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3.2
3.1
이영은 평소와 달리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평소라면 새벽 동이 틀 무렵까지 클럽에서 일을 하고 점심시간이 지나서 일어나기 일쑤였다. 이영은 이런 생활패턴이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이제는 밤낮이 바뀐 클럽의 일상에 적응이 되어서 오히려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그녀가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접대할 종업원이 부족할 때 주사장이 시키는 일이다. 이영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매니저인 제니스를 통해서 여러 번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막상 사람을 대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사장에게 고객과 술을 마시거나 함께 어울리는 일은 잘하기 힘들다고 이야기하고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주사장이 이영을 매우 강하게 말렸다. 하지만 이제 이영은 주클럽을 떠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갈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오늘부터는 클럽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몇 시간이라도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돌아다녀 볼 생각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자 탁자에 놓아둔 이영의 스케줄러가 반짝였다. 이영은 스케쥴러를 펴보았다. 중앙관리센터에서 간단한 메모가 와있었다. “경찰국에서 당신과 면담을 요청했으니 수일 내로 담당 경찰이 찾아갈 겁니다.” 이영은 메시지를 읽으면서 자신이 어떤 범죄와 연관된 적이 있나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영은 너무 평범한 삶을 살아서 그런 일이 없었다. 그렇다면 굳이 경찰이 왜 자기를 면담하러 오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뭔가 범죄나 사건에 휘말리게 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라면 정확한 케이스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렇게 면담을 하러 온다는 것은 이영의 잘못에 대한 심문이 아니라 도움을 구하러 온다는 뜻이었다. 문득 지난번 주사장 방에서 마주친 경찰이 자신에게 자꾸 무엇인가 묻고자 했는데 그 사람이 정식으로 면담을 요청하고 온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이 새로운 일자리도 찾아볼 겸 컴퓨터에 접속하려고 일찌감치 방을 나와 로비로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도 전에 화난 듯한 강 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클럽 입구에 서서 강 씨가 주사장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뭔가에 단단히 화가 난 표정이었다. 이영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인 입구 카운터를 향해 갔다. “이봐. 이영. 너도 정말 모르는 거야? 윤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여기서 일하는데 딱 잡아떼는 거 아니지?” 이영은 자신의 뒤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강 씨를 돌아보았다. 강 씨는 커다란 몸집을 지탱하기에는 무릎이 아픈 듯이 한 손은 벽에 짚어 몸을 기대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서 있었다. “저한테 하는 말씀인가요? 근데 저는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 못하겠네요.” 이영은 그에게 대답을 하고 카운터에 들어가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정말 윤이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거 맞아? 윤이가 며칠째 안 나와서 지금 우리 가게는 망하게 생겼어. 어딜 갔는지 너도 모르는 거야? 둘이 잘 통했잖아. 너는 뭐 집히는 거 없어? 윤이 좀 찾아줘. 난 한걸음도 돌아다니기도 힘들다고. 내 부탁 좀 들어줘. 제발.” 강사장은 말을 하면서 점점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는지 목소리에서 힘이 빠지고 울 것처럼 얼굴이 떨리고 있었다. 이영은 그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가 안돼 보이기도 했다. “이제 곧 영업 시작 할 시간인데 여기서 이러지 마. 내 방에 가서 이야기하자.” 주사장이 힘들게 강 씨의 팔을 부축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영은 윤이를 본지가 오래되어서 왜 강 씨가 자신에게 윤이의 행방을 묻는지 의아했다. 그와 동시에 윤이가 갑자기 어디로 없어졌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주사장과 강 씨가 사라지고 나서 고요함 속에 이영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공기 중에 울리고 있었다. 이영은 윤이가 없어진 것이 자꾸만 생각이 나서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러 나가겠다는 생각도 잊어버렸다. 이영이 아는 한 윤이는 이곳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영은 이제까지 1 구역에 사는 사람을 직접 본 적은 없었다. 윤이가 처음이었다. 윤이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기도 했지만 연극이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었다. 이영은 문득 주사장의 바 안쪽에 있는 윤이가 머물던 방에 한번 가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문득 윤이가 가끔 이영에게 자신의 고향에 같이 가보고 싶다고 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연극하는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이영은 그 말이 이영에게 관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말인 것처럼 들렸는데 오늘은 왠지 윤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업시간은 다가오는데 이영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윤이 생각으로 복잡해지고 있었다.
“오늘 예약 손님 중에 이 두 명은 다 내방으로 보내줘.” 이영이 윤이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제니스가 갑자기 다가왔다. 그리고 고객들 이름이 적힌 스케쥴러를 이영 앞에 보여주었다. 이영은 그 이름을 컴퓨터에 조회했다. 예약은 제니스가 아닌 다른 직원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되나요? 다른 직원으로 예약되어 있는데요.” 요즘 들어 제니스가 다른 직원의 손님 명단을 어떻게 알았는지 가져와서 자기 방으로 보내 달라는 일이 잦았다. 물론 이제까지 그것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불평을 한 적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자주 그러는 것이 조금 이상해서 제니스에게 물었다. “괜찮아. 이미 직원들에게 내가 양해를 구했으니 신경 쓰지 말아요. 내 말대로 손님들이 오면 내방으로 안내하기나 해요. 부탁해요.” 제니스는 다소 강압적이면서도 명령조로 이영에게 지시를 하고 사라졌다. 제니스가 까다롭기는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어서 다른 직원 일을 뺏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슨 일인지 그렇게 손님을 지명해서 굳이 자기 방으로 데려가는 게 이영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더구나 직원들에게 비용은 그대로 주면서 손님 접대는 제니스가 한다는 것은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3.2
이 수현 경감은 행방불명이 된 김준호대표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것이 급했다. 이수현 경감이 가장 먼저 준호의 행방을 찾기 위해서 방문한 곳은 그가 입원해 있던 병원이었다. 그의 주치의를 만나기 위해서 병원의 복도를 한참 걸어가는데 낯익은 사람이 반대 편에서 걸어왔다. 제이였다. “여기서 만나게 되는군요.” 이수현 경감은 제이가 다가오면서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먼저 말을 건넸다. “오랜만에 뵙네요. 저는 오늘 진료가 있어서 왔습니다. 경감님은 여기 무슨 일로 오셨나요?” “나는 조사할 게 있어서요. 아, 그러고 보니 제이씨도 잘 알겠네요. 김준호대표의 행방불명에 대한 조사를 제가 맡았습니다.” 이수현 경감은 가볍게 말을 했으나 그의 눈은 제이의 표정을 읽고 있었다. 오랫동안 수사를 해온 습관이기도 하고 그가 가진 본능이기도 했다. 제이의 표정은 별 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이수현 경감은 요즘 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3급 시민들을 많이 만나서 제이에게 허튼 기대를 했던 것이다. “그 일 때문에 오셨군요. 저는 감정체험 치료를 받으러 왔어요.” 제이에게서 감정체험 치료란 말을 듣고서야 이수현경감은 제이가 완벽하게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이성적 지배자인 1급 시민 중에서도 최고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했다. 그리고 조금 전 그의 감정 변화를 읽으려 했던 것이 생각나서 헛웃음이 나왔다. “그렇군요. 호미니드에도 조사 때문에 한번 방문할 것 같은데 그때 또 봅시다. 아버지에게도 안부 전해줘요.”
이수현경감은 제이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것을 들으며 복도의 끝방 문을 두드렸다. 한주영 박사는 이수현경감을 기다리다 반갑게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이수현경감이라고 합니다. 미리 연락드린 데로 김준호 씨 관련해서 조사가 필요해서 뵙자고 했습니다.” “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김준호박사의 주치의 한주영입니다.” 한주명 박사는 이수현경감을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의자에 앉도록 권하고 자신도 그 반대편에 앉았다. “말씀하세요. 제가 무엇을 도와드리면 될까요?” “김준호 씨가 행방불명 상태입니다. 혹시 그럴만한 이유나 특이한 점을 치료를 하시면서 느끼신 게 있으신가요? 어떤 일이든 김준호 씨의 행방을 찾는데 도움이 될만한 단서가 있으면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김준호박사는 갑작스럽게 발병한 뇌종양으로 많이 당황스러워했습니다.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었거든요. 아시겠지만 완벽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어떤 이유에서 인지 돌연변이 세포가 자라서 예측 수명이 훨씬 앞당겨질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1급 시민 중에 이성이 고도로 발달된 사람일수록 더욱 자신의 결말을 자신의 힘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병원에서의 안락사보다 더 주도적인 삶의 마감이 자살입니다.”
“김준호 씨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뇌에서 종양 제거가 불가능했고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기간은 6개월 정도로 예측되었습니다. 당장 죽음을 예약하고 기다리기에는 그의 다른 장기들이 너무 건강했습니다. 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기보다는 병원 밖에서 살다가 자살이라도 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죠. 그건 자신의 유전자들이 불량이란 걸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는 길이기도 합니다.” 한주영 박사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의 죽음 예약 시스템이 1급 시민에게 주는 부정적인 면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1급 시민이라 할지라도 돌연변이 때문에 앞당겨진 운명을 맞이한 사람들은 치료를 받는다는 명목하에 격리되어 생활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 최상의 유전자를 가진 인간에서 갑자기 연구가 필요한 돌연변이 세포 덩어리 취급을 받는 사람이 되는 걸 이성이 발달한 1급 시민이라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이 연구대상자가 아니라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라는 자부심을 지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시스템에서 벗어나 스스로 죽는 것이었다.
“김준호 씨가 격리되어 치료받는 동안 어떤 특이한 이야기나 행동을 보여준 것은 없나요?” “아시겠지만 그 사람은 1급 시민입니다. 이 사회에 최적화된 인재 중의 한 명입니다. 우리의 프로세스를 따라 치료받았고 병동에서 일탈행위를 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한순간에 사라져서 모두 당황스럽게 만들었지만.” 이수현경감은 더 이상 물어볼 말이 없었다. 자살을 위한 행방불명으로 처리하면 될 것 같았다. “ 요즘 이런 환자들이 많이 있나요?” “일 년에 1,000여 명은 행방불명이 되곤 합니다. 예측불허의 죽음을 맞이한 환자군에서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삶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인 인간은 불필요한 경쟁이 줄어들어 수명은 늘어났다. 굳이 노력하지 않고 그저 자기의 유전자 몫만큼만 삶을 살다가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간혹 유전자의 변이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사람들은 유한한 삶을 인정하는 것보다 열등한 유전자를 인정하는 것을 힘들어했다. 처음부터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어려웠던 것이다.
이수현 경감은 마지막 질문을 했다. “ 김준호 씨의 상태가 수술이나 치료를 받을 수 없을 정도였다면 앞으로 수명이 어느 정도일까요?” “ 전이가 굉장히 빠르게 되고 있어서 길어야 6개월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사람마다 차이가 많습니다. 예측보다 좀 더 짧을 수도 있고 길 수도 있습니다.” 한주영 박사는 고개를 살짝 좌우로 흔들면서 장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수현 경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김준호박사를 빨리 찾으면 좋겠습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이수현 경감은 한주영박사와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김준호는 자살하기 위해서 행방불명이 된 것이 지금으로는 가장 합리적인 예상이었다. 더구나 그가 사회의 어떤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 아닌 점을 감안하면 그에 대한 조사는 이쯤 해서 마무리하는 게 시간을 이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