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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Dec 08. 2024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

13.3-13.7

13.3

재영이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들을 찾아낸 것은 유흥가에서 가까운 주거 지역을 다시 방문하려고 주클럽을 나왔을 때였다. 주클럽의 길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웅성 거리는 소리에서 재영은 지난번에 들었던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의 말소리란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재영은 사람들이 둘러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 사람들은 재영을 신경 쓰지 않고 담배를 피우거나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잠시 저랑 이야기를 하실 수 있을까요?.” 재영이 그들의 무리 뒤에서 소리치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재영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무리들은 자기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재영은 그들의 등 뒤로 다가가서 마주 보이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서 한참 서있었다. 그들은 재영보다 한참 키도 크고 덩치도 있어서 그들의 어깨 밑으로 재영이 서서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재영의 뒤에서 케이가 다가와서 귀에 대고 물었다.”저 사람들은 위험하니 저하고 같이 클럽으로 들어가시죠.” 그리고 케이는 재영이 어떤 설명을 할 틈도 주지 않고 재영의 팔을 잡고 끌었다. “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 할 게 있다고요.” 재영이 케이를 향해서 소리를 쳤다. 하지만 케이는 재영을 끌고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제가 하는 연구를 방해할 생각이 아니라면 저를 막지 말아 주세요.” 주클럽 안에 들어오자 재영은 케이에게 차분하게 그러나 아주 확고한 의지의 눈빛을 보이면서 말했다. “방해할 목적은 아닙니다. 아까 그 사람들의 무리에는 시민이 아닌 사람들도 섞여있어서 어떤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에 피하게 했습니다.” “시민이 아닌 사람들이라고요?” “네, 제가 정보 조회를 했을 때 기본적인 시민 인적 정보가 나오지 않는 사람이 두 명 있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해외에서 유입된 범죄자들 일 수 있습니다.” “시민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반드시 범죄자일 리는 없어요. 중앙정부에서 시민 등급 별로 출생 제한을 하면서 거기서 벗어나 몰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그냥 소문일 뿐입니다. 아무튼 위험한 사람들이니 앞으로는 저와 동행하시길 바랍니다.” “다시 그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그들 중에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분명히 같은 언어를 말하지만 우리와는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아까 그 사람들을 추적하는 방법이 없을까요?” “아까 무리들 중에 범죄 이력이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어서 그 사람의 기본 정보는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주변을 관찰하면 아까 무리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그럼 어서 그 사람의 정보를 수집해 주세요. 일반인들과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을 찾아낸다면 저의 연구에는 정말 중요한 새로운 주제가 될 겁니다. ” 재영은 앞으로 큰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들뜬 표정이었다. 케이는 재영의 부탁을 받는 것이 나쁘지 않은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위아래로 연신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방으로 올라가시죠. 이수형경감님과도 의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13.4

“우리가 욕망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를 불완전한 상태로 만드는 원인입니다. 김준호 박사가 지금 하는 일들이 그러한 일들이지요.” 박진비서는 윤이에게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확히 김준호 박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파악하지 못했지만 그는 제3 구역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하도시도 이미 많이 완성했습니다. 지금 김준호박사가 하는 일들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만들려는 사람 같아 보였습니다.” 윤이는 박진비서의 느긋함과는 달리 다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우리는 김준호박사의 욕망을 좀 더 관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욕망을 다스리지 못하는 1급 인간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위험한지 아니면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모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3 구역은 어차피 혼돈과 욕망이 인정된 구역입니다. 그 안에서 그가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해도 어차피 우리가 다시 통제하게 될 겁니다.” 박진비서는 김준호박사에 대해서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얼마 전에도 김준호박사는 중앙정부를 상대로 자원을 가지고 위협해서 협상을 했고 원하는 것을 얻어냈습니다. 제3 구역에 최대한 더 많은 감시카메라를 설치하고 경찰 로봇을 파견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시민들의 폭동이라도 일어나면 우리의 안전도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잠자코 듣고 있던 경찰국장이 한마디 거들었다. “이수현경감이 직접 제3 구역에서 정보수집을 하고 있으니 그가 요청하면 바로 진행하는 것으로 합시다. 또한 제3 구역에 대한 통제는 최소한으로 하는 원칙을 지키고자 합니다. 우리가 제3 구역을 그대로 보존하는 이유는 우리의 과거를 보존하는 차원입니다. 다른 의견이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박진비서는 서둘러 회의를 마쳤다. 윤이는 김준호박사나 제3 구역의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1 구역에는 김준호박사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고 얼마든지 거기서 일어나는 새로운 일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만 이수현 경감의 눈빛이 생각났다. 만약 제1 구역에 사는 사람들의 다수가 김준호박사와 함께 한다면 그들이 세상을 새롭게 통제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 성대구조가 이상한 사람들을 길에서 발견했어. 지난번에는 지나다가 우연히 들어서 확신할 수가 없었는데 이번에는 옆에서 정확히 들었어.” 윤이가 회의를 마치고 잠시 창밖을 내다보면서 김준호박사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재영으로부터 라이브 메시지가 왔다. “그랬구나.” “응, 지난번에 길에서 지나쳐서 꼭 다시 만나고 싶었는데 내 판단이 맞았어. 분명히 우리와는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었어. 이번에도 그 사람들의 신원 파악을 못했지만 케이가 그 사람들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고 했어. 넌 어때?” “나야 별다른 일은 없어. 근데 그 사람들은 외국인이 아닐까? 번역기를 통해 나오는 음성이 좀 어색할 수도 있잖아.” “아니, 이건 전혀 다른 문제야. 인간의 성대구조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야. 만약 다시 만난 다면 반드시 녹음을 해서 분석해 보려고.” “그렇구나. 흥미로운 일이네. 제3 구역에 있는 사람들은 공동육아원에서 길러지는데 그때부터 다른 사람이라면 뭔가 조치가 취해졌을 텐데. 아니면 외국에서 온 사람 중에 성대 이상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네.” “성대 이상이 있는 사람이 그렇게 여러 명일 수가 있을까? 그런 이상이 있는 케이스를 어떤 보고서에서도 본 적도 없고. 아무튼 난 지금 너무 흥분돼서 너한테 이 일을 이야기하고 싶었어. 내가 시간을 많이 뺏은 것은 아니겠지?” “아니, 케이랑 이수현경감님과 잘 이야기해 보고 조사해. 너 혼자 무리해서 하면 절대 안 돼.” “알겠어. 그럼 또 통화하자.” 재영은 밝은 얼굴로 인사를 하고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급하게 통화를 마쳤다.


윤이는 재영과의 통화를 하면서 성대구조가 이상한 사람은 김준호박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수형 경감이나 케이가 자신보다 더 잘 조사를 하겠지만 윤이는 김준호박사에 대해서 더 많은 조사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자신의 형인 제이에게 김준호박사가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낸 사역 침팬지에 대해서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준호박사라면 사역 침팬지의 유전자를 조작해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말을 할 수 있게 만들 수도 있었다. 물론 제이에게 그게 가능한 일인지 확인해봐야 하겠지만 김준호박사라면 그런 일을 했을 것 같았다. “형, 오늘 할 이야기가 있는데 만나 줄 수 있을까?” 윤이가 제이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제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답장이 왔다. “네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지금 집에 있으니 집으로 와라.” 


13.5

“사역 침팬지가 말을 할 수 있을까?” “언어는 인간의 본능 영역이지. 태어날 때부터 언어를 습득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침팬지는 우리가 쓰는 언어를 아무리 가르쳐도 따라 하지 못해. 그리고 가르친다고 해도 일단 성대구조가 인간과 다르게 너무 단순해. 그래서 인간처럼 다양한 발음을 낼 수가 없어.” “그럼 말을 하는 건 모두 사람이라고 보면 되지?” “현재까지 내가 아는 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알고 싶은 게 그거니?” “변형 유전자를 갖은 인간들 중에 어떤 목적에서 인지 몰라도 성대구조가 보통 사람과 다른 사람이 있을까?” “그런 변형 인간이 있다는 건 처음 듣는 일인데. 우리가 원하는 목적을 위해서 인간의 유전자를 합성해서 변형할 수 있지만 그 케이스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 내가 지금 변형인간으로 등록된 사람들의 유전자 풀을 조사해 보면 알겠지만 그런 경우는 없을 거다.” 


제이는 즉각 변형인간의 유전자 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전 세계의 변형인간 풀을 다 조사해서 나올 거니까 좀 기다려봐. 근데 요즘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 나한테 이런 걸 물어보는 거야?” “재영이랑 제3 구역에 다녀왔어. 이수현 경감도 거기서 봤고. 근데 재영이가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을 발견했다고 해서. 왜 그런 사람들이 생겨났는지 궁금증이 생겼어.” “흠, 너 친구가 어떤 근거로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하겠지만 중앙정부의 허가하에 유전자 변형으로 만들어진 인간 중에는 없을 거야. 아직 그런 사례를 들어 본 적이 없어.” “근데 혹시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난 곳에서도 유전자 변형으로 태어나는 인간이 있을 수 있다는 거야?” 


“인간이 어떻게 완벽에 도달하는지 알잖아? 처음부터 완벽하게 기획하고 실행하는 방법도 있지만 대부분 무수한 실험하에 완벽에 가까워지지. 그 실험에서 남아 있는 흔적들도 있다는 거야. 제3 구역이 그런 용도로 처음에는 만들어졌잖아. 그곳에서는 우리의 과거 즉, 무수한 실험의 부산물들이 아직도 계속 존재하고.” “제3 구역에 중앙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뮤턴트 휴먼이 있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나는 모르지. 그러나 세상에는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거야. 아무튼 네가 일에 이렇게 관심이 많은 건 처음 본다.” “재영이가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이라고 특정해서 말했을 때 그게 너무 신기하게 느껴졌거든. 그래서 뭔가 나도 거기 빠져들었나 봐. 아무튼 아까 유전자 풀에서 조사한 결과는 아직도 나오지 않은 거야?” “잠시만.” 제이는 결과가 나왔는지 보기 위해서 컴퓨터를 확인했다. “아직 50프로밖에 진행이 안되었는데. 좀 더 기다려야 봐.” “그럼 나는 가봐야 할 것 같은데. 결과가 나오면 나한테 좀 보내줄 수 있어? 나는 그만 집에 가봐야 할 것 같아. 갑자기 집에 가서 할 일이 생각났어.” 윤이는 제이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 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래. 결과가 나오면 바로 보내줄게.” 


윤이는 제이의 집에서 나와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과 트램 정거장의 불빛을 향해 걸었다. 불과 오분 정도 거리지만 제이의 집과 큰길 사이에는 긴 시간 누적된 다른 질감의 공기가 양쪽을 가르고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닿아서 반질거리는 검은 돌길을 다 걸어 나오자 제이의 집에서 벗어났다는 표시처럼 그가 발을 디디는 길 위에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윤이는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둡고 낮은 하지만 따스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제이의 집이 멀리 보였다. 자신의 할아버지는 어떤 생각으로 이 집을 나오고 또 들어가고 했을지 상상해 봤다. 환하지만 차가운 불빛이 큰길에는 쏟아지고 있었다. 트램이 방금 도착했는지 기다란 트램 안에서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 어디론가 비슷한 속도로 아슬아슬하게 서로 부딪히지 않으면서 걸어갔다. 아마도 사람들은 길가에 죽 나열되어 있는 빌딩의 어딘가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 조금 뒤면 모두 불빛이 나오는 유리창 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윤이는 한 발자국 떨어진 길에 서서 사람들과 거리의 빌딩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13.6

윤이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공공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제이의 이야기를 듣다가 지난번 공공도서관에서 노인을 만났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왠지 그 노인이라면 성대구조가 다른 유전자 변형 인간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도서관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윤이는 도서관 안으로 들어가 안내 로봇이 따라오는 것을 무시한 채 로비를 지나 다른 건물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광장에 다다르자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윤이가 찾는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광장의 한쪽 벽에 있는 게시판을 둘러보았다. 지난번 노인이 추천해 준 책들 중에 찾을 수 없는 책을 구하기 위해서 광고를 냈던 자신의 게시물이 아직 남아 있었다. 윤이는 게시판에 있는 책 구함 광고들을 천천히 흩어보았다. 자신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여러 가지 제목들의 책들과 저자의 이름들이 스쳐 지나갔다. 점점 자신이 노인을 다시 만날 거라는 헛된 기대를 하고 도서관에 들어와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윤이는 눈으로 게시물을 흩어보면서 한참 생각에 잠겨있었다. “무슨 책을 찾고 계십니까?” 처음부터 그를 따라온 안내 로봇이 그에게 말을 시키는 줄 알고 윤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냥 둘러보는 겁니다. 도움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럼 자리를 조금 비켜주시겠습니까? 저도 게시물을 좀 보려고 합니다.” 윤이는 그제야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가 예상했던 안내로봇이 아니었다. 윤이보다는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한 남자가 검은 양복 차림으로 서있었다. 윤이는 게시판 앞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 났다. “죄송합니다. 안내로봇인 줄 알았거든요.” “괜찮습니다.” 검은 양복의 남자는 윤이보다 키가 훨씬 작고 몸도 왜소했다. 윤이는 게시판에서 물러나서 광장을 지나다니는 사람을 훑어보았다. 혹시라도 흰가운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기를 바랐지만 역시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문명 탐구 기를 찾는다고 올리신 분입니까?” 아까 게시판 앞에서 자리를 비켜 달라고 하던 검은 양복의 남자가 윤이에게 다가와서 물었다. “맞습니다.” “연락처 아이디가 바텐더라고 해서 혹시나 했는데 바로 옆에 계신 분이 맞군요. 운이 좋은 분이시네요. 제가 당신이 찾고 있는 그 책을 갖고 있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렇다면 정말 제가 운이 좋군요. 제가 구하는 책을 갖고 계신 분을 여기서 만나게 되나니. 사실 오늘 저는 다른 사람을 마주칠까 하고 여기 왔는데 실망하고 돌아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찾던 책을 갖고 계신 분이라도 만나니 기쁘군요.”


“ 아시다시피 구하시는 책은 오래되고 희귀한 책이라 함부로 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완전히 디지털화되지도 않았고 지금 저희 집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근데 혹시 내용이라도 좀 알 수는 없을까요?” “내용의 일부는 책의 상태가 안 좋아서 잘 알아볼 수가 없지만 인간과 문명의 진화에 대한 역사서입니다. 유명한 책은 아니지만 이백여 년 전에 쓰인 책치고는 꽤 잘 쓰인 책입니다. 혹시 사람들은 모르는 고전을 수집하시는 분인가요?” “아닙니다. 어떤 분이 저에게 그 책을 추천해 줘서 읽어보고 싶은 책입니다.” “아, 그렇군요. 나중에 디지털화작업을 마치면 일부 공유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 바텐더님에게 메시지를 보내겠습니다.” “ 그렇게 신경 써 주시다니 감사합니다.” 윤이는 검은 양복의 남자가 가고 나서 다시 게시판을 보았다. 눈으로 대충 훑어보아도 수십 개의 메모가 붙어있었다. 윤이는 자신이 붙인 메모를 게시판에서 떼어냈다.


13.7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들 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요?” 이수현 경감은 궁금한 눈빛을 하며 재영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사실 그는 재영의 이야기를 오래 듣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성대 구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죠. 제 판단으로 그들의 발음은 인간의 성대구조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인간 성대 구조에서 나오는 발성이 아니었어요. 물론 그 사람들 외모는 인간이었지만.” 이수현 경감은 갑자기 재영의 이야기에서 김준호박사가 유전자 조합으로 만든 인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났다. “그럼, 그 사람들이 공식 인증된 유전자 변형인간이나 로봇도 아니란 말입니까? 성대구조가 우리가 정의한 시민들에 포함되는 사람과는 다른 어떤 새로운 종이란 말입니까?”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외모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 합니다.” “그 사람들이 누군지는 알아봤나요?” “제가 말을 걸려고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케이씨 말로는 그 사람들은 신분이 등록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재영의 말에 옆에 있던 케이가 끼어들었다. “제가 스캔해 보니 신분이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중앙정부에 디엔에이가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해외에서 몰래 들어왔거나 3 구역에서 태어나 관리받지 못한 사람들일 겁니다.” 케이의 말에 이수현경감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잠자코 생각에 잠겨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짐작처럼 김준호박사가 유전자 조합으로 만들어낸 사람들 같았다.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증명해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김준호박사의 실체에 다가가는 실마리가 될 것 같아서 흥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경감님, 제가 김재영박사를 좀 도와주면 안 될까요? 혼자 돌아다니다가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고. “ 케이가 말없는 이수현 경감을 보고 요청했다. “케이, 잠시 생각 좀 하고.” 이수현 경감은 방해받지 않으려는 듯이 손을 저어가면서 케이의 말을 막았다. 잠시 세명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잠시 동안 말이 없던 이수현 경감이 침묵을 깨고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박사님은 앞으로 케이와 같이 다니도록 하세요. 어떤 돌발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 꼭 둘이 동행하도록 하세요. 케이가 위험한 상황에 이르는 것은 미리 예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성대가 다른 사람들을 다시 만나면 자연스럽게 원래 하시던 언어와 관련한 인터뷰를 하세요. 그들의 신상을 파악하는 건 케이가 알아서 할 겁니다.” “그럼 지금 당장 케이씨와 나가도 될까요?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이유가 없네요. 그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는 보장도 없으니 여기서 나가서 빨리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케이씨, 저를 도와주실 거죠?” 재영은 아까 케이가 자신을 끌고 주클럽으로 들어올 때 보다 다소 누그러지고 상냥한 목소리로 조금은 들떠서 케이를 쳐다보았다.”저야 경감님의 지시에 따르겠습니다.” 케이는 재영을 따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케이, 그 사람들을 다시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그들의 디엔에이를 채집해 봐요.” 범죄자가 아닌 이상 아무에게도 디엔에이를 동의 없이 채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타인의 디엔에이를 채집하는 방법은 많았다. 이수형경감은 케이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나가는 케이의 뒤에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네, 저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케이와 재영이 나간 뒤 이수현경감은 제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윤이도 성대구조가 변형된 인간들이 있는지 찾아달라는 요청을 했어요.” “그랬군요. 하긴 윤이는 김재영박사와 친구 사이니 김재영 박사가 윤이에게 가장 먼저 도움을 요청했을 수도 있겠군요.” “맞습니다. 제3 구역에 어쩌면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실제 유전자 분석에 의한 것이 아니라 대화를 듣고서 내린 언어학자의 판단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신뢰가 가는 면도 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 쌓인 경험과 지식에서 나온 판단이니까요.” “우선 제가 조사한 바로는 공식 인증된 변형인간 디엔에이 풀에는 성대 구조가 변형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앙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전 세계적으로 제3 구역은 보존의 의미로 사람들을 통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성대구조의 변형이 이루어진 변형인간이 나타났다는 보고서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통제된 실험하에 나타난 뮤턴트휴먼은 아닐 거라 판단됩니다.” “그럼 혹시 그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들의 디엔에이를 분석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들의 조상이나 변형이 일어난 이유 등에 대해서 분석 추적이 가능할까요?” “물론이죠. 디엔에이만 제게 주실 수 있다면 그들의 역사를 알려드릴 수 있죠.” 제이는 자신 있게 이수현경감에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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