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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짧아진 낮 길어진 마음

by 서영수

아침 공기가 사뭇 낯설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공기는 맑고 하늘은 청명한데, 사람들의 표정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갑자기 마음이 공허해졌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낯설게만 느껴진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옷차림이 계절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떤 이는 여전히 얇은 셔츠를 입고, 또 다른 이는 겨울 외투를 걸쳤다. 그들은 각자의 속도로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나 역시 늘 그랬다. 아침마다 시간에 쫓기듯 걸었고,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서둘렀다. 그러나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쌓일수록, 마음속의 여유는 조금씩 사라져 갔다.


도심 한복판 전광판에선 반짝이는 모델들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이 도시의 주인처럼, 세상이 마치 아무 일 없이 잘 굴러가니 그냥 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빠르게 움직이고, 쉽게 웃고, 지치지 않아 보이는 사람들의 세상.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세상 속에서 문득, 어두운 기색이 느껴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누구도 언급하지 않는 시간의 무게, 나이가 들어간다는 사실, 그리고 언젠가 사라진다는 두려움. 올해가 이제 두 달 밖에 남지 않아서 그런가.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세월을 외면하며 살아왔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고, 마음만 젊으면 된다고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어느 날 거울 속의 얼굴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그 말이 더 이상 위로가 되지 않았다. 시계는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고, 나는 그 시간 위에 서 있었다.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그렇다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모를 테니까. 지나온 시간은 나를 닳게 했지만, 동시에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무뎌진 것인지도 모르고.


이 무력감은 어쩌면 의미를 찾으려는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삶의 이유를 끊임없이 묻지만, 그 답은 늘 손에 닿지 않는다. 그러나 '의미'란 사람들이 추구하는 어떤 거창한 결론이 아니라, 오늘의 한순간을 깊이 느끼고 채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짧아진 낮, 길어진 그림자 속에서 지금 이 순간이 전부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돌아갈 수는 없지만, 여전히 걸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걸어가는 동안에는, 나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생명의 충만함을 느끼고 안 느끼고는 오로지 나한테 달린 일이다. 11월도 중순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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