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S Sep 07. 2023

유후인 주택가 골목 담배 연기

도시 스케치_유후인

유후인은 유명 관광지이다. 아름다운 호수와 온천이 있다. 후쿠오카에서 기차를 타고 가면 멀지도 않다. 하지만 나는 유명한 관광지를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대중의 취향과는 다르게 유명한 관광지는 막상 나에게 별다른 감동을 주지 않을 때가 많았다. 아마도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랬을 것이다. 사람이 붐비면 일단 뭔가에 조용히 집중하고 감상하기가 힘들다. 그렇게 되면 그곳의 매력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유후인의 긴린코 호수도 그랬다. 호수는 조용하고 잔잔했지만 줄줄이 사람들이 걸어 들어왔다. 나는 떠밀려 걸어 나가야 했다. 계속 걷거나 어딘가 쉬거나 둘 중의 하나인데 둘 다 사람들에게 치여서 만만치가 않았다. 계속 걸으면서 나는 어서 여기를 벗어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호수를 내려와서 다시 기차역까지 가는 길에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있다. 그리고 중간에 커다란 동네 슈퍼가 있었다. 거기는 사람들이 덜 붐비는 것 같아서 슈퍼에 들어가서 음료수와 먹을 것을 샀다. 슈퍼나 편의점에 들어가서 먹을 거 구경하고 사는 것도 관광지 구경하는 것보다 내가 즐기는 일이다. 어딘가 나무 그늘이라도 앉아서 간식이라도 먹고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날씨는 비가 곧 올 것 같이 구름이 슬렁슬렁 지나다녔다. 슈퍼 앞에는 제법 넓게 주차장 같이 공터가 있었는데 어디를 둘러봐도 벤치 하나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 걸었다. 기차역까지 도착했는데 기차역의 입구에 벤치가 보였다. 그런데 그 벤치 바로 앞에는 화장실이 있었다. 나는 화장실을 앞에 두고 벤치에 앉아서 간식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가는 기차 시간은 많이 남아있었다. 다시 내가 왔던 상업적인 거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벤치를 찾아 돌아다니기는 싫었다. 


기차역의 맞은 편의 오른쪽으로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다. 잠시 후 작은 천이 흐르고 다리가 나왔다. 나는 다리를 건너지 않고 천을 따라 위쪽의 길로 올라갔다. 주택이 듬성듬성 있고 오래된 나무들이 그늘을 이루고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 동네였다. 물론 벤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벤치를 찾아서 앉는 것을 포기하고 오래된 나무가 있는 길을 산책 삼아 걸었다. 멀리 논밭이 보이고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고 산도 보였다. 대단히 좋은 경치도 아니고 그저 그랬다. 그러나 좋은 것은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바로 옆쪽 길에는 관광객들과 상업적인 가게들 그리고 콘크리트로 된 차 길이 있는데 여기는 딴 세상처럼 아주 고요했다. 


어느 정도 걸었을 때 몇 미터 앞에 교복을 입고 가는 남학생 두 명과 여학생 한 명이 보였다. 고등학생은 아니고 초등학교 고학년이거나 중학교 저학년쯤 되어 보였다. 셋다 키도 작고 마르고 왜소했다. 나는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객이지만 굳이 사람들에게는 잘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나를 한 번씩 돌아보면서 의식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그려려니 하고 그들과의 거리가 좀 더 차이가 나게 일부러 발걸음을 천천히 하며 산책을 계속했다. 길은 강을 따라 살짝 구부려져서 내 앞에 가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아이들 중 한 남자아이가 다시 보였다. 아이는 길에서 나를 돌아보더니 왼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다시 나와서 내 쪽을 돌아보았다. 짧은 머리에 얼굴이 검게 타고 귀여운 앳된 얼굴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길 왼쪽에서 나오던 자신의 친구들에게 달려가서 셋이 같이 뛰어서 앞으로 가버렸다. 그들만의 일이 있나 보다 하고 그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를 내가 지나갈 때였다. 담배연기 냄새가 났다. 그 길은 나무와 개천과 논밭뿐이었고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담배연기 냄새가 어디서나는 걸까 의아했다.


아까 아이가 들어갔다 나온 왼쪽을 돌아보니 아주 오래된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리고 그 밑에 언뜻 보니 반도 안 핀 담배가 버려져있고 아직 덜 꺼져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하교 길에 사람들이 안 다니는 구석진 곳을 찾아 담배를 피우다가 뒤에서 오는 사람을 보고 담배를 버리고 가버린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일탈을 방해할 의도가 없었는데 그들은 순식간에 판단을 했던 것 같다. 

나의 산책은 계속 이어졌다. 멀리 아이들이 뛰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일본말도 못 하는 외국인인데 아이들은 헛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긴 별것도 아닌 일에 미리 두려워하고 도망치는 게 아이들만 그런 건 아니니 그럴 만 하지' 생각하며 웃었다. 공기는 습하고 담배연기가 오래 내 뒤에서 따라왔다. 

이전 16화 철 지난 바닷가 동네 산책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