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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단상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한두 가지뿐

by 서영수


밤이 길었다.

지난 시간이 주마등같이

스쳐갔다.


낮에는 가는 해가 아쉬워

하늘을 한참 올려다봤다.


붙잡을 수도,

머물 수도,

보고 싶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

떠난 사람을 닮았다.


한 해의 마지막은 오늘인데도,

마치 어제가 그렇게 느껴졌다.


아름다운 것들은 스쳐간다.

올가을을 수놓았던 단풍,

간밤에 내린 하얀 눈,

하늘을 붉게 물들인 석양,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

문득 그 시절을 떠올리며

아름다웠다고, 좋았다고 깨달았을 때

그들은 이미 떠나가고 없었다.


2023년,

거대한 포부를 세우고

희망을 기원하는 대신

떠나고 잊혀져간 존재들을

흔쾌히 놓아주는 법부터 배워야겠다.


그리고 어젯밤 읽었던

메리 올리버의 시 <한두 가지만>



푸른 연못 너머로,

울창한 섬유질의 나무들 위로,

맹렬한 번개의 꽃들 사이로 여행할 때


당신에게 필요한 건 한두 가지뿐

기쁨에 대한 깊은 기억과

고통에 대한 날카로운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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