는 게 낮죠. 지금 바로 가시죠.” 주사장은 준호에게 재촉하듯이 말했다. 


“그게 좋겠네요. 어차피 저에게 남은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사장과 제니스는 준호와 함께 그의 지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연구실 주변에 둘러 쌓인 숲에 빛이라고는 달빛 밖에 없으므로 바로 앞 10센티 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주사장은 자신이 타고 온 자동차가 세워진 곳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어둠 속에서도 차의 표면은 달빛에 반짝였다. “숲 안을 가로질러가기에는 이 차가 제격이지요. 금방 갈 테니 어서 타세요.” 주사장은 제법 자랑스러운 듯이 은빛의 타원형의 자동차의 문을 열어주고 말했다. 4 구역은 인공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 청정의 자연지역이지만 범죄자들에게 4 구역에 살게 하는 것은 최고의 형벌이었다. 범죄자들을 제4 구역의 가장 가운데부터 풀어주기 시작하면 대부분은 넓은 숲을 헤매다가 죽어갔다. 그나마 제3 구역과 가까운 곳에 까지 살아 돌아와서 거기서 살아남아 3 구역으로 넘어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몸 안에 삽입된 개별인식 칩을 통해서 위치와 아이디가 밝혀지면 그 범죄자는 다시 같은 장소에 방출되고 몇 번을 반복하다가 죽었다. 차라리 숲 안에서 생존을 모색하는 게 다시 3 구역으로 나오는 것보다 나을 수 있었다. 그러나 생존한 범죄자는 결국 야생동물이나 침팬지에게 잡혀 먹이가 되었다. 4 구역의 숲 이외에 평지 지역은 유기농 농사지역이었고 농사는 숙련된 로봇과 침팬지가 지었다. 준호가 특별히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낸 침팬지들이 이 지역의 지배자였고 범죄자들은 그들에게 침략자이자 먹잇감이었다. 


주사장의 타원형 자동차는 조용히 울창한 숲을 지나서 들판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 불빛이 보이고 공장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검고 거대한 도시 속으로 점점 다가갔다. 저 낡고 범죄가 들끓는 3 구역이 어떻게 보면 준호의 성공을 이루어 준 곳이었다. 그가 유전자 분석을 취미 삼아 할 때 생각했던 건 제3 구역의 중독자들과 범죄자들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노동 가능한 존재의 개발이었다. 그리고 준호는 침팬지의 유전자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가 조합한 유전자로 5세대 정도 지난 침팬지는 로봇보다 섬세하고 3 구역의 인간보다는 월등한 근력과 성실함을 갖춘 훌륭한 일꾼이었다. 준호가 개발한 사역 침팬지들이 3 구역에서 노동자들을 대신하면서 그나마 노동력 공급과 다양성 차원에서 유지하던 3급 사람들의 존재 자체가 중앙정부의 관심밖으로 밀려났다.  


“자 이제 도착했습니다." 주사장이 차를 세운곳은 3 구역의 가장 번화한 뒷골목 공터였다. 늦은 밤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은 밖에서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모두 마약이나 술에 취해 보였다. “저쪽 공터를 가로질러 가면 우리 클럽 뒷문입니다. 따라오세요.” 주사장과 제니스가 앞장서서 걸었다. 거리에 사람들은 힘없이 흐느적거릴 뿐 무서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준호는 이렇게 많은 중독자들이 모여있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준호에게는 그들의 초점 잃은 눈빛이 어색하고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준호의 유전자에 새겨진 그의 조상에게 물려받은 경험에서 나오는 본능이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보면 두려움을 느끼고 그리고 경계의 자세를 갖추게 유도하는 생존을 위한 두려움이었다. 


거리의 중독자들은 주사장과 제니스를 아는지 그들이 지나갈 때 약이나 술을 달라고 말을 걸고 있었다. 준호에게는 중독자들과 거리의 모습이 비현실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는 냄새와 길에서 올라오는 오물 냄새는 이것이 준호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세계란 것을 알려주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해서 주사장과 제니스를 바짝 따라갔다. 클럽의 뒷문은 주변이 어두웠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주사장이나 제니스가 없었다면 찾아들어 갈 수 없을 정도였다. 갈색의 철판으로 녹이 듬성듬성 슬어있는 벽의 한쪽으로 다가가서 주사장이 손바닥으로 철판을 밀자 문이 열렸다. 그리고 열린 틈 사이에서 빛이 흘러나왔다. 준호는 클럽 안으로 들어가기 전까지 주변의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박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 사람들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헤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클럽의 정문 입구 외에 중앙정보국의 감시 카메라는 없습니다. 우리가 오던 길에도 감시카메라는 없어요, 중앙 정부의 관심 밖인 곳이에요.” 주사장은 이미 준호의 표정을 읽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준호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했다. 


“그나저나 박사님, 그 친구를 부르기 전에 우리의 일에 대해서 어디까지 그 친구에게 이야기할 생각입니까?” 주사장이 준호에게 물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다 말할 생각이에요. 어차피 선택은 없어요. 저는 머지않아 죽을 거고 그러면 그냥 이 프로젝트는 끝입니다. 이제는 시간을 끌 이유가 없어요. 저를 대신할 사람을 구해야 합니다.” “ 그렇긴 하군요. 다른 대안은 있나요?” “만약 저를 대신할 사람 없을 경우 저를 대신할 프로그램은 있을 겁니다. 최적의 결과 5 건에 대해서 최소 25세대 이상의 유전자 분석 시뮬레이션을 하도록 세팅할 겁니다. 누구든 분석기에 넣고 나오는 결과에 따라서 제 프로그램에서 지시를 내리는 대로 하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걱정할 일이 아니고요. 중요한 건 만약 우리가 샘플링해서 만든 유전자 배합 중 어느 것도 가장 최적이라고 생각되는 결과와 차이가 난다면 우리의 프로젝트는 자동 종료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샘플이 필요한 겁니다.” "아이고 머리야, 그런 어려운 이야기는 저는 못 알아듣습니다. 어쨌든 잘 되려면 샘플을 많이 구하란 이야기군요." "네, 맞습니다." 


준호와 주사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제니스가 윤이를 데리고 주사장의 클럽 뒷문으로 들어왔다. 윤이는 제니스가 할 이야기가 있다며 그를 클럽의 뒷문으로 이끌 때부터 뭔가 중요한 비밀에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은 있지만 윤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그저 제니스를 따라 걸었다. 윤이는 어두운 복도를 지나서 주사장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의외로 다른 클럽의 방들과는 달리 환하고 정돈된 도서관의 느낌이 들었다. 한쪽 벽의 책상과 책꽂이 그리고 가운데는 넓은 회의 탁자가 있었다. 그리고 주사장과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앉아있는 사람이 보였다. “오랜만에 우리 클럽에 왔지. 어서 여기 앉아.” 주사장은 윤이를 돌아보며 반가운 듯이 그를 옆에 앉혔다. “이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김준호라고 합니다.” 느닷없이 모르는 사람이 자신을 소개하면서 인사를 건네자 윤이는 멈칫거리며 그냥 있었다. 같이 인사를 하기에 그 사람은 너무 자신의 모든 걸 알아 버릴 것 같이 3 구역에서 볼 수 없는 멀쩡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미스터김, 이분은 유전자분석회사의 대표님이셔. 십 대에 회사를 만들어서 지금은 업계 선두야. 이 분이 당신을 보고 싶다고 해서 불렀어." "아, 네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미스터김이라고 합니다." 윤이가 준호를 보면서 인사를 했다. " 미스터김, 오늘은 우리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때. 당신이 여기 3 구역에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란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잖아. 우리가 비밀은 지켜줄 거니까.” 윤이는 이 사람들이 자신보다 어쩌면 더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윤이는 사람들에게 무턱대고 자신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 윤의 속내를 눈치챘는지 준호가 말했다. “제가 보기에 당신은 1급 시민이고 누구보다 수단이 좋은 사람이군요. 이곳에서 신분 노출을 하지 않고 지내는 것도 그렇고 무언가 당신도 목적이 있어서 여기서 살고 있겠죠. 눈빛을 보니 나쁜 사람 같지 않아 보입니다. 그래서 먼저 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죽게 됩니다. 유전자 분석가이면서 내 유전자의 변이 예측도 못하고 암에 걸렸거든요. 그래서 저를 대신해서 내 연구를 이어 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호미니드라는 회사를 들어 본 적 있나요?” 준호는 이제 윤이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2.7

윤이는 호미니드란 회사를 잘 알고 있었다. 유전자 개발분야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회사 중의 하나이며 그의 형 제이가 다니고 있는 회사였다. 그러나 윤이는 그 회사의 창업자를 알코올과 마약 중독자들이 들끓는 3 구역의 클럽에서 볼 줄은 몰랐다. “표정을 보니 호미니드를 아시는군요. 저는 오래전부터 회사일에는 싫증이 났었죠. 그래서 한 가지 프로젝트를 혼자 실행하고 있었어요. 여기 주사장님과 제니스 그리고 의학이나 수학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의 조력자입니다. 공통점은 우리는 모두 꿈을 꾸는 사람들이란 것입니다. 그 꿈은 기계의 통제를 받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준호는 여기까지 말 한 다음 잠시 윤이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윤이의 눈빛이나 표정을 살피는 것이 분명했다. “ 윤이 씨도 1급 시민이면서 여기서 시는 것을 보면 분명히 추구하는 꿈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함께 꿈을 이루면 좋겠군요.” 윤이와 준호가 꿈꾸는 세계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이 기계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였다. 


누구나 인간은 모든 동물들보다 더 뛰어난 지능을 갖고 있는 지구의 지배자라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윤이는 준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뛰어남과 어리석음을 동시에 볼 줄 아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죽은 뒤에 내가 하는 일을 이어서 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나는 지금 기게에서 해방된 인간의 세상을 만들 사람을 찾습니다."  “제가 당신의 일을 이어받아서 할 수 있는 능력이 될까요? 중요한 건 제 의지와 제가 그것을 할 능력이 되는지입니다.” 윤이의 대답에 준호는 다소 긴장했던 표정을 풀고 웃었다. “당신이 1급 시민인 것은 이미 당신의 잠재능력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윤이는 준호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망설이는 눈빛을 보였다. 순간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윤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선 여러분들이 하는 프로젝트를 제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또 제 능력에 대해서도 여러분들이 알아야겠지요.” 준호는 윤이의 대답을 긍정으로 받아들였다. 준호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던 주사장과 제니스도 윤이의 눈빛이 준호의 제안에 관심을 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오늘이라도 나와 같이 연구실에 가서 며칠 지내보지 않겠어요? 무엇을 하는지 자세히 알게 될 겁니다. 설명보다는 한번 보는 게 나을 겁니다.” 그때 문득 윤이는 얼마 전 숲 속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쫓겨난 이 씨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잠깐 보였던 사람이 준호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연구실이 제4 구역의 숲 속 중심부의 침팬지 서식지 주변에 있나요?” 윤이의 질문에 놀란 사람은 준호가 아니라 주사장과 제니스였다. 주사장과 제니스는 동시에 입을 살짝 벌리고 탄성을 냈다. 그러나 준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네,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윤이의 직감은 맞았다. “얼마 전 우리 가게에서 살인 사건 용의자가 도망을 쳤는데 그 사람을 찾아보다가 숲 속에서 언뜻 식별 불가능한 사람을 봤거든요.” 


주사장은 윤이의 대답을 듣고 미소를 지으면서 급하게 말을 시작했다. 그는 흥분하면 성격이 조금 급해지고 말도 많아지는 편이었다. “아니 미스터김은 도대체 이곳에서 뭘 하고 지내는 거야? 4 구역을 모니터링하려면 중앙정부의 감시시스템에 접근해야 할 텐데 시스템에 접근하는 사람은 그런 권한이 있거나 아니면 상급 해커뿐이야. 그럼 미스터김은 후자에 해당될 테고 해킹 능력도 꽤 좋은 수준이겠지. 근데 여기서 그동안 무엇 때문에 바텐더를 하면서 지낸 거지? 여기서 하는 일이 뭔지 좀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설마 특수경찰은 아니지?” 주사장은 그저 궁금해서 묻는 것처럼 말했으나 의심도 섞여 있었다. “저는 그저 추방된 이 씨의 행적을 한번 살펴본 것뿐입니다. 경찰은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좀 더 넓은 세계를 알려고 애쓰고 있었어요. 필요하면 해킹도 하죠. 아무도 보지 못하는 정보를 볼 수 있고 그건 더 넓은 세계를 보는 수단이니까요.”


“자, 그럼 본인의 정체에 대해서는 우리와 좀 더 신뢰 관계가 생긴 후에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이제 함께 내 연구실에 가지 않겠습니까? 오늘부터라도 당장 우리 연구소에서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를 직접 보고 앞으로 같이 참여할지 하루라도 빨리 결정하는 게 서로에게 현명한 일 같습니다.” 준호는 처음 제니스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다 윤이에게 자신의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 제가 갑자기 없어지면 우리 사장님이 곤란할 수도 있어요. 최근에 살인사건 용의자가 다녀간 뒤라 경찰이 또 올지도 모르고요.” 그러자 주사장이 윤이의 말에 대답했다. “강사장은 신경 쓰지 마. 내가 강사장을 우리 가게에 초대해서 며칠 동안 가게 생각 안 하고 푹 쉬게 해 줄 테니까. 그리고 그 특수경찰은 우리 가게에도 왔었는데 특별히 증거가 없으면 누구도 감시할 수는 없으니 미리 겁낼 건 없어. 그리고 당신은 식별 정도보 안 나오는 1급 시민인데 어디를 돌아다니던 걱정하지 마. 더구나 해킹이 가능하면 중앙시스템에서 흔적을 지우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야.” 윤이는 주사장의 말을 들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가보죠. 저도 여러분들이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윤이는 밖으로 나가면서 그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제 짐을 좀 가져올 테니 뒷문에서 잠시 후에 다시 만나죠.” 처음과는 다른 윤이의 적극적인 태도에 방안에 있던 세 사람은 모두 미소를 지었다. “저 친구는 분명 천재가 맞아요. 위험보다는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잖아요.” 제니스가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듯이 말했다. “저 친구는 그냥 우리 프로젝트가 궁금한 거야. 아직 천재인지는 모르겠는걸.”주 사장은 처음부터 윤이가 못마땅했지만 지금은 그나마 그에 대해 조금 우호적이 되었다. 하지만 윤이가 천재라는 제니스의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주사장의 눈에는 아직도 그가 별 볼 일 없는 바에서 바텐더를 하면서 골방에서 혼자 뭔가를 하는 미스터김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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