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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S Dec 14. 2024

새로운 종의 개념

14,0-14.4

14.0

제이는 혼자 사무실을 서성거리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윤이를 통해 제3 구역에서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들이 목격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유전자 분석을 하지 않아도 그건 자신의 친구인 김준호 박사가 만든 변형 인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어떤 목적에서 김준호 박사가 변형인간을 만들었는지는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 목적이 무엇일지 생각할수록 답답할 뿐이었다. 잠시 후 제이의 컴퓨터 모니터의 모서리 끝에는 메시지가 왔다는 녹색 불빛이 반짝였다. 드디어 성대 구조가 다른 사람들의 유전자 샘플이 채집되었다는 이수현 경감의 메시지였다. 제이는 메시지를 보고 바로 이수현경감에게 라이브톡을 신청했다. 화면에 나타난 이수현 경감의 표정은 밝았으나 그가 있는 공간은 어둡고 낡아 보였다. 이수현 경감은 아직도 제3 구역의 호텔 방에서 지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침 제가 회사에서 경감님의 소식을 기다리던 참이었습니다. 샘플은 잘 채집되어 있나요?” “네, 어렵지 않게 구했습니다. 케이와 이재영 박사가 샘플을 가지고 출발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잘됐군요. 그럼 저는 샘플을 분석한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이가 이수현경감과 대화를 마치자 제이에게 방문자가 왔다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케이와 이재영박사가 무척 빨리 도착했다는 생각을 하고 메시지를 봤는데 방문자는 이재영박사나 케이가 아닌 동생 윤이었다.

 

“요즘 자주 보는구나. 갑자기 내 사무실을 방문하다니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윤이는 무척 피곤한 모습으로 제이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아니, 그냥 갑자기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겨서.” “그래, 근데 얼굴을 보니 많이 피곤해 보인다. 우선 여기 좀 않아. 물이라도 줄까?” 윤이는 싫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 있구나? 이야기해 봐.” “지금 여기 사는 우리는 중립인간이지? 유한한 인생을 사는 것에 만족하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인 시대잖아?” ”그건 새삼스럽게 왜 묻는 거야?” “생명이 있는 모든 생물은 본능적으로 삶을 계속하기를 원한다. 어떻게든 죽음을 피하고 살아남기 원하는 그 본능이 생명을 존재시켜 왔다. 우리는 그 본능을 제어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윤이가 책을 읽듯이 기계적으로 말을 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야? 그런 연구에 관한 책을 읽기라도 했니?” “중립 인간의 디엔에이를 가진 게 아니라 중립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도록 누군가 우리 뇌를 조작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건 아니야. 충동적 성향이 없는 인간들의 유전자를 특화시켜서 중립인간 시대가 성공적으로 6세대 이상 진행되어 왔어. ” 


윤이는 제이의 단호한 주장에도 별로 달라지는 기색이 없이 피곤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과거에 인간들에게 많았던 병들이 다 없어진 것처럼 떠들었지만 아직도 김준호박사처럼 모든 유전자가 거의 완벽한 1급 인간에게도 갑자기 뇌종양이 생겨나잖아. 우리들 중에도 분명히 삶의 집착을 가진 사람들이 생겨날 거야. 단지 통제되고 있는 게 아닐까?” “1급 인간 중에 우리의 수명을 스스로가 정하는 걸 거부한 사람들도 있었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들도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했어. 짧은 역사지만 중립 인간 시대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래 살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은 아직 없었어. 우리가 사는 환경을 생각해 봐. 과거와는 달라. 경쟁이 없어지고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게 주어지면서 인간은 욕망을 품지 않지. 이성이 우리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는 거지. 우리가 누군가에 의해 통제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나도 김준호박사 같은 돌연변이가 왜 나왔는지 무슨 목적을 갖고 있는지는 의아할 뿐이야.”  


윤이는 제이의 설명에도 뭔가 석연치 않은 표정을 지으며 초초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만 가볼게.” “잠깐만. 좀 있으면 케이와 이재영박사가 올 거야. 같이 만나고 가지 그래.” “무슨 일로 오는 거지?” “성대가 다른 사람들 디엔에이 샘플을 갖고 온데. 내가 바로 분석해 주기로 했어.” “그렇구나. 그럼 좀 기다릴게.” 윤이가 제이의 책상 맞은편에 있는 편안한 의자에 앉았다. 윤이는 성대가 다른 사람들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제이에게 방문자가 왔다는 메시지가 뜨고 잠시 후 케이와 재영이 제이의 방으로 들어왔다. “윤이도 와있었네.” 재영은 윤이를 보자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온다길래 얼굴이라도 보고 가려고.” 그 옆에 서 있는 케이는 재영과는 대조되게 약간 뚱한 표정에 한껏 긴장한 모습으로 아무 말도 없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급하게 요청했는데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는 이수현경감님과 함께 일하는 케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제가 하는 일을 전적으로 도와주고 있습니다.” 재영은 제이에게 케이를 소개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중요한 일이라 이수현경감님이 계속 같이 움직이라고 하셔서 박사님과 동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경감님께 이야기 들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그럼 먼저 샘플을 저에게 주시겠어요? 저기 제방의 반대편에 실험실에서 분석을 할 겁니다. 여기서 편하게 기다리셔도 되고 저를 따라와서 밖에서 보고 계셔도 됩니다.” “실험실에 갈게요. 저는 한 번도 유전자 분석 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형, 나는 그럼 이만 가볼게. 재영아 나중에 연락할게. 케이씨도.” “자, 그럼 모두 이 방에 있을 필요가 없군요. 밖으로 나갑시다.” 제이는 일행들과 방을 나섰다.


14.1

유전자분석실에 들어간 제이는 예상보다 오래 실험실에 있었다. 실험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샘플에서 디엔에이를 추출한 다음 컴퓨터가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데 삼십 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뭔가 잘 못되어가고 있는 표정인데요. 우리가 가져온 샘플이 불량인 걸까요?” 케이도 한 시간이 넘어가자 참지 못하고 재영에게 물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제이의 얼굴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결과와 비슷하게 나왔을 것 같은데.” 재영은 이미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덤덤하게 답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을 하셨나요? 저나 이수현경감님 한테는 어떤 언급도 안 하셨잖아요.” “난 우리가 만나서 잠깐 인터뷰할 때 그들이 말하는 걸 가까이서 듣고 직감적으로 알았어요. 그 사람들은 아마도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고.” “뭐라고요? 말도 안 되는 짐작입니다. 그들이 분명 등록이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지만 제3 구역에 흘러 들어온 다른 나라의 하층민일 수도 있고 아니면 3 구역 시민이 불법으로 출산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얼굴색이 좀 검고 덩치가 컸을 뿐 직립 보행을 하는 인간이었어요.” 케이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은 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그들의 얼굴과 닮은 사람들을 찾아내어 보여주기 시작했다.”알겠어요. 그만 보여줘도 돼요. 일단 제이의 분석 결과를 좀 더 기다려보자고요. 우리가 이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을 거예요. 중요한 건 유전자 분석 결과입니다.” 케이는 재영의 말에 사진을 보여주는 것을 멈추고 앞의 유리창 너머로 실험실에서 머리를 긁적이며 앉아 있는 제이를 쳐다보았다. 제이는 한동안 멍하니 컴퓨터를 보면서 앉아 있더니 드디어 실험실에서 나왔다. “제 방으로 같이 가시죠. 거기서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유전자 분석은 잘 된 것 맞겠죠? 아니면 샘플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다른 유전자 샘플과 비교를 하느라고 시간이 좀 더 걸렸을 뿐입니다. 일단 여러분이 가져오신 샘플로 유전자 분석을 해봤을 때.” 제이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망설였다. “계속 말씀해 주세요.” 재영이 궁금한 듯 재촉했다. “뭐라고 불러야 할지. 인간의 디엔에이는 맞습니다.” “거 봐요. 제가 전 세계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비교했을 때도 95프로 이상 일치율이 나왔는데 인간이 아닐 리가 없어요.” 케이는 자신감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면서 재영을 돌아보고 승리의 표시처럼 양손을 한번 들었다 내렸다. “그런데 뭔가 더 설명하실 게 있는 것 같아 보이는군요. 그냥 편하게 설명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재영은 케이가 시끄럽게 하는 게 제이의 말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그를 돌아보면서 조용히 눈을 한번 크게 떴다. “우리는 조용히 듣겠습니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천천히 설명해 주시지요.” “아무래도 좀 더 조사가 필요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우선 밝혀진 것만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성대구조가 다른 사람들은 유전자로 봤을 때 인간이지만 인간과 침팬지 유전자의 조합으로 보입니다. 인간유전자와는 다른 구조가 보여서 돌연변이인줄 알고 찾았지만 인간 유전자 풀에는 매칭되는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해서 해보았는데 유전자 가상 조합을 하면 그렇게 나옵니다.” 케이와 재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제이의 설명을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조합이 가능하지만 과거에 실제 실험에서는 모두 실패했거든요. 아니면 정말 유전자 변이가 일어난 인간 일지도 모릅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조사를 해봐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준호 박사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재영이 제이에게 물었다.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입니다. 성공 확률도 높지 않고요.”   


“만약 김준호박사가 침팬지의 유전자를 이용해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냈다면 이건 큰 사건입니다. 중앙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새로운 인간 클래스를 만들었다는 건 중앙정부의 윤리규정을 위반하는 것 아닌가요? 이수현경감님에게 당장 보고 하도록 하겠습니다.” “케이, 잠깐만요. 아직 김준호 박사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제이는 케이를 말렸다. “내 생각도 같아요. 김준호박사와의 연계는 아직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단 이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중앙정부에 보고 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재영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보도록 하죠.” 케이는 재영을 재촉했다. “아,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중앙정부에 보고하고 추후에 뭔가 또 발견하는 게 있으면 연락드리겠습니다. 모두들 조심해서 돌아가십시오.”


제이는 재영과 케이를 보내고 혼자 실험실에 앉아서 생각에 잠겼다. 분명히 김준호박사가 아니면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루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가 실종되었을 때 그의 집에서 보았던 여러 가지 자료들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인간과 침팬지의 조합을 위한 연구 자료였다. 과거 김준호박사가 아기들을 돌보고 말이나 글 등을 가르칠 수 있는 교육용 침팬지도 만들려고 여러 번 시도했던 일이 기억났다. 그때 아무리 여러 유전자를 조합해서 지능이 높은 침팬지를 만들고 교육해도 침팬지가 언어를 습득할 수 없어 실패했었다. 그들의 성대구조는 인간만큼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결국 단순한 대화만이 필요한 노동력에 특화된 사역 침팬지만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제이는 김준호박사가 가진 커다란 계획의 실체가 과연 무엇인지 그와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추측하기 시작했다. 


14.2

“김준호박사가 하는 일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세계 중앙정부에 도움을 청해서 무력으로라도 그를 제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미 그는 중립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어기고 삶을 연장했습니다. 게다가 4 구역의 공급망까지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준호박사의 침팬지인간 개발에 대한 징계에 대해서 중앙정부의 고위간부들은 박진비서에게 강력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진비서는 총리님과 상의를 해서 결정을 내리겠다고 하고 더 이상 대응방안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꺼렸다. “총리님께 보고했으니 좀 더 지켜보도록 하지요. 그가 만든 사람들이 제3 구역에서 얼마나 많아 질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열등한 인간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지금 김준호박사를 제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창의력을 지켜보는 것일 뿐입니다.” “아시겠지만 그는 돌연변이가 발생해서 뇌종양이 생겼습니다. 실제 수명보다 앞 당겨서 삶을 마치게 되었지만 그것을 피해 도망쳐서 현재 삶을 연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의학적 지식이 뛰어난 1급 인간들 중에도 그와 같이 협력하는 사람이 최소 한 명 이상 있다는 겁니다. 왜 그 점은 간과하시는 겁니까? 김준호박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유한한 삶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획된 삶을 거부하는 돌연변이 1급 인간의 통제 문제가 거론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조용히 침묵하고 있던 이수현경감이 차분한 목소리로 의견을 제기하자 박진비서를 비롯한 회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 박진 비서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백이십 년 동안 한 번도 열리지 않았던 재판이 열리게 되겠군요. 규칙을 어기는 사람이 있다면 조사를 하고 법정에서 죄가 확정되면 그에 따른 형벌을 내려야겠지요. 이수현 경감님은 우리 의사들 중 누가 김준호박사의 삶을 연장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는지 알고 계신 거라도 있나요?” 그에게 질문을 한 사람은 김수지박사였다. “제3 구역에 과거 병원의 장비를 갖고 있는 건물이 있고 거기에 김준호박사가 드나들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확실한 증거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병원 장비를 갖고 김준호박사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꼭 1급 인간 중에 있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본인 스스로가 유전자 변형 치료를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3급 인간 중에 그를 도울 수 있는 인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3급 인간이 충동적이고 자신을 제어하는 능력이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1급 인간보다 학습능력이나 지능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수현경감이 의심하는 의학적 지식이 뛰어난 사람이 누구 인지는 정확히 밝혀지면 다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김수지 박사의 말에 이수현경감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대답했다. “김준호박사의 뇌종양을 3급 인간이 치료했다고는 추론할 수 없습니다. 제가 만나 본 3급 인간은 그럴 가능성이 0퍼센트에 가깝습니다.” 


“잠시만요. 이건 좀 더 정확한 조사가 필요한 일입니다. 여기서 토론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제3 구역의 사람들은 모두 질병에서 자유롭지 못한 열등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들입니다. 그 유전자 풀을 통해서 고작 말을 할 줄 아는 힘이 센 침팬지 인간을 만들어 냈다고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김준호 박사와 같은 돌연변이의 창의적인 반란을 제어하는 것도 좋지만 역사를 위해서 그와 그가 만든 침팬지 인간이 얼마 못 가서 사라질지 아니면 살아남아서 발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면 3 구역의 생태계에도 좋은 것 아닌가요?” 박진비서는 이수현경감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굉장히 희망에 부풀린 말을 이어갔다. 마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는 듯이 기분이 좋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는 전 세계 중앙정부의 추세를 보면 김준호박사의 일탈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다만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의 실험을 양성화해서 통제 범위 안에 넣는 게 최선일 것 같습니다. 만약 그것을 김준호 박사가 거부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만약 거부하면 그때는 법대로 김준호 박사의 문제를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총리님이 방금 김준호박사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답을 보내셨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4.3

“케이, 혹시 내가 김준호 박사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정보가 나오지 않습니다.” “케이가 정보를 찾을 수 없다면 나도 찾을 수 없겠죠. 그럼 우리보다 정보 권한이 더 많은 사람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겠네요.” 재영은 케이가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 사람은 지금 1급 시민이기 때문에 자신이 오픈한 간단한 프로필과 대외적인 활동정보 이외에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그는 최근 대외적인 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물리적으로 어느 지역을 돌아다니는지도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은 일상이탈자가 아닌가요?” “아닙니다.” 재영은 케이와 나란히 이수현경감이 머물고 있는 방문 앞에 도착했다. 안에서는 이수형경감의 대화소리가 흘러나왔다. “업무를 보시는 것 같은데 내려가서 잠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케이는 재영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갑자기 피곤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재영은 이제까지 너무 긴장하면서 있었던 탓에 어깨부터 무겁게 짓누르는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오늘은 긴 하루였으니 방에 들어가서 쉬고 나오세요.” “지금 방에 들어가서 쉬면 내일 아침까지 잘 것 같네요. 일층으로 가서 식사를 하면서 좀 앉아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럼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이수현경감님께 메시지를 보내고 일 층에서 같이 기다리도록 하시죠.” 케이는 재영을 따라서 걸었다.


저녁 시간이 지나고 있어서 바 안에는 사람들이 붐볐다. 재영이나 케이가 앉아서 휴식을 취할 만한 자리는 없었다. 대부분 술에 취해있어서 큰 소리로 떠들거나 비틀거리고 있었다. 재영은 클럽에 오는 3 구역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늘은 그들의 소리나 움직임이 눈에 거슬렸다. “오늘따라 이곳에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넘쳐 나는군요.” 재영은 홀을 둘러보면서 케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제법 사람들이 많이 붐비네요. 아무래도 여기서 쉬는 건 무리입니다. 방으로 가는 게 나을 것 같네요.” “그래도 여기 있겠어요. 혹시 또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니.” “저기 자리가 하나 보이네요.” 케이는 재영을 쳐다보면서 앞장서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며 자신을 따라오라고 눈짓을 했다. 재영이 케이의 뒤를 따라서 사람들을 비집고 가고 있을 때 술 취한 사람 하나가 재영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아가씨, 오늘 나랑 같이 잘까?” 머리를 잡힌 재영은 짧은 비명을 질렀다. 앞서 가던 케이는 재영의 비명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이거 놓으세요.” 케이는 자신 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이는 남자의 손목을 잡아 눌렀다. 그러자 재영의 머리카락을 쥐고 있던 남자의 손은 순식간에 펴졌고 그와 함께 남자의 얼굴을 일그러졌다. “이 로봇새끼가 감히.” 남자는 입으로는 큰소리를 치고 있었지만 몸은 꼼짝을 하지 못하고 케이에게 손목이 잡힌 채 서있었다. “저분에게 당장 사과드리는 게 좋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해죄를 받을 겁니다.” “케이, 그만 놓고 가요.” 재영은 케이 곁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순식간에 그녀와 케이 그리고 그 술 취한 남자의 주변에 사람들이 둘러싸고 모여들기 시작했다.”여기 사람들이 다 모여들고 있어요. 제발 그만하고 빨리 방으로 가죠.” 하지만 케이에게 손목을 잡힌 남자의 동료인지 다른 남자 하나가 다가와서 케이의 목을 잡아 눌렀다. “내 친구 손을 놔주고 나와 한번 붙어보자. 이 로봇아.” 


바 안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을 때 재영의 옆으로 와서 옷을 잡고 끄는 남자가 있었다. “여기 있으면 위험하니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서 잘못하면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말대로 케이와 두 남자가 벌이는 실랑이가 점점 과격해지고 있었다. 재영은 더 이상 케이의 옆에 서 있을 수 없어서 남자가 끄는 대로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재영은 그를 따라서 바를 나와서 복도의 중간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재영을 이끌어 주는 남자는 이곳을 아주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이곳에 살지 않는 분 같은데 무슨 일로 여기와 계신 건가요?” “혹시 당신은 김준호박사인가요?” 재영은 그의 입에서 대답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계속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네, 저를 알아보시네요. 이재영박사님.” “저를 아시나요? 하긴 3 구역에 돌아다니는 1급 인간은 워낙 드물어서 쉽게 눈에 띄고 정보가 노출될 수밖에 없으니 놀랄 일은 아니겠군요. 그나저나 박사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되네요.” “편히 앉으세요. 여기는 조용히 술을 마시기 좋은 장소랍니다.” 김준호박사는 벽 쪽에 붙어 있는 의자에 편하게 앉아서 문 앞에 서있는 재영을 바라보며 웃었다. 재영은 그제야 방을 둘러보았다. 과거를 재현한듯한 클래식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들 그리고 특이하게도 벽의 한쪽에는 커다란 모니터였다. 모니터에서 바의 모습이 보였다. 좀 전의 소동은 벌써 가라앉았는지 바에는 케이가 보이지 않고 술 마시는 사람들만 보였다. 재영은 케이에게 연락을 했지만 답이 오지 않았다. “여긴 우리의 오래된 과거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항상 재미있는 곳이죠. 게다가 오늘은 저를 찾는 사람을 만나다니 갑자기 과거의 나로 돌아간 느낌이 드네요.” “아무래도 케이씨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 케이씨를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곧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박사님을 다시 만나려면 어디로 찾아가면 되죠?” 


14.4

“이재영 박사님, 설마 로봇을 걱정하는 건 아니겠죠? 사람이 로봇을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김준호박사는 케이를 찾아 다시 바로 나가려는 재영을 보고 말했다. “로봇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저랑 같이 일하는 파트너를 걱정하는 겁니다. 어쨌든 소통은 진정된 것으로 보이니 잠시 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 재영은 김준호박사를 마주 보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침팬지인간에 대해 아시는 대로 이야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여기 사는 성대구조가 다른 그 인간들은 박사님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침팬지 인간이라? 누가 그렇게 부르기로 한 건가요?” “제가 그렇게 부른 겁니다. 유전자구조상 인간과 침팬지의 조합으로 나온 사람들이라고 들어서요. 그럼 박사님이 부르는 이름은 무엇이죠?” “설명드리자면 복잡하지만 그냥 목적에 따라 개선된 뮤턴트인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사님은 그 침팬지 인간들을 무슨 목적으로 만든 건가요?” “여기 환경에 적합한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겁니다. 중독에 취약한 유전자를 없애고 근육의 힘은 인간보다 강하고. 과거 사역침팬지보다는 더 지능이 높고 동작도 섬세합니다. 게다가 성대구조의 개선으로 복잡한 언어도 할 줄 압니다. 앞으로 3 구역에서 우세종이 될 겁니다.” “합의 없이 인간의 유전자를 사용해서 변형인간을 만드는 행위는 어느 나라 중앙정부에서든 받아들일 수 없을 겁니다.” “ 지금 지구의 환경은 계속 나빠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유전자의 다양성을 통해서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고 계속 발전해 가는 세대입니다. 저는 그중에 가장 뛰어난 유전자 개발자이고 침팬지의 좋은 유전자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사용했죠. 인간의 유전자를 활용한 인간 뮤턴트는 괜찮은데 왜 다른 종과 인간의 결합은 안된다는 거죠? 너무 구시대적인 발상이죠. 백 년 전에는 인간이 로봇과 공존하고 인간의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었었죠. 하지만 이제 인간 유전자의 조작은 합법이고 권장되고 있죠. 그렇게 해서 우리가 생존하게 되었죠. 저는 미래의 백 년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겁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가 만든 규칙들이 있습니다. 이종 결합은 절대 금지되어 있죠, 규칙을 깨기 시작하면 아마도 우리는 생존하지 못할 겁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이 욕망을 통제하지 못하고 욕심을 부리다가 서로를 죽이고 지구를 위협에 빠뜨린 경우는 수도 없이 많았죠. 또한 실제 인간 유전자를 다른 종들과 결합하려는 노력을 하다가 많은 인간들이 희생되었죠.” “그때와 지금은 기술이 다릅니다. 앞으로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양한 유전자 풀을 사용해서 최적의 인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유용한 유전자라면 침팬지의 것이라고 마다 할 이유가 없죠. 이제는 몇 백 년 전에 만들어 놓은 종의 개념을 탈피해야 합니다.” “마치 미래를 내다보시는 분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이런 토론은 의미가 없으니 그만하시죠. 아무튼 좀 전에는 저를 위험한 싸움에서 휘말리지 않도록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 가봐야겠네요.” 재영은 준호와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신만의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제 친구들을 알아보신 겁니까? 그들의 말은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데요.” “저는 언어학자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언어들을 찾아서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인간이 쓰는 언어는 다 들어봤습니다.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성대구조나 입술의 사용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다른 성대 구조를 갖고 같은 발음을 다른 방식으로 하기에 유심히 들었습니다. 분명히 소리의 높낮이 폭이 인간들보다 넓었습니다. 인간의 성대 구조에서 나올 수 있는 폭이 아니었죠.” “맞습니다. 성대 근육이 훨씬 더 발달해서 성대를 좁히고 넓힐 수 있는 폭도 크죠. 인간보다 자유롭게 낼 수 있는 소리의 음역대도 훨씬 높죠. 하지만 말을 할 때는 별 차이가 없을 텐데 대단히 뛰어난 청력이군요.” 재영의 손목 메신저에서 케이의 호출이 들어오고 있었다. “저는 이만 가봐야겠어요. 케이가 저를 찾고 있어요.” 재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처럼 즐거운 토론을 시작했는데 안타깝네요.” 김준호박사는 재영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 박사님과 오늘 같은 토론을 더 하고 싶은데 다음에 꼭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박사님에게 제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으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또 만나면 할 이야기가 아주 많은 것 같군요.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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