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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Aug 30. 2022

마지막 붉은 기운이 아쉽다는 듯

토요일 늦은 오후였다. 여느 주말처럼 카페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무음으로 해 놓아서 그런지 전화가 온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주말이라 딱히 전화 올 사람이 없는데? 고등학교 친구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얼마 전 상가에서 보고 얼굴빛이 썩 좋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그는 최근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몇 달 고생한 듯했다. 건강 잘 챙기라는 말을 여러 번 했었다.


전화를 했다. 지금 한강 공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날씨가 좋으니 같이 타자는 거다. 난 자전거가 없다고 하니, 자기한테 여분의 자전거가 있으니 그냥 몸만 오면 된다고, 집에서 책만 보지 말라고, 기분 전환이라도 하라는 게 요지였다. 고민하다가 그의 집이 있는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전보다 얼굴이 나아졌다. 이게 더 자전거를 탄 덕분이라나 뭐라나. 다행이다 싶었다. 법무관 시절, 무료함을 달래려고 자전거를 탄 적이 있지만 그때 이후로 자전거를 탄 기억이 없었다. 자전거 헬멧 정도만 쓰고 같이 한강을 달렸다. 앞서가는 친구, 역시 몇 달 자전거를 타서 그런지 체력이 좋아진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씨, 한강 공원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과 나들이를 나온 행락객들이 섞여 어딜 가도 인산인해였다. 강바람이 시원했다. 잠시 시간을 잊었다. 하늘은 얼마 전 읽은 문장의 그 하늘이었다.

이제 태양은 우주의 집으로 들어가고

하늘에는 어둠이 깔리기 전

마지막 붉은 기운이 아쉽다는 듯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이지민 _ 청춘극한기>




한낮의 햇볕은 여전하지만 어느덧 다가온 가을 기운에 힘을 잃은 듯했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같이 걷기만 해도 사랑에 빠지는 날들이. 뭘 해도 추억으로 남을 날들이. 누구와 찍어도 풍경으로 남을 날들이.


친구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 이참에 나도 자전거를 한 대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 말대로 인생 뭐 있나, 즐길 때 즐겨야지. 글쎄? 어쨌든 아름다운 2022년 8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본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린 광화문글판 가을편, 강은교 시인의 <빗방울 하나가 5>


시인처럼 나도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오늘 본 해질녘의 하늘이든. 바로 내 앞에 있는 누군가의 시선이든. 이미 지나버린 추억 속의 누군가든. 가던 길을 멈추고 시를 한참 동안 읽고 또 읽었다.




무엇인가 창문을 두드린다

놀라서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본다

빗방울 하나가 서 있다가 쪼르르 떨어져 내린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

 또는 별이든


<강은교 _ 빗방울 하나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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