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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세월을 뛰어넘는 사랑

by 서영수

사랑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여전히 내 안에서 형태를 바꾸며 살아 있었다. 세월이 그 흔적을 지운 줄 알았는데, 문득 어떤 음악 한 소절, 낡은 사진 한 장이 그 시절로 나를 돌아가게 한다. 그럴 때면 나는 그때의 나, 그때의 우리, 그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며, 아직도 미련이 남아서인지 아니면 단지 감정의 잔상에 불과한 것일지 자문하곤 한다.


공자는 사랑을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예전엔 이 말이 너무 관념적으로 다가왔다. 사랑이란 결국 '나'의 열정이라고, '우리'의 가능성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말의 의미가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잘 되기를, 행복하기를, 이제는 내 품 안이 아니라 먼 자리에서 바라게 되는 마음. 그런 마음이어야 하고, 어쩌면 그 마음이야말로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사랑이 운명이라면, 그 운명은 종종 이별의 형태로 찾아온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안에 온전히 받아들이는 일이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말했다. '상실은 소유에 저항하는 무력함이지만 내면으로 소유하게 되는 두 번째의 소유함이라고.'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만큼 그를 강렬하게 소유할 수 있을까.


과연 상실이 내면의 소유가 된다는 릴케의 말이 이제는 조금 이해가 된다. 함께 있을 때보다, 부재 속에서 그가 더 또렷해지는 역설. 그렇게 사랑은 관계가 끝난 뒤에도, 기억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요즘 들어 나는 사랑에 대해 생각하면서, 사랑을 결혼이든, 어떤 결론으로 정의할 수 없었다. 그건 한때의 나를 비추던 빛이자, 지금의 나를 이루는 그림자였다.


사랑을 잃고도 여전히 사랑을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모든 시간 속에서 내가 조금씩 사랑 그 자체가 되어가야 한다고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형태를 바꿔, 내면을 천천히 통과해갈뿐이다. 아직 나 자신과 많이 싸우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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