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2
4.0
어릴 때부터 윤이의 학습능력은 1급 시민 중에서도 아주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윤이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 더 많은 학습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조금이라도 다른 의사결정이나 행동 패턴을 보이면 항상 의사를 만나러 가야 했다. 의사는 그에게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윤이는 몇 번의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 다시는 친구들과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다. 그는 사춘기도 되기 전에 시스템에 의존해서 통제된 삶을 사는 사람들은 결국 스스로를 제한시킬 것이란 것을 간파했다. 그리하여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윤이는 자유로운 삶의 길을 택했다.
과거 윤이의 조상들은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여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욕망을 너무 통제하여 문제가 되고 있었다. 윤이는 인간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바꾸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가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졌다 해도 그의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그것을 윤이도 깨닫고 있었다. 따라서 윤이는 준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고민을 해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준호가 추구하는 세상은 윤이가 추구하는 것과 조금 다른다는 것이었다.
준호는 물리적으로 다른 인간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윤이는 사회를 통제하는 시스템의 소프트웨어를 바꾸고 싶어 했다. 윤이는 인간이 모두 다른 감정과 욕망을 갖고 있으나 같은 결정을 내리는 지금의 시스템을 싫어했다. 지금의 인간은 의사결정 시스템의 일부로 살아가는 식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영이 점심을 먹으러 오려면 아직 두 시간도 더 남이 있었다. 윤이는 그녀를 위해서 음식을 준비했다. 강 씨는 냉장고 안을 꽉 채워놓고 떠났는데 그중에 고기 종류가 너무나 많았다. 물론 청정지역에서 키워지는 소나 돼지고기는 육질이 질겨서 강 씨는 좋아하지 않았다. 따라서 강 씨가 냉장고에 가득 채워 놓은 고기들은 남미지역에서 사육되는 고기였다. 아직도 그 지역들은 시스템에 의한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청정지역이 분리되지 않았다. 단지 1급 시민과 나머지 시민들의 분리만이 이루어졌다. 그곳은 아직도 로봇이 농사를 짓고 가축을 관리하는 청정지역은 세워지지 않고 구시대의 시스템을 따르고 있었다.
전 세계 국가 연합은 그들 지역의 낙후된 농축산물 생산 시스템을 바꾸려고 하지만 아직 그곳은 구시대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이 강 씨와 같은 음식 중독자들에게는 어쩌면 축복이었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영양 밸런스가 맞춰진 음식대신 자기 돈을 들여서 사 먹을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선택 중에 남미의 고기는 단연 가장 인기 있는 식재료였다. 윤이는 고기요리를 잘하지 못해도 강 씨가 해주는 소고기 스테이크는 몇 번 먹어봐서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만드는 방법이 어렵지도 않아서 그런대로 윤이도 스테이크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영이 강 씨의 바에 도착한 것은 그로부터 정확히 두 시간 후 정오였다. 지난번처럼 바의 문을 두드리기 전에 시간 맞춰 윤이가 입구에서 기다리다가 바의 문을 열어 주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윤이의 태도에 이영은 감동하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르게 화장도 조금 하고 머리도 단정하게 하고 나타났다. 윤이는 단번에 그녀의 외모가 달라졌음을 눈치챘지만 그것에 대해서 별다른 멘트는 하지 않았다. 윤이가 주방에서 스테이크와 구운 채소를 접시에 담아 나오자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던 이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기네요. 이렇게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은 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나를 위해서 정성 들여 요리를 다해주다니 고맙네요.” 이영이 감동한 표정을 지으면서 윤이의 스테이크 접시를 바라보았다. “앉으세요. 별거 아니에요. 강 씨 아저씨가 가끔 해주시던 전통 음식인데 한번 먹어봐요. 과거에는 이런 음식을 집에서 많이 해 먹었다고 해요. 지금은 대부분 규격화된 고기를 쓰지만 이건 남미산 수입 고기예요. 과거 방식으로 사육한 고기지요. 아저씨가 하던 대로 따라서 해봤는데 맛있을지 모르겠네요.”
이영은 윤이가 내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었다. “이영 씨가 제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니 다행이에요.” “윤이 씨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제가 너무 먹는 건 아니겠죠? 사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도 이런 음식을 가끔 해 먹곤 했어요. 저는 이런 규격화되지 않은 옛날 음식들을 좋아해요.” 윤이는 이영이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3급 시민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윤이는 사는 동안에는 항상 영양성분과 칼로리가 정확하게 계량된 음식만을 먹었다. 윤이에게는 강 씨가 아니었다면 과거 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다행이에요. 이영 씨가 좋아해 줘서요. 근데 혹시 저랑 같이 일해볼 생각은 없어요?” “ 일이요? 주클럽을 관두고 이곳 바에서 같이 일하자는 건가요?” “이 바에서 일하는 것은 아니에요. 제가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는데 그 일에 대해서 가끔 조언을 해주는 거예요.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필요할 때마다 가끔 만나서 같이 일을 하면 되죠. 주클럽의 일을 하는데 지장은 없을 거예요.” 윤이의 말에 이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시 그에게 질문했다. “연구라고요? 저는 연극배우였던 사람인데 저 같은 사람이 윤이 씨처럼 똑똑한 사람이 하는 연구를 도울 수 있을까요?”
“감정이나 행동을 표현하거나 모방하는 게 연기의 기본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뛰어난 관찰력도 필요하다고 알고 있고요. 제가 연극은 잘 모르지만 연극배우인 이영 씨의 그런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과소 평가 하지 마세요. 인간은 모두 서로 다른 장점을 가졌잖아요.” 윤이는 이영의 눈을 보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는 진심으로 이영이 가진 능력을 존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해 주시니 감동인데요. 그럼 일단 제가 필요하면 불러주세요. 어떤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참여하겠습니다.” “동물을 관찰하고 변화를 기록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면 돼요. 나중에 한번 자세하게 알려드릴게요. 그리고 이 일은 아시겠지만 불법도 아니고 합법도 아닌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경계에 있는 일이에요. 다른 사람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겠지만 혹시라도 다른 사람은 모르게 했으면 합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4.1
준호는 요즘 들어서 자주 극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이제 눈도 희미하게 보였다. 준호의 머릿속에 있는 종양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준호는 아직 그의 삶을 끝낼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연구소에서 보이는 숲은 점점 가을 분위기가 나고 있었다. 그렇게 푸르던 잎들이 조금씩 노랗고 붉게 물들고 있었다. 이미 어떤 나무는 낙엽을 다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아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오기 전에 준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직 정리하지 못한 일들이 많았다. 준호는 조금 더 삶을 연장하기 위해서 주사장이 권하는 불법 수술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호가 두통을 잠시 잊기 위해서 약을 먹고 있을 때 주사장이 그의 연구실에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주사장은 준호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먼저 눈치채고 있었다. “많이 아픈 거예요?” 주사장은 준호가 앉아 있는 책상 앞으로 다가와서 그의 얼굴을 살피면서 물었다.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그리고 나도 더 이상 시간을 끌고 싶지도 않고요. 윤이 씨에게 전달할 수 있을 만큼 전달하면 죽을 날짜를 잡으려고요.” "나는 아직도 그 방법은 반대예요. 내가 전에 이야기한 의사를 한번 만나봐요. 잘하면 수술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같이 무식한 3급 시민들은 욕심이 많고 미련해서 더 살려고 발버둥 친다고 비난하지만 그게 뭐가 문젠가요. 더 살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일찍 죽으려고 발버둥 치는 거죠?” 주사장은 마치 준호의 죽음이 다가오는 것이 자신의 일인 것처럼 살짝 흥분해서 말을 쏟아냈다. “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죠. 지금 그걸 길게 사장님과 언쟁하고 싶지는 않아요. 하지만 역시 저도 인간이라 죽음을 미루고 싶어요. 요즘은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요.” 준호는 머리가 아픈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머리를 잡고 고개를 책상에 숙였다.
얼마쯤 침묵 속에서 준호를 기다리던 주사장은 그의 책상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회의 탁자 쪽으로 가서 의자에 앉았다. 준호는 머리가 많이 아픈지 조금씩 신음 소리 비슷한 숨소리를 내면서 계속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잡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주사장은 준호의 고통이 그의 고통인 것처럼 그 자신도 얼굴을 찡그렸다. “너무 아프면 마약을 조금 줄까요? 살짝 들이마시면 금방 고통이 사라질 텐데.” 주사장은 조그만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준호에게 제안을 했다. 준호는 주사장의 말에 아무 대답도 없이 계속 같은 지세로 앉아있었다. 얼마 후 식은땀을 닦으면서 책상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준호가 몸을 일으켰다. “이제는 먹는 약으로는 효과가 없네요. 아무래도 죽음의 날짜를 앞당겨야 할 것 같아요. 이렇게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어요” 주사장은 준호의 눈치를 살피면서 회의용 탁자에 앉아 있었다.
“오늘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준호가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책상에서 일어나서 회의탁자 앞으로 다가와서 주사장의 앞에 앉았다. “그냥 생각이 나서 왔어요. 아마 우리가 서로 통하는 게 있나 봐요. 갑자기 오고 싶더라고요. 그나저나 내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수술을 한번 해보는 게 어때요? 김박사를 못 믿어서 그런 건가요? 난 무식하지만 감이란 게 있어요. 김박사는 허튼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에요.” “제 생명을 연장시킨다고 우리 프로젝트가 더 잘될 거란 억측은 하지 말아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똑똑한 윤이 씨에게 모든 걸 넘겨주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도 몰라요.” “그래도 일단 김박사를 한번 만나봐요. 내가 지금 가서 데리고 올게요.” 주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호는 고통은 없지만 몸이 무기력해져서 그를 말리려고 일어설 기운도 없었다. “다녀올게요. 누구라도 데리고 와서 당신을 돌봐주도록 해야겠어요. 잠시 쉬고 있어요. 지금도 안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아요.” 주사장은 준호의 팔을 부축해서 연구실의 밑에 층에 있는 그의 침실로 데리고 갔다.
4.2
준호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제니스의 얼굴이었다. 제니스는 준호의 침대 옆에 앉아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의 밑쪽 침대 너머로 한 명의 여자가 더 앉아있었다. 준호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제 정신이 듭니까?” 준호에게 제니스의 목소리는 멀리서 들리는 것처럼 아련하게 들렸다. 준호는 몸을 움직이고 싶었으나 꿈속처럼 아늑하고 따스한 이불속에 몸이 녹아들고 있는 기분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제니스에게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머릿속의 생각과는 달리 입술조차 움직여지지 않았다. “일어나 봐요. 제가 누군지 알겠어요?” 제니스는 그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아직 진통제 영향으로 잠이 덜 깬 상태 일거예요. 몸은 무력해도 우리 대화는 다 알아들을 거예요. 의식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김준호 씨, 제 말은 다 들리죠? 진통제 양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래요. 좀 더 자고 나면 나아질 거예요.” 준호는 그에게 말을 하는 여자의 말투로 그녀가 의사임을 느꼈다. 준호는 그녀의 말대로 다시 눈을 감고 잠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괜찮은 건가요?” 제니스가 김수미 박사에게 걱정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의식이 돌아왔으니까 자고 나면 나아질 거예요.”
김수미박사와 제니스를 데려 온 것은 주사장이었다. 주사장은 별 볼 일 없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준호 씨는 상태가 어떤가요?” 제니스와 김수미 박사가 준호의 침실에서 회의실로 돌아오자 주사장이 물었다. “의식을 잃은 것도 아니고 진통제 때문에 잠이 든 거니까 곧 깨어나겠죠. 하지만 지금 상태에 대해서 정확히 알려면 정밀한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으로 옮겨야 돼요.” “우리가 쓰는 병원에서도 가능할까요?” 주사장이 근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네, 저도 그 병원을 말한 겁니다. 무엇보다 우선 본인 의견을 들어봐야겠지만.” “아시겠지만 우리는 지금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에요. 김준호박사가 조금 더 버텨줘야 프로젝트가 성공할 확률이 높아요. 힘든 일이지만 어떻게든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주사장은 김수미 박사에게 애걸하는 표정으로 정중하게 말했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제니스도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아시겠지만 김준호 박사의 종양이 어느 부분까지 침투했는지 정확히 확인해 보면 뇌이식수술이 가능할지 판단할 수 있을 거예요. 종양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로 인하여 저분의 지적 능력이 사라지게 되는 수술은 의미가 없어요. ” 김수미 박사는 제니스나 주사장이 알아들을 수 있게 조금은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우선 기존의 뇌를 그대로 복사한 인공뇌를 제대로 만들어야겠지요. 다른 장기이식과는 달리 뇌이식은 더 어렵지요.”
“그런데 저분이 호미사이드 대표라고 했나요?” 김수미박사가 주사장에게 물었다. “네, 창업자입니다. 고등학교 때 만들었다고 하네요.” “흠, 저렇게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갑자기 뇌종양에 걸릴 수가 있다니. 제가 병원으로 돌아가서 저 사람의 상세 기록을 좀 봐야겠군요. 뇌종양도 유전적인 요소를 배제할 수 없는데 건장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예상치 못한 이런 변이를 일으킨 원인이 있을 거예요.” “박사님은 믿지 않겠지만 제 생각에는 머리를 너무 많이 써서 생긴 것 아닐까요? 제가 보기엔 그게 원인 일거예요. 적당히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몇십 년 앞을 예상하고 쉴 새 없이 일을 하죠.” 주사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그의 말이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었는지 아니면 그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랬는지 김수미 박사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주사장은 말을 마치고 잠깐의 침묵이 흐르자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품에서 작은 술병을 꺼내 한 모금 삼켰다.
회의실에서 셋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준호는 침실에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그는 한동안 통증 때문에 긴 잠을 자지 못했다. 그가 뇌종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두 가지 의문이 계속 그의 머리에 맴돌았다. 하나는 왜 자신과 같이 최고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하필 암에 걸렸는지와 그가 추진하던 일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는지였다. 예상치 못하게 빨리 다가온 죽음에 대하여 미리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도 그 자신의 완벽함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라면 그의 수명은 칠십 세가 넘어서까지 가능했는데 반이상이 앞당겨진 것이다. 그는 병원에서도 그리고 병원을 나와 삶을 정리하기로 결심한 후 연구소에 와서도 좀처럼 깊게 잠들지 못했다. 준호는 어떤 변명을 해도 그가 한낱 나약한 인간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준호는 그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런데 그대로 죽기는 더 싫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과거 자신의 조상들이 했으나 지금은 금지된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자신의 뇌의 일부를 떼어내고 자신의 모든 행동과 의사결정 데이터를 학습시킨 인공뇌를 이식받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