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끊겠다는 굳은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강검진이 끝나자마자, 쌓여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꼭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피곤한 건 아닌데도, 평소 마시던 커피를 마시면 뭔가 돌파구가 열릴 것만 같았다. '얼마나 오래 살겠다고, 그냥 한 잔 마시고 말지' 하는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커피를 끊으니 무엇보다 눈이 빡빡하고,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안경을 바꿔도 별 차이가 없었다. 참다 참다 결국 오랜만에 커피를 한 잔 마셨다. 거짓말처럼 피로가 가셨고 하루 종일 힘이 들지 않았다. 대신 밤에는 잘 자지 못했지만. 그래, 그냥 마시자. 너무 고지식하게 살 필요는 없잖아,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수면이었다. 커피를 다시 마신 후부터 새벽에 자꾸 깨기 시작했다. 꼭 커피 탓만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디카페인을 마셔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굳이 마시지 않으면 될 일이어서 내키지 않았다. 대신 양을 줄이기로 했다. 완전히 끊는 것보다는 그게 덜 힘들었다. 며칠간 그렇게 조금씩 커피 양을 줄이며 깨달았다. 나는 커피의 카페인에 유난히 민감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 같은 사람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편이 낫다. 결국 디카페인으로 잠시 버티다가 완전히 끊어보려 한다.
그런데 며칠 커피를 끊어보니, 아침에 커피를 마시는 것이 루틴이 되어서 그런지 뭔가 마시지 않으면 허전했다. 커피를 마시는 일이 이미 하루를 여는 의식 비슷한 것으로 자리 잡혀 있었던 거다. 커피를 건너뛰면 뭔가 빠진 듯 허전했다. 대신 차를 마셔봤지만, 그건 커피만큼의 만족을 주지 못했다. 이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많은 일들이 꼭 건강하거나 필요한 습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단지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깨닫게 된 거다.
커피를 마시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다만 어느새 '마시지 않고 건너뛰면 이상하게 느껴질 만큼 습관이 된 것이 문제였다. 이 습관 하나만 잘 해결하면 커피를 끊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이번 기회에 다른 습관들도 돌아보기로 했다.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강박적으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습관은 없었는지, 그 틀을 깨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생각해 보면, '커피를 끊어야지'라는 다짐조차 나를 몰아세우는 또 하나의 강박이었을지 모른다. 스스로를 너무 엄격하게 대했던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스스로를 너무 엄격하게 대하지 말자고, 마시고 싶으면 마시면 될 일이고, 적당히 하면 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커피 한 잔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매이거나 휘둘리지 않는 마음가짐이다. 절제도 적당히 해야 균형이 잡힌다는 사실을 이제 조금은 알 나이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