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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수 Jan 31. 2023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건강에는 나름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아프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 든 사람들이 병을 앓다가 사망하는 것을 보고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겪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나도 언제든지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였다.


건강에 대한 과신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 것 같다. 나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더 조심하게 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별생각 없이 살았다. 몸이 아프니 의기소침해지는 것은 당연, 나를 둘러싼 세상도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았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지나가는 사람들조차도 어딘가 아픈 사람들처럼 보였다. 세상 역시 잿빛으로 보일 수밖에.


약을 의지하지 않고 자연치유해 보겠다고 한동안 약도 멀리했지만, 무모하고 비이성적인 자신감이었다. 자연치유는 몸에 면역이 잘 갖추어져야 제대로 작동하는데, 병에 걸린 것은 차지하고 내 면역 상태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교적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편이고 걷기 등 운동을 실천하고 있었지만, 늦게 자고 불필요한 일들에 신경을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면역이 좋을 리가 없었던 거다.


매일 걸었지만 오히려 그게 족쇄가 되어 나를 옭아매기도 했다. 때에 따라 운동은 건강에 독이 될 수도 있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거다. 내가 세운 루틴에 얽매여 피곤해도 걸었고 불편해도 참았으니 올 게 오고야 만 것, 어쩌면 이 정도로 아프고 만 게 그나마 다행이다.


나이가 들면 몸이 점점 약해진다는 사실 그래서 언제든지 아플 수 있음을 인정하고 평소 건강을 잘 챙겨야 한다. 내가 약하다는 사실을, 아프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으니 병도 때로는 도움이 되는 면도 있다. 비싼 수업료를 치른 셈이지만.




한편 건강할 때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아프고 나서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바뀐 것이다. 두 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내 발소리마저도 새롭게 들렸다. 하늘을 나는 새들을 보면서 그들의 건강함에 감동하기도 했다. 건강의 부재를 통해 건강한 삶의 기쁨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도 병이 준 교훈이다.


젊은 시절부터 난치병으로 고생한 일본 작가가 있다. '가시라기 히로키(かしらぎ ひろき)'가 그 주인공, 그는 20세부터 궤양성 대장염으로 13년간이나 투병했다. 체중이 빠졌고 배설을 통제할 수 없어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할 정도로 삶의 질은 열악했다. 투병 생활의 경험과 깨달음을 책으로 낸 것이 <먹는 것과 싸는 것> 제목이 좀 원색적이지만, 많은 교훈이 담겨 있다. 그는 말한다.



"병에 걸리면 행복의 기준이 매우 낮아진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행복감에 젖어 든다. 햇살에도 행복을 느끼고, 나무가 흔들리기만 해도 감동하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에 푹 빠져든다. (...) 한 끼 한 끼, 한 입 한 입, 먹을 수 있다는 데 감사함을 느낀다."



병을 통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일상의 일들이 실은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복이었음을 깨달으면서 삶을 보는 시선이 바뀌었고, 삶 자체도 변화된 것이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었던 거다. 뭔가 어려움을 겪어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는 우매함을 이번에 제대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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